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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난방비 대신 폭탄을 맞았어요"

-문제는 계량기?-

올 겨울, 예년보다 난방비가 ‘조금’ 더 많이 나왔다면 별로 놀라실 일은 아닙니다. 그만큼 추웠으니까요. 실내온도를 20도로 유지한다고 할 때, 외부 온도가 1도 떨어지면 열은 6%가량 더 필요합니다.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겨울 기온이 영하 15도 밑으로 떨어지는 날은 평년엔 보름이 채 안 되지만, 이 겨울엔 12월부터 걸핏하면 영하 15도를 넘나들었죠. 예년 겨울과 비슷한 온도로 지내셨다면, 난방비가 좀더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와도 너무 나왔다? 그러면 내 탓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크니까, 그냥 넘어가지 마세요. 난방비 아끼려고 춥게 지냈는데, 내가 쓰지도 않은 열을 내가 썼다고 요금이 잔뜩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1월 28일 8시 뉴스에 <난방비 폭탄, 계량기가 원인> 아이템이 방송된 뒤, 보도국으로 “우리 집도 그런 케이스 같다”는 전화가 많이 왔다고 합니다. (나로호 출장차 전남 외나로도에 가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우리 집이 그런 경우인지 아닌지, 의심이 갈 경우 일단 자가진단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뭔지, 해결책은 없는지…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1. 내가 받은 난방비 고지서는…폭탄인가?^^
      - 계량기가 유량계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번 취재에서 특히 들여다 본 건, 내가 쓴 열만큼 난방비가 계산돼 나와야 하는 지역난방 아파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쓴 만큼 나와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말이죠.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지역난방 아파트 가정은 난방 계량기로 유량계를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얼마나 난방을 했느냐를 계량해 가구별로 난방비가 부과되는데, 이때 계량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내가 쓴 열을 측정하는 방식인 열량계이고, 다른 하나는 난방에 쓰인 물의 양을 재는 방식인 유량계입니다. 그러나 유량계는 실제 우리 집이 쓴 열의 양이 아니라 우리 집에 들어왔다 나간 물의 양을 계산해 요금을 부과합니다. 난방비 폭탄은 대부분 여기서 발생합니다.


    2. 유량계의 문제는? – 난방열이 아니라 난방수의 양을 측정하기 때문입니다.

열량계는 난방수가 집에 들어올 때의 온도와 바닥 밑에 깔린 배관을 돌아 집을 따뜻하게 데운 후 나갈 때의 온도차를 측정합니다. 즉, 우리 집이 쓴 실제 열의 양이 측정됩니다. 난방수가 많이 돌았든 적게 돌았든 내가 춥게 지냈으면 춥게 지낸 만큼만 요금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유량계는 실제 난방 정도와 난방비 사이에 오차가 있기 쉽습니다. 우리 집 바닥에 난방수가 들어온 만큼 난방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난방비 폭탄, 계량기가 원인>에서 취재한 가정은 집에 들어오는 난방수의 양을 조절하는 유압 밸브가 고장나 있었습니다. 보통 싱크대를 열어보면 각 방으로 가는 난방수의 양을 조정할 수 있는 밸브가 서 있고, 계량기가 있고, 그 옆에 유압 밸브가 보입니다. 이 밸브가 고장나 난방수가 제어되지 않고 너무 많이 들어온 겁니다. (집주인이 설정한 온도에 필요한 물의 양을 한참 뛰어넘는) 뜨거운 물이 잔뜩 밀려들어와서 식지도 않고 빠져나가 버리는데, 이 물의 양만큼 요금이 나온 거죠. 아무리 물이 많이 밀려들어왔다 해도, 사용한 열만큼만 계산됐으면 난방비가 과다계상되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이 집은 평소 낮엔 집에 아무도 없어 난방을 꺼두고, 저녁 때만 난방을 한데다 그나마 쓰지 않는 방 2개는 아예 난방수 물길을 잠궈두고 지냈습니다. 온도계를 가져가 밸브를 잠궈놓은 방들의 온도를 재봤더니 창문을 꼭꼭 닫았는데도 15도 수준. 바닥은 싸늘했습니다. 그래도 난방비를 낮추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난방수가 돌면서 우리 집에 들어오려는 압력이 있다 보니, 안방 건넌방 거실로 고루고루 갈 물길을 막아버린 만큼 유속이 빨라져 물길이 열려 있는 쪽으로 확 쏠렸다가 빠르게 통과해 버리는 겁니다. 열량계로 측정중이라면 이 경우 난방수가 우리 집에 들어올 때의 온도와 나갈 때의 온도를 계산해 뺏긴 열만큼만 표시되지만, 유량계는 이렇게 들어왔다 나간 물의 양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작은 방은 냉골인데, 난방비는 이 방 저 방 다 덥힌 집과 비슷하게 나오는 거죠. 이건, 유압 밸브가 고장나 엄청난 양의 물이 들어오고 있었던 이 가정은 물론이고, 유압 밸브가 고장나지 않은 지역난방 유량계 사용 가정 어디나 겪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또, 이렇다 보니 지역난방에서 유량계를 사용하는 집의 난방비가 열량계를 사용하는 집보다 대개 더 많이 나오게 됩니다. 많게는 절반 가까이 더 많이 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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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 집 계량기는 뭘까?- 계량기에 쓰여있는 단위와 아파트 건립연도를 보세요.

