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찾아가서 부탁하고, 문전박대 당하고. 반론 요청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면, 반론을 충분히 요청했다는 사실을 꼼꼼하게 기록한 뒤, 어느 선에서는 단념하고, 기사는 한쪽으로 기울게 마련입니다. 이번 아동 학대 사건은 어린이집 내부 CCTV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됐습니다. 물론 아이 귀에 피멍이 든 사진은 있었지만, 녹화된 CCTV 영상처럼 보육교사가 가해자라는 명백한 물증은 없는 상태. 보육교사는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 나가 얼마든지 딴소리를 할 수 있고, 보통 양 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십상인데, 이건 좀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22개월 된 여자 아이. 부모 말귀는 띄엄띄엄 알아듣지만,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아직 힘들어 보였습니다. 인터뷰 할 때는 그렇게 사랑하는 베개를 붙들고 카메라 앞에서 뒹굴뒹굴 뒤척이더니, 촬영이 끝나자 “우유 줘~ 우유 줘~”를 연신 내뱉던 귀여운 아이입니다. 이런 아이가 귀에 피멍이 잔뜩 들어서 집에 왔으니, 부모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얼굴 곳곳에 남은 수많은 상처까지. 처음엔 보육교사가 그랬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사건이 터진 지 이제 2주. 아이는 그날 이후, 밤에 자주 깨고, 그럴 때마다 자지러지게 운다며 엄마는 분노했습니다. 아이는 보육교사한테 귀를 잡혔던 어린이집의 어두운 방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멍 자국은 많이 사라졌지만, 학대의 상처는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번 아동 학대는 보건복지부의 ‘평가 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에서 발생했습니다. 정부가 평가해, 괜찮다고 인증한 곳입니다. 어린이집은 평가 인증을 받으면, 보건복지부 인증 간판도 내걸 수 있습니다. 현재 인증을 유지하는 곳은 전체 어린이집의 60% 정도. 상위 극소수는 아니지만, 엄마들한테는 어린이집 선택에 상당히 중요한 잣대입니다. 복지부는 이 평가 업무를 한국보육진흥원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2006년 이후 세밀하게 다듬어지면서 정착해왔습니다. 어린이집의 어떤 측면을 평가할지, 섬세하게 마련된 수십 개의 평가 지표가 마련돼 있습니다. 복지부와 보육 전문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지표들입니다.
보육진흥원은 있다고 했습니다. 진흥원은 39인 이하 어린이집을 평가하는 55개 지표 가운데 이걸 알려줬습니다. “영유아를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기”라는 지표입니다. 보육교사가 영유아를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면 우수(3점), 가끔 그렇지 못하면 부분적 우수(2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흡(1점)입니다. 즉 아이를 폭행하거나 학대하면 영유아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고, 평등하게 대하지 않은 것이므로, 아동 학대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다는 게 진흥원의 입장입니다. 결국 아동을 학대하면 '1점'을 준다는 뜻인데, 현장에서 그런 모습을 볼 리도 없고, 뭔가 좀 부실하죠. 현장 보육교사들이 이걸 정말로 아동 학대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황옥경 교수는 아동 학대 위험성을 직접적으로 진단하는 지표는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평가 지표에 손질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가령, 보육교사들이 아동 학대 예방 교육을 받았는지를 점수로 환산해 평가에 비중 있게 반영할 수 있습니다. 또 평가인증 이후에도 아동 학대 교육을 잘하고 있는지 사후 관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현장 관찰을 하는 그 하루라도 ‘관찰’만 하지 말고, 보육교사와 면담을 통해 학대 예방 효과를 거두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현장 관찰도 제도 시행 초기처럼 ‘불시’에 찾아가 평가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지금은 어린이집들의 항의 때문에, 1주일 전에 미리 알려주고 찾아가는, '친절하게 예고하는' 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이 ‘예정된 행사’ 준비하느라, 보육의 질이 오히려 떨어지는 모순이 생긴다는 불만도 나옵니다. 이 제도와 별도로, 예비 보육교사들에 대한 학대 예방 교육도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의 예방 교육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 견줘 너무 부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생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 향상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