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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의 궁색한 변명②

네이버 영화 평점 삭제 논란

[취재파일]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의 궁색한 변명②
네이버의 영화 평점 삭제와 관련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12일, 영화 '26년'에 달리는 네티즌들의 평점이 실시간으로 삭제됐습니다. 이 사실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이슈가 되면서 삽시간에 퍼지자, 평점은 금세 1700개까지 늘어났고요. 당일 저녁, 네이버는 평점 삭제를 갑자기 중단했습니다. 네이버는 삭제와 삭제 중단 모두 어떤 원칙에 의해 일어난 일인지 설명하지 않아 네티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습니다.

제가 취재를 시작한 뒤 네이버 측과 나눈 대화는 모두 옮겨 적지 못할 정도로 깁니다. 그런데, 그 기나긴 대화 가운데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답변은 이겁니다. "이렇게 깊게 파고 들어가시면, 기자님도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저희 내부 규정을 모두 설명드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저 같은 문외한이 기업의 내부 규정까지 알아내 답변이 곤란한 선까지 취재했을 리 만무하고요, 다만 취재 과정에서 의문이 생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터라 꼬치꼬치 캐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취재가 모두 끝나고, 기사가 방송을 통해 나가고 난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제가 당시 답변을 부탁했던 질문들은, 네이버가 공개하기 곤란했을 '내부 규정'과 관련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그래서 여느 네티즌들이라도 의문을 가졌을 법 한 '당연한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네이버 측 담당 직원과 나눴던 대화를 간략히 옮기겠습니다. 내용과 관련해 왜곡이 없음을 전제하고, 간추려 적겠습니다.(문장의 길이가 짧아진 경우는 있으나 표현을 바꾸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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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평점 삭제는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
- 저희 서비스 정책의 원칙은요,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평점은 정확히 시사회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요, 시사회 이전의 영화에 대한 평점은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아시겠지만 영화를 안보고 평점을 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다 삭제하고 있었습니다.

시사회 이전 영화 평점을 모두 삭제하고 있었다고요? 그럼 ‘26년’과 마찬가지로 11월 개봉 예정영화인 ‘남영동1985’은 왜 삭제하지 않았습니까. 이 영화도 아직 대중을 상대로 한 시사가 한 번도 없었는데요.
-시사회 외에도 영화제도 공개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어느 영화제이든 간에 한 번이라도 공개된 영화라면 평점을 삭제하지 않습니다. ‘남영동’은 얼마 전 부산영화제에서 한번 공개됐더라고요. ‘대중에게 공개됐다’는 의미는 시사회 뿐 아니라 영화제도 해당합니다.

글쎄요, 제가 영화기자이다 보니 얼마 전에 직접 부산영화제에 갔었고요, 당시 남영동을 본 관객은 제가 알기론 수십 명, 기껏해야 1~2백 명이 조금 넘었을까요. 지금 평점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그때 부산영화제에서 한 번 공개했던 그 당시 관객 뿐일까요. 이런 경우에는 객관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 저희가 부산 영화제에서 '남영동'을 본 관객이 얼마 안 된다는 사실까지 팔로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어쨌든 저희 원칙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시사나 영화제를 최초 공개시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저희 원칙이고요. 말씀하신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점차 보완해가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의 최초 공개 시점을 기점으로 이후에 달린 평점만 인정한다는 말씀이신데 그럼 지금 우리나라 개봉예정영화가 한 달에도 몇십 편이 넘는데, 그 모든 영화의 시사회와 국내외 영화제 일정을 각각 일일이 팔로우해서 업데이트 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게 가능한가요. 제가 알기론 시사만 하더라도 기술시사, 기자시사, 일반시사, 유료시사,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데요. 
- 보통 홍보대행사나 영화사와 연계해서 반영하고 있고요. 저희도 사람이다 보니 누락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설국열차’는요. 내년 개봉예정 영화인데요, 이 영화는 '기대지수'라는 새로운 포맷이 노출돼 있고 평점 기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서 삭제할 일도 없었습니다. ‘26년’과 다른데요.
- 개봉일자가 미입력된 작품은 무조건 평점노출과 입력이 제한된다는 가이드라인이 또 따로 있습니다. 26년의 경우는 개봉일자가 11월 29일로 딱 입력이 돼있어서 평점입력이 가능했고요. '설국열차'는 개봉일자도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았고, 아직 대중을 상대로 공개도 되지 않았고, 그래서 저희가 '기대지수'라고 평점이 아닌 새로운 포맷을 적용해서, 정리하자면 개봉일자가 미입력된 작품은 평점노출에 입력이 제한된다. 그래서 설국열차는 그 케이스에 해당된다.