가장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집 계량기에 쓰여있는 계량단위를 보는 겁니다. 'm³'이 표시돼 있으면 유량계입니다. 쓰인 물의 양입니다. 그외 다른 단위들이 표시돼 있는 건 모두 열량계입니다. (열량계는 KWh, MWh 등 단위가 꼭 동일하진 않습니다.) 또 열량계는 온도센서 줄이 나와 뻗어나와 있는데, 이건 집에서 식별하시기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아예 '적산열량계' 이런 식으로 제품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관리사무소에 문의해 보셔도 되고요.
 
아파트가 지어진 시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파트의 경우, 지역난방 아파트는 전국 2백만 가구 정도 됩니다. 이중 절반 가량에 유량계가 설치돼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약 10년간, 열량계보다 1/3에서 1/4가량 저렴한 유량계 시공을 허용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 시기에 건립된 아파트는 유량계를 설치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그 전에 지어진 아파트라도, 단지별로 이 시기에 대대적 난방공사가 이뤄진 곳은 유량계로 바꿔달았을지 모르니 확인해 보시면 좋습니다.


   4. 우리 집 난방수 유압밸브가 고장났는지 자가파악할 수 있나요?- 할 수는 있는데,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점검해 주는 게 맞습니다. 야무지게 일하는 관리사무소는 난방비가 유독 ‘튀게’ 나온 집이 있으면 요금을 부과하기 전에 상황을 알아봐서 조정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죠. 제가 이번에 취재한 가정도 난방비 폭탄을 맞자마자 관리사무소에 문의했지만, 난방 전원만 한 번 껐다 켜보고 아무 문제가 없다며 돌아갔습니다. 저희는 난방비 폭탄을 맞은 가정과 예년만큼 난방비가 나온 바로 윗집의 계량기를 비교해 봤습니다. 난방 설정 온도를 똑같이 맞춰놓고, 유량계 눈금이 움직이는 속도를 본 거죠. 설정온도가 같으면, 유압밸브가 제 기능을 하고 있을 경우 같은 시간에 흐르는 난방수의 양이 같아야 하니까요. 비교 결과, 난방비 폭탄을 맞은 가정은 계량기 바늘이 한 눈금 움직이는데 –저희가 지켜봤던 건 한 눈금에 10리터짜리 유량계였습니다- 1분 10초밖에 걸리지 않은 데 반해, 정상 가정은 5분 30초가 걸렸습니다. 즉, 난방비 폭탄을 맞은 가정은 다섯 배나 빠른 속도로 난방수가 유입되고 있었던 거죠. 난방비 폭탄 가정은 지난달 난방비가 56만 원이 나왔는데, 이 윗집은 14만 원이 나왔습니다. 대략 얘기를 나눠보니, 이 집은 아이들이 있어서 난방비 폭탄 가정보다 난방을 좀더 세게 한 편이었는데도요. 난방수 유입 속도와 지난달 난방비 차이가 얼추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가진단 방식은 사실 일반 가정에서 쓰기 어렵고 번거롭습니다. 일단 다른 가정에 양해도 구해야 하고, 유량계에서 사용하는 단위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듭니다. (저희는 한 눈금에 10리터짜리 유량계를 비교했는데, 유량계를 열어보시면 1리터짜리, 10리터짜리, 100리터짜리 눈금도 있습니다. 여러 개가 같이 있기도 합니다.) 설사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해도, 우리 집 난방수 관리에 문제가 있구나 없구나 정도만 가늠할 수 있는 겁니다. 전문가가 파악해 주지 않으면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알기 어렵고, 아주 번거로운 일입니다.


   5. 더욱 정밀한 난방비 관리시스템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역난방을 하는 단독주택은 유량계를 열량계로 바꿔달면 장기적으로 과다하게 부과되는 난방비를 확실히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파트의 경우, 정확한 난방비를 부과받고 싶다고 우리 집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단지가 한꺼번에 공사를 해야 가능합니다. 결국 이런 아파트 단지의 경우, 현재 조건에서 되도록 정확한 계량이 이뤄지도록 관리하는 게 최선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아파트 관리규약에는 계량기 관리 주체가 모호하게 돼 있습니다. 가정이 계량기 관리 의무를 지고 있는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일반 가정에서 계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죠. 5년에 한 번 정도는 계량기도 교체해 줘야 하는데, 실제 그렇게 하고 있는 곳도 드뭅니다. 관리사무소에서 좀더 신경을 써주면 좋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니까요. 심지어 계량기 관리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냥 가구수대로 단지 전체에 부과된 난방비를 1/n로 일괄 부과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외부 계량기를 검침하면서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난방비, 중구난방으로 부과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걸 배우게 되더라고요. 지역난방공사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난방비가 불합리하게 부과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체계적인 시스템 도입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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