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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대체 무슨 말이야?" 도를 넘은 외국어 남용

[취재파일] "도대체 무슨 말이야?" 도를 넘은 외국어 남용
어제(17일) "도대체 무슨 말이야" 기사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684504)가 나가고 난 후 시청자로부터 많은 반응이 있었습니다.
누리꾼의 답글도 마음먹고 쭉 읽어보았는데요. 기사의 지적에 공감한다는 반응과 각자의 경험을 소개하는 내용이 많더군요.

"도대체 무슨 말이야?

어제 제가 쓴 기사는 실제 패션잡지에 실려 화제가 됐던 한 ‘문장’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앤드, 블루 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어번 쉬크의 진수를 보여줄 모카 비알레티로 뽑은 아로마가 스트롱한 커피를 보덤폴라의 큐트한 잔에 따르고 홈메이드 베이크된 베이글에 까망베르 치즈 곁들인 샐몬과 후레쉬 푸릇과 함께 딜리셔스한 브렉퍼스트를 즐겨보자”

필수적인 조사를 빼면 단어 대부분이 외국어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패션잡지 대부분이 이렇습니다. 생경한 문체이지요, 외국어가 대부분인 문장. 이 문장을 큰 도화지에 적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서점으로 들고 나가 보여줬습니다. 하나같이 기가 차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기사는 순조롭게 나갔고, 예상한 것보다 더 큰 반응이 있었습니다. 몇몇 패션잡지에 국한된 일인 줄 알아 공감하는 사람은 젊은 여성층에 한정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팩트’가 뭐야?"

많은 분들이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읽고 공감의 답글을 남겼는데, 그 중 흥미로웠던 답글 몇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지금 포털사이트에 가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ywyw****
난 왜 수학에서 -를 빼기라고 안하고 마이너스라고 하는걸까... 학교선생님들이 그렇게 가르쳐줘서 뭣모르고 따라하긴 했는데 빼기라고 해야 하는디... ㅠㅠ 이젠 습관이 되버렸다. ㅡㅡ

magn****
특히 많이쓰는단어 ‘팩트’ ㅋ 그냥 '사실'이라고 쓰면 될거를

00ju****
동사무소를 주민 센터로 바꾼거두 이해안감

stor****
홈쇼핑 " 어머.. 이 라인좀보세요 엣지있죠. 엘레강스한 스따~일이 어디가서나 사람들의 아이 캐치를 하게 만들죠. 이 컬러풀한 색상들을 보세요. 판타스틱한 디자인과 컬러가 어메이징하죠"

geny****
가끔가다 캔슬캔슬하는 사람들있던데 그냥 취소한다고해라ㅋㅋ

pk75****
조리사.주방장을 쉐프라 하더라..ㅋ

synz****
요새 가요프로그램에서는 세번 1등한 가수에게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하길래 트리플크라운???? 아 삼관왕 ㅋㅋㅋㅋㅋㅋ

wlgu****
Get, take, let, make, out, in, away를 한국어랑 같이 섞어 쓰는 애들 보면 어이없던데요?

dbst****
자동차회사에서 일했던적이 있습니다, 난생 처음 접하는 일이라 적응하는데 꽤나 긴 시간이 먹었습니다, 그중 제일 힘들게 적응했던건 기술적이거나 체력적이 아닌 용어문제였습니다, 문을 도어 혹은 도아, 틈을 갭... 등등 용어를 외우는게 참으로 힘들었죠, 말하기 편한 우리말을 두고 굳이 혀가 감기는 외래어를 사용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슈퍼xx
레포트 부장님한테 컴펌 받고 12시에 미팅 있으니까 런치 캔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남용하고 있는 외국어의 사례를 비교적 정확히 인지하고 나아가 ‘문제’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저 역시 앞서 누리꾼이 지적한 ‘팩트’ 를 ‘사실’이라는 표현보다 더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선 상사에게 보고할 때마다 “‘팩트’ 확인 정확히 했니?” 랄지, “정확히 ‘워딩’이 뭐였는데?” 같은 표현을 자주 듣게 되는데요, 만약 어느날 상사가 저에게 “‘사실’ 확인 정확히 했니?” “정확한 ‘단어 선택’은 뭐였는데?”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당황할 것 같습니다.

팩트, 워딩, 텍스트, 스탠스, 포지셔닝, 카테고라이징, 페(훼)이크, 액션... 이런 표현은 우리 말로 바꿔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데 말이죠. 우리 일상에서 너무 많이, 자주 사용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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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쓰는 외국어도 있어"


제가 기사에서 지적하려고 했던 외국어들은 앞서 소개한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편이 일상화되고 있는'에 한정된  거였는데요, 방송 기사가 짧다보니 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과 같은 답글도 달렸습니다.

name****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글로벌 프래그마티즘 뭐 이런 용어는 한국어로 표시하면 더 알수없으니까 영어표기나 다른 외국어 표기가 좋지만....

2317****
글세..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우리나라는 학술적, 전문적 용어를 구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해서는 그 용어의 정확한 의미가100%전달이 안되는 경우가 태반.. 예를들어 "서비스", "마케팅", "패션" 이런 용어들... 오히려 번역하면서 한자 형태로 되어버려 의미가 퇴색되고 용어가 어려워 지는 경우도 많다..


기사에도 등장하지만 특히 외국어 남발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패션'과 '광고', '평론'과 '영업' 입니다. 공통적으로 '유행'에 민감한 영역이죠. 패션의 경우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 사라지기까지 얼마 시간차도 나지 않을 정도이니. 외국의 어느 배우가 입은 어떤 형태의 옷이 인터넷을 통해 국내 업계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그야말로 '동시'성을 갖습니다. 모든 것들이 빠르게 전달되어 빠르게 퍼져나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 들여온 새로운 개념을 우리말로 바꿀 여유가 없다는 핑계, 변명이 묵인되는 지점도 있고요.

취재하면서 의료나 IT 업계에서 쓰는 전문 용어들도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요즘 같이 수많은 개념과 학문이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해 교류되는 때에 정확한 어감과 의미, 맥락까지 반영돼 번역된 우리말을 쉽게 만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상에서 의심 없이 자주, 많이 쓰고 있는 '우리말로 바꿔 쓸수 있는 외국어'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죠.

다음 취재파일에선 이번 현상에 대해 블로그글을 써 화제가 되고 있는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씨와 광고 카피라이터 '백홍권' 씨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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