그럼 다시 ‘남영동’과 ‘26년’으로 와서요, 둘다 개봉일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평점입력은 가능했지만 남영동의 경우엔 한 번 공개가 됐기 때문에 삭제를 안 했고, 26년은 지웠다는 말씀이죠?
-네, 맞습니다.

시사회나 영화제 같은, 아직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영화에 달린 평점은 객관성이 떨어져서, 그래서 평점이 아닌 ‘기대지수’라는 포맷을 도입하셨다는 말씀이시죠.
- 네, 맞습니다.

그럼 같은 조건에 있는 ‘26년’도 ‘설국열차’처럼 아예 기대지수 포맷으로 바꿔놨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요. 지금 영화 페이지를 들어가보면  네티즌 입장에선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죠. 평점을 달 수 있도록 돼 있어서 입력했는데 네이버가 세웠다는, 네티즌들은 들어본 적도 없고 제가 지금 들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 복잡한 규칙이라는 것에 근거해서 평점이 모두 삭제된 셈인데요.
-그 부분에 대해선 서비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거나 이런 부분이 다소 미흡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개선이 급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럼 하나만 더요. 지금 '007 스카이폴'같은 영화는 국내에서 공개가 한 번도 안 됐거든요. 제가 알기론 국내에선 이번주 목요일에 있을 기자 시사가 최초 공개인데 이 영화는 지금 평점 입력이 가능하고 삭제는 안 되고 있네요.
- 거기에 대해 또 내부기준이 있을텐데 이건 또 해외영화니까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기자님이 지금 저희 내부적인 기준을 되게... (내부 기준이) 디테일하고 쪼개져있고 그걸 저희가 원칙이나 기준 없이 움직이는 건 아니고요. 해외에서는 몇 번 시사가 있었을 테니까 해외에서 보신 관객들이 국내 포털 사이트에 평점을 입력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영화는 평점 입력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지금까지 대화가 이해되십니까? 네이버의 논리라면 영화 평점을 기입하기 위해선 개봉 전과 후를 살펴야 하고요, 개봉 전 영화는 또 다시 시사회 등을 통한 최초 공개 전과 후를 구분해야 합니다. 거기다 정확한 개봉일이 정해진 영화와 아닌 영화는 또 다르게 취급한다고 하네요. 해외 영화의 경우엔 이 모든 기준과 관련 없는 예외사항으로 간주됩니다. 네이버의 이런 자의적인 원칙에 따라 어떤 영화는 평점을 기입하면 삭제를 당할 수 있고요, 어떤 영화는 평점 기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네티즌들이, 이런 네이버의 원칙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요? 네이버는 네티즌들에게 충분히 설명한 상태였을까요? 다시 대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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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이 말씀하신 그런 복잡한 기준에 의해서 삭제가 이뤄졌다고 가정하고요, 그럼 그렇게 원칙에 따라 지웠다가 다시 삭제를 중단한 이유는 왜죠.(네이버는 평점이 1700개까지 늘어나자 갑자기 삭제를 중단했습니다)
- 그게 저희가 이번 일은 사회적 현상으로 봤고요. 그래서 내부적 판단, 실무 판단에 의해서 이건 (평점을 입력하는 게 가능하도록) 열어놓는 게 맞지 않나, 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저희가 좀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회적인 현상이나 이슈일 경우에 예외적으로 처음 26년을 삭제를 안 한 건데 그 부분에 대해선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내부적인 의견이고요, 그래서 저희가 이 부분에 대한 서비스 정책은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해서 저희가 하려고 하고 있고요.

