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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벨상의 논리…음모론에 대한 해석

10년 이상 기다려야 할 수도

[취재파일] 노벨상의 논리…음모론에 대한 해석
노벨상 6개 부문 발표가 모두 끝나면서 올해의 노벨상 시즌도 마무리됐습니다. 물론 두 달 뒤인 12월 10일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에 열리는 시상식이 메인 행사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아무 수상자가 없을 경우 더 이상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우리의 관심은 노벨 문학상 발표에 쏠리게 됩니다. 과학 분야의 수상 가능성이 워낙 낮고 시인 고은 선생의 이름은 해마다 언급되기 때문인데, 올해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올해 문학상으로는 처음부터 서구의 시인이 배제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작년 수상자가 스웨덴의 국민시인 트란스트뢰메르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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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것이 아시아 지역의 소설가인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중국의 모옌이었습니다(사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현지에서는 시인인 고은 선생이 수상자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일본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기 때문에, 문학상은 중국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이 공공연하게 얘기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예상대로 되더군요.

수상자 배분 차원에서 모옌의 수상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했던 것은 다분히 음모론적인 해석일 수 있습니다. ‘일본이 이미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죠. 미국은 올해 세 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배출했고 일본도 이미 2002년과 2008년 물리학상과 화학상 두 개 분야에서 동시에 수상한 적이 있습니다.

모옌의 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또 한 가지 음모론적 해석은 2010년 류샤오보의 평화상 수상에 대한 배려 차원이었다는 것입니다. 2010년 당시 중국이 류샤오보의 수상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면서 외교적인 문제까지 불거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국 정부가 좋아하는(반체제 인사가 아니라는 얘기죠) 모옌에게 문학상을 주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사실관계로만 봐도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문학상은 스웨덴 왕립 한림원이 결정합니다. 두 나라간의 의견 조율이 있을 수야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벨상 선정이 그렇게까지 정치적 논리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문학상과 평화상은 가끔 이렇게 논란이 빚어지기는 하는데 과학 분야는 좀 다릅니다. 특히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발표를 보면서는 노벨상이 정말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수준에서만 보더라도,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만한 연구업적들이었습니다. 제가 파리에 부임한 뒤 올해로 세 번째 노벨상 관련기사들을 써왔는데요, 선정 이유를 들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한편으로는 결국 남의 잔치일 뿐이라는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아무리 잘해도 앞으로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입니다. 고려대 전승준 교수와 카이스트 박민아 교수가 1901년 이후 111년 동안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사례를 조사한 "노벨 과학상 분석보고서"가 올해 초 발표됐습니다. 이 보고서는 지금까지 노벨 수상자들이 일반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정리합니다.

우선 과거 20년 간 저술한 논문이 장기간에 걸쳐 아주 높은 논문 인용횟수를 보였다는 것이고요, 또 노벨상에 앞서 울프상, 래스커상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상들을 먼저 수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벨 재단이 주최하는 노벨 심포지엄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수준이 아무리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첫 번째 단계의 중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알려진 유명 과학자들의 연구가 최소한 10년 이상 더 진행되면서 다양한 상들을 받고 노벨 심포지엄까지 참석해야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아무리 획기적인 연구 업적이라도 한참 동안 곰삭고 수많은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뒤에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벨상은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정신으로 신화를 만들어낸 우리지만, 노벨상에서만은 빨리빨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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