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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바람만 싣고 달린다', 서울시 지정좌석제 버스

수요예측조사 없어..40명 좌석에 승객 3명

유덕기 기자 dkyu@sbs.co.kr

작성 2013.02.19 09:1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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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바람만 싣고 달린다, 서울시 지정좌석제 버스
몸이 기억하는 '출근길 콩나물 버스'
'평일 아침 7시, 강남으로 향하는 출근길 버스'. 이 문장을 쓰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방송기자가 되기 전, 사무직 회사원 시절 출근길을 제 몸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 직장은 강남에 있었습니다. 몇 년을 서울외곽에서 강남으로 향하는 '콩나물 시루‘ 출근버스를 탔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에 치여 하루 사용가능 에너지의 3분의 1이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이런 불편을 없애고자 서울시가 지난 2월 1일부터 도입한 새로운 제도가 있습니다. '지정좌석제 버스'입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지정좌석제 버스’의 정식 이름은 '정기이용권 버스'입니다. 미리 한달 정기권을 구매한 승객에게 좌석이 하나씩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출근길 앉아서 갈 수 있는겁니다. 시는 두 개 노선에서 이 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 서북부와 동남부에서 강남권으로 향하는 두 개 노선 모두 승하차 정류장이 각각 서너 개 수준입니다. 급행 버스인 겁니다. 만성적 출근길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위한 복안입니다. 시범적으로 은평권과 강동권에서 강남으로 향하는 40인 정원 노선을 각각 하루 2회 운행하기로 했습니다. 한달 6만원짜리 정기권만 판매하는데, 1회 승차비용은 3천원 꼴입니다. 벌써 시행 2주를 넘었습니다.

 승객아닌 바람 싣고 달리는 '지정좌석제 버스' 
  버스가 시민의 인기 속에 운행되고 있을까. 현실은 달랐습니다. 지난 13일 아침, 기자가 직접 타본 강동권 지정좌석제 버스는 '텅텅'비어있었습니다. 40명 정원 버스에 달랑 2명의 승객이 탔습니다. 동행한 서울시 버스 노선정책 관계자에 따르면 시민 3명이 정기승차권을 샀는데 그날따라 1명이 타지 않았다 합니다.

시는 지난 1월 한달 동안 버스 정류장 근처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전단지와 안내방송, 플래카드를 이용한 홍보를 진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의전화 마저 적었습니다. 지정좌석제 버스 운행을 대행하고 있는 운수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10명 내외의 시민에게서 문의전화를 걸려왔습니다. 그 가운데 4명이 정기권을 샀는데 1명은 이사를 간다는 이유로 한 주만에 환불해 갔습니다.

이미지또 다른 노선인 은평권 노선은 어떨까? 역시 정기권 구매자는 3명뿐이었습니다. 승객이 없다보니 시는 애초 세웠던 '2개 노선, 2회 운행' 계획을 '2개 노선, 1회 운행'으로 수정했습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승객 아닌 바람을 싣고 달린다’는 자조를 할 정도입니다. 

승객만족도는 '최상'수준
지정좌석 버스를 탑승한 승객들에게 만족도를 물었습니다. 두 분 다 '최상'이라고 답했습니다. 원래 1시간 넘게 걸릴 거리를 30분 정도에 도착하게 되니 개인시간이 생겼다 합니다. 비좁은 만원버스에서 서서갔는데 앉아가는 것도 편하다 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안 탄다는 말과 함께 '설마 이 버스 없어지는 건 아니죠?'라며 불안감을 표시했습니다.  같은 시간, 시청팀 선배인 김현우 기자가 취재한 은평권 노선 승객들 반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40명 정원 버스에 2명이 탔는데, 시민 두 분 모두 지정좌석제 버스에 매우 만족해 했습니다. 

이토록 편한 버스가 인기 없는 이유는 뭘까. 아침 7시 전후, 비슷한 지역에서 강남권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잠재 승객들 말입니다. 시민들은 지정좌석버스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지정좌석 버스가 굳이 탈 이유가 없다 말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굳이 탈 이유는 없어요'
가장 많이 나온 이유는 '출발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것. 버스는 오전 7시에서 7시 10분 사이 탑승해 7시 30분에서 40분 사에에 강남에 도착합니다. 대개 회사의 근무시작 시간이 9시인 것을 생각하면 너무 빠른 시간이라는 겁니다. 또 다른 불만은 정류장이 너무 적다는 것 입니다. 은평권 시민의 경우 은평권과 강남권 노선 버스가 종로에서 한번 하차할 수 있으면 타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강동권 시민의 경우 출발 정류장인 고덕역 인근은 지하철 연계가 편리하기에 굳이 2배 비싼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승차 정류장이 있는 곳보다 더 외곽지역에서 타려하는 사람은 많을 거라 합니다.

운영대행 업체 관계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시민들과 비슷한 지적을 합니다. 전화 문의오는 시민들이 원하는 승하차 정류장은 비슷비슷했는데 서울시가 지정한 곳보다 외곽 지역이라 합니다. 환승이 안 되는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합니다. 외곽지역일수록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시민이 많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수요예측 조사 없어..한달 동안 길에 뿌려지는 혈세 350여만원
시에서 수요예측 조사하고 운행을 시작한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노선 주변에 사는 예비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나 1:1면접조사 같은 기본적인 조사 말입니다. 취재결과 서울시 담당부서는 수요예측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막연히 ‘수요가 있을 테니 시행하면 인기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꼴입니다. 

큰돈 들지 않으니 문제 될 것 없지 않냐는 반응을 보이는 시 관계자도 있었습니다. 시범운영기간이라는 변명도 있었습니다. 지정좌석제 버스 한 대를 하루 한번 운행하는데 하루에 10만원이 듭니다. 즉, 한달에 한 대당 2백 만원 들고, 현재 운행하는 버스가 2대이니 4백만원이 듭니다. 운행되고 있는 버스 두 대의 총 등록 승객은 6명, 36만원 수입 제외하면 모두 시 재정이 투입됩니다.  적다면 적을 수 있지만 크다면 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전형적인 표현입니다만 ‘혈세’가 들어가는 겁니다. 수요예측 없이 주먹구구로 하다보니 시민 아닌 바람을 싣게 된 겁니다. 어느 시민도 자신이 낸 세금으로 바람 싣기를 바라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서울시도 현재 상황에 문제가 있다 판단한 겁니다. 두 개 노선은 앞으로 일부 수정이 있을 예정입니다. 승하차 정류장 개수가 늘어나고 위치도 바뀔 예정입니다. 그리고 5월까지 두 개 노선 승객 수가 20명 이상 늘지 않을 경우 노선을 폐쇄할 방침입니다. 대신 노원권역 등 강남권 출근시민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노선을 이동할 계획도 있습니다. 기존 노선 운영이 제대로 개선되기를 기대합니다. 추가 노선을 만든다면 이번엔  제대로 된 수요예측 조사를 전제로 시행돼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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