그런데 사회적 이슈라는 게 어떤 말씀이신가요? 말씀하신 기준에 의하면 사회적인 이슈로 판단하는 기준이 네티즌들이 갑자기 몰려들어서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건 물리적인 이슈인 것 같고요. 그건 기계적인 삭제도 가능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극복의 대상인데요, 그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기준을 디테일하게 설명드리기엔 뭐하지만 일단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이게 좀 극단을 달리는 거잖아요, 한쪽 끝과 이쪽 끝. 어떻게 보면 좌측과 우측의 대리전 양상 그런 걸로 비춰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을 사회적 이슈로 본 거고요.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기준 자체가 틀린 거다라고 하면 저희도 말씀 드릴 게 없어요.

제가 지적하는 건, 말씀하신 것처럼 어쨌든 정치적인 색깔을 띠고 있고 그것에 대한 판단이, 삭제를 하다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이 댓글이 달리니까 그때부터 삭제를 멈추신 건데. 그 영화가 정치색을 띠고 있고 네티즌들의 반응이 극단과 극단에 있어서 사회적 이슈로 봐야한다는 판단을 갑자기 금요일밤 11시를 기점으로 하게 된 말씀이시죠 삭제를 멈추게 된 시점이. 
- 최종 판단은 그 부분인 거죠.

그럼 그 전엔 그것에 대한 판단이 "이건 삭제해도 돼"였다가 11시를 기점으로 "이건 정치색을 띤 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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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제가 말씀드린 건 그 부분이 아니고요, 네티즌들의 댓글 현상 자체가, 댓글을 다는 평점을 주는 현상 자체를 말씀드리는 거고요, 26년이란 영화 자체에 대한 판단 그런 게 아니죠.

그럼 앞으로 어쨌든 간에 어떤 영화가 이슈가 돼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댓글을, 26년 같이 아직 오픈이 한 번도 안 됐고 시사도 안 된 영화지만, 그래서 삭제하는 게 원칙이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와서 리플을 많이 달았다, 그럼 이건 사회적 이슈로 판단하시고 삭제하는 걸 멈추시는 건가요? 이런 예외가 발생하는 건가요?
-그러니까 그런 예외에 대해선 저희가 26년을 처음으로 예외를 둔 건데요. 이 부분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검토의 여지가 있다, 이 부분이 맞는 건가, 라는 것에 대한 재고를 하고 있어요. 

그럼 역으로 묻자면, 애초에 이것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었던 건 맞네요. 이걸 예외로 두셨다기 보단 이것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판단하게 되신 거 아닌가요?
- 글쎄요. 판단 근거, 저희가 그런 걸 모든 판단을 명문화하거나 그런 건 아니잖아요.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없었다 있었다라고 말씀드리기에는 좀.


추가 취재를 하면 할수록 네이버의 원칙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26년'과 같은 조건에 있는 많은 영화들의 평점이 삭제되지 않은 채 여전히 노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SBS [단독] '26년' 네이버 영화평점 삭제 소동…왜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436981

기사가 나간 뒤, 네이버는 영화 평점 페이지를 전면 수정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합리적으로 변화한 포맷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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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네이버 영화 평점이 좀 더 편리하게 변경됩니다.
http://movie.naver.com/movie/other/gonggi.nhn?docID=10000000000027176088

네이버가 이번 네티즌들의 지적에 대해 억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수차례 해 보았습니다.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는 말도 일견 일리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가, 영화와 관련해선 가장 직적접이며 수치화된 형태의 여론과 다름없는 '평점'에 대해 자의적인 운영 방침을 적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물론 도의적인 책임은 인정했지만, 자신들이 기자에게조차 설명하기 힘든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오히려 네티즌들이 잘 모르고 평점을 올렸다고 탓하는 방식도 문제였습니다. 

누가 들어도 이해 가능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설명하는 노력도 여론의 장을 제공하는 포털사이트의 기본 덕목일 겁니다. 네이버가 이번 일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꾸준히 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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