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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12 영화계 이슈: 멀티플렉스 시대의 명과 암

[취재파일] 2012 영화계 이슈: 멀티플렉스 시대의 명과 암
지난해 2012 영화계 주요 사건을 꼽겠노라 말씀드렸는데요,^^;; 벌써 2013년 1월도 끝자락이네요... 하지만! 저의 취재파일은 계속됩니다.

진짜 도둑들은 스크린 훔치는 도둑들? 멀티플렉스

"'피에타'가 교차 상영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영화는 기록을 깨기 위해 여전히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 그게 말 그대로 '도둑'이 아닌가“

"돈이 다가 아니지 않나. 1대1로 싸워서 지면 깨끗하게 인정하겠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나. 다양한 마케팅에 스크린 독점 등 편법이 난무하는 불리한 게임이 펼쳐지니 내가 아무리 착해도 화를 낼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귀국한 김기덕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입니다. “진짜 도둑들은 스크린 도둑”이라며, 천만 영화의 제목을 빌어 국내 영화산업의 문제를 짚은 김기덕 감독을 보면서 ‘감독이 제목 잘 뽑는 재주까지 가졌네’라며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무엇이 김기덕을 화나게 했나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스크린 독과점’이랄지, ‘퐁당퐁당 교차 상영’, ‘멀티플렉스의 횡포’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실상 이것들이 어떤 현상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는 알기 어려우실 텐데요, 이참에 지난해 영화계 큰 이슈였던 스크린독과점의 원인과 실태를 살펴보도록 하죠.

우리나라는 현재 자국영화가 경쟁력 갖추게 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자국영화 점유율 1위는 인도로 93.2%, 미국이 2위로 93.3%, 3위가 한국으로 57.1%입니다. 지난해 어느 달에 이 수치는 더욱 껑충 뛰어올라 국내 영화 자국점유율이 70%에 육박한 적도 있었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는 영화 10편 중 7편이 한국 영화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국내 영화산업이 빠른 시간 안에 성공하게 된 대표적 요인은 바로 멀티플렉스의 정착과 확산일 겁니다. 멀티플렉스 시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도 영화를 할리우드 방식으로 대량소비하기 시작했거든요. 멀티플렉스의 도입은 한국영화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제작과 마케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하게 한 계기가 됐습니다.

멀티플렉스 자체가 나쁜 게 아니야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라고 하면 잘 알고 계시는 CGV나 롯데시네마 같은 극장체인이 들어간 건물을 말합니다. 이런 데 가보면 대규모 복합상업시설이 함께 자리하고 있죠, 여기서 극장은 사람들을 유인하는 매개체로 활용됩니다. 영화 보러 온 김에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가라는 거죠. 멀티플렉스의 기준은 다양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천 명을 수용하는 최소한 8개 스크린을 갖고 있어야 하고요, 규모를 떠나서는 많은 관객을 수용할만한 넓은 장소, 충분한 크기와 질 높은 상영을 보장해주는 스크린(최소 10M), 편안하고 안락한 시설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멀티플렉스 체인(CGV, 롯데, 메가박스 등)에 포함되는 극장은 모두 규모와 상관없이 멀티플렉스로 인정하고요, 멀티플렉스 체인이 아닐 경우에도 스크린 수 7개관 이상을 가진 극장이면 멀티플렉스로 분류합니다.

2011년 말 전국 1,974개의 스크린 수 중 멀티플렉스는 1,844개를 차지해 전체 관의 93.4%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기준을 관객수로 바꿔서 봐도 멀티플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98.1%에 이르고요, 매출액 기준으로는 98.4%까지 올라가니, 이쯤 되면 한국 극장은 '대부분' 멀티플렉스로 전환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멀티플렉스가 가져온 발전상은 엄청납니다. 일단 국내 영화 관객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장규모 전체가 확대되고 산업화가 시작됐죠. 영화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만드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편수가 증가하니 영화 산업 전체 판이 커진 겁니다. 관람환경도 아주 좋아졌죠. 요즘 극장 가보면 3D 스크린이니 사운드니, 영화를 즐기기에 최적의 상태를 구축해 놓은 곳 많지 않습니까.

지금같이 국내 영화산업이 호황을 맞이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공이 멀티플렉스에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멀티플렉스가 야기한 문제점 역시 많다는 게 문제니다. 김기덕 감독이 화난 지점도 바로 이 멀티플렉스가 유발한, 우리 영화산업의 현실과 관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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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투자도 하고 제작도 하고 상영도 했을 때 일어나는 일

국내 대표적 멀티플렉스 체인이라고 하면 CGV와 롯데시네마를 들 수 있습니다. CGV는 대기업 ‘CJ’, 롯데시네마는 ‘롯데’의 계열사이죠. 잘 알려진 것처럼 CJ와 롯데는 극장만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투자와 제작 분야에서도 국내 가장 ‘큰 손’들입니다. 국내 1,2위를 다투거든요. 이밖에도 ‘쇼박스’와 신흥강자 ‘NEW’ 등이 현재 주요 영화 투자·제작사들입니다.

