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수시전형은 절차가 간단했습니다. 고등학교 내신성적표와 입학원서를 내고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면접과 논술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발표했습니다. 평소 논술에 관심을 갖고 이것만 미리 연습해두면 수시전형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양하고 세분화된 만큼 준비할 게 많아졌습니다. 수시전형 가운데 하나인 입학사정관제를 예로 들면 학교에 따라서 최대 15종류의 서류를 요구한다고 합니다.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영어점수에 입상 실적을 입증할 각종 증빙서류까지. 한 번 지원할 때마다 서류가 수십 장, 많으면 백 장도 넘는다고 합니다. 과장한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습니다.
학교마다 전형마다 요구하는 서류와 형식이 다 다르니 수험생 입장에선 얼마나 헷갈릴까요? 수시모집 철이 되면 대학교 한 곳만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이곳저곳 몇 군데 서류를 넣게 되는데, 어쩌다 실수로 서류를 바꿔내는 일도 벌어집니다.
서류를 바꿔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얼마 전 대학 입시 서류를 바꿔치기 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모녀 사건 알고 계시죠? 그 모녀가 그렇습니다. 조건에 맞지 않는 서류를 잘못 냈다가 한 달이 지난 뒤에 알아채고 억울한 마음에 몰래 서류를 바꿨습니다.
모녀는 서류를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들고 나온 서류를 도로 가져다 놓으려다 딱 걸렸습니다. 일부러 바닥에 동전을 떨어뜨리고 줍는 척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 더 의심을 샀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려 그런 거겠죠. 알고 보니 딸은 이 학교에 이미 다니고 있는데 전공을 바꾸고 싶어서 휴학을 하고 새로 원서를 낸 거라고 합니다. 5년 전에 암에 걸려 고등학교를 자퇴했던 가슴 아픈 사연도 있는데,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어렵게 들어온 학교를 영영 떠나야할 처지가 됐습니다.
모녀가 왜 모르겠습니까. 자신들의 선택이 무모하다는 것을요. 그런데 무모하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건 왜일까요? 도대체 무엇이 평범한 모녀를 범죄자로 만든 걸까요? 딸은 의대에 진학하고 싶어서 입시 서류를 냈다고 합니다. 의대 진학. 그것이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에게는 '목숨'을 걸고 무모한 도전을 한 이유입니다.
철가방을 든 모녀. 세상에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지만 제2, 제3의 모녀 사건은 언제든 또다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학 입시에 목 매는 우리의 교육 현장이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