CJ나 롯데처럼 대기업이 투자도 하고 제작도 하고 상영도 하는 극장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자본의 흐름을 생각하면 금세 추리할 수 있으실 겁니다. 기업의 목표는 ‘수익의 극대화’입니다. A라는 대기업이 B라는 영화의 상업성을 높게 평가해 투자에 참여하고 제작까지 나섰습니다. 기술적으로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과 연출진도 그렇지만, 제작비를 쏟은 투자자, 투자사는 관객이 한 명이라도 더 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 수 밖에 없죠. 그런데 투자와 제작에 나선 기업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까지 가지고 있다면? 아무래도 자기 영화를 한 관(스크린)이라도 더 거는 게 인지상정이겠죠.

물론, 극장도 자체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사 영화라고 해도, 극장이 갖고 있는 스크린이 8개라면 8개 모두를 한 영화에 올인하진 않겠죠.^^ 하지만 예상 관객 규모에 걸맞는 수보다 더한 스크린을 배정하는 정도의 일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럴 경우, 한 영화가 한 멀티플렉스에 여러 개의 관을 차지하는 스크린독과점이 발생하는 겁니다.

혹은, 하나의 스크린이라고 하더라도 회차에 따라, 관객이 잘 들지 않는 오전이나 새벽 시간대엔 소위 말하는 작은 영화(상대적으로 상업성이 떨어지는)들을 걸고, 중요 시간대엔 자사 영화를 비롯해 관객이 선호하는 영화를 배치하는 일도 있죠. A극장 1관에 오전 두 타임은 작은 영화, 중요 시간대인 오후 시간대엔 블록버스터가 걸리는 겁니다. 징검다리처럼 회차마다 다른 영화가 걸린다고 해서 ‘퐁당퐁당(교차) 상영’이라고 말하는 게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스크린수는 10배가 됐는데 상영 영화 편수는 줄어들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멀티플렉스가 최대이익을 실현해 줄 영화의 모델을 추출하거나 스크린을 배정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멀티플렉스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이와 반대죠. 하나의 극장이 다양한 스크린을 확보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객에게 보고 싶은 영화의 선택 폭을 넓혀주는 것일 테니까요. 원래 멀티플렉스가 의도한 순기능은 그렇지만, 결과는 소수 영화의 독점으로 드러난 게 현실입니다.

과거 단관극장 시절엔, 한 지역에 10개의 극장이 있다고 한다면 각 극장마다 흥행성 좋은 영화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했고, 결과적으로는 10개의 서로 다른 영화들이 하나의 지역에서 상영되는 시스템이었죠.

멀티플렉스 시대엔 10개의 극장이 각각 10개의 스크린을 가지고 있어 외형적으로는 100개의 선택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영화가 80개의 스크린에 걸리고 나머지 한, 두 영화가 20개 스크린 나눠 갖는 식으로 변질됐습니다. 결국 관객의 입장에선 단관극장 시절엔 선택의 폭이 10개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3~4개로 줄어든 거죠.

이처럼 스크린 몰아주기는 문화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심각한 획일화 현상 초래하고 있어 많은 영화인들이 우려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김기덕 감독처럼 말이죠.

고민에 그치지 않고 행동을 옮길 때

최근 멀티플렉스 사업자들도 이런 비판을 인식하고, 영화적 다양성 확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다양성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CGV 무비꼴라주’와 ‘롯데 아르떼’ 등이 대표적이죠. (*다양성 영화: 주류 상업영화에 대비되는 ‘상대적’인 개념, 통상 저예산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지칭.) 그렇지만 여전히 전체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보자면, 다양성 영화에 할애하고 있는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아, 아직은 너무 미미한 수준이네요.

사실, 김기덕 감독이 말했던 ‘프랑스 멀티플렉스는 각 스크린마다 모두 다른 영화를 상영한다’ 는 사실이 아닙니다.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 전체 영화산업도 멀티플렉스가 유발한 문제들로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 사회는 멀티플렉스 시대가 초래한 명과 암을 분명히 하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대화와 행동을 시작했는데요, 현재 국내에선 멀티플렉스를 암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에만 열중하는 분위기이지 않나 싶네요, 안타깝습니다.

이제 우리도 스크린 독과점 등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 영화산업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저부터도 올 2013년 한해는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고 고민하는 기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번 취재파일은 논문 ‘한국영화산업과 멀티플렉스의 역할(이충직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을 참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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