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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민주통합당은 여전히 호남을 믿어도 됩니까?

[취재파일] 민주통합당은 여전히 호남을 믿어도 됩니까?
호남(湖南). 단어의 뜻으로만 본다면 호수의 남쪽이겠죠. 어떤 호수일까 궁금했습니다. 인터넷 검색해보니 김제 벽골제라는 설과 금강이라는 설이 있더군요. 어쨌든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를 포함한 전라남북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호남은 민주화의 성지로 평가받는 동시에,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전통적인 텃밭으로 인식됩니다. 지난 1988년 13대 총선 이래 비 민주당계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는 곳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2007년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배한 정동영 후보도 80%에 달하는 득표를 얻었습니다. 이만하면 시쳇말로 민주당 입장에선 '집토끼 밭'인 건 확실합니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이 진행중인 현재도 호남은 민주통합당의 텃밭인 것 같습니다. 기사에 그렇게 써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걸 보니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실제 지역별 경선 선거인단 규모를 봐도 전북(9만 5천여 명), 광주전남(13만 9천여 명)으로 수도권을 제외하면 가장 많았습니다. 사실 전체 인구수에 비교해봤을 때 경기 14만 8천여 명, 서울 15만 3천여 명인 걸 감안해보면 광주·전남 선거인단 규모는 대단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지난 1일 전북 지역 투표율과 6일 광주·전남 지역 투표율을 보고 개인적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북 지역의 투표율은 45.51%, 광주·전남 지역 투표율은 50.24%였습니다. 당 대표를 뽑은 전당대회도 아니고,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의 투표율이 이렇다는 겁니다. 그것도 직접 투표소에 나와서 투표하라는 것도 아니고, 전화기로 버튼만 몇 번 눌러도 되는 투표 방식인데 투표율이 고작 절반이라니요? 다른 지역 투표율과 비교해봐도 현재까지 결과로는 전북은 압도적인 꼴찌, 광주·전남은 인천을 밑에 둔 꼴찌에서 세 번째입니다. 제주·울산·강원·충북·경남 모두 호남보다 투표율이 높습니다. 민주당을 한번도 배신한 적이 없는 호남 유권자들이 변심하는 걸까요?

<지역별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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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지역 민심의 이상 징후는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일단 대선 지지후보 여론조사 결과입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현재 호남 지역 여론조사 1등은 안철수 교수입니다. 민주통합당 후보가 아닌 안철수 교수. 대선에 출마할지, 안 할지 여전히 고민 중인 안철수 교수에게 호남의 민심이 기대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4·11 총선 때도 조짐이 있었습니다. 광주 서구을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후보, 그것도 박근혜 후보 최측근 이정현 후보가 당선될 뻔했습니다. 당시 격전지 현장을 취재갔는데, 실제 유세장 분위기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정현 후보 연설을 듣겠다고 인도를 가득 메운 시민들, 심지어 사거리를 지나치던 택시가 잠시 멈춰서 지지한다는 취지의 경적을 울리는 걸 두 차례나 목격했습니다. 시장 상인들이 이정현 후보 유세차를 보고 환호하고 박수 치는 모습이 광주 한 복판의 풍경이었습니다. 사실 전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는 줄 알았습니다.

호남 민심은 지금 어떨까요? 민심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호남 지역 정치인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는 길밖에 없더군요. 그들의 입에서 나온 공통적인 내용은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통합당에 불만이 쌓여있다는 겁니다. 언제부터인지 시기를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최근 일련의 상황만 정리해봐도 불만이 쌓일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겁니다. 지난해 민주당이 시민사회 세력, 한국노총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생긴 소외감, 지난 4월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불만들, 모바일 투표 부작용으로 생긴 광주 동구청 투신 사건, '호남 홀대론'을 주도한 세력들의 득세(호남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민주당에 대한 냉소가 민심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합니다.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지만, 호남 정치인들은 호남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도 민주통합당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온다면 다른 지역보다 높은 지지를 보내줄 것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 당내 경선과정에서도 '부산 정권' 발언과'대북 송금특검'을 받아들였던 참여정부 출신 문재인 후보에게 50%에 달하는 지지를 보낸 준 것에 대해 '역시 호남'이라는 평가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당이나 문재인 후보가 호남을 온전히 믿어도 될까요?

올해 대선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첫 선거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십 년 간 명실상부한 호남의 정치적 중심이었습니다. 적어도 민주당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일방적인 지지는 김 전 대통령의 후광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정치적 중심점을 잃어버린 호남인들은 그 에너지를 집중할 또 다른 중심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의 최근 행보가 그런 정치적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당 바깥엔 안철수라는 대체재도 있어 보입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유난히 호남에 공들이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분명 민주통합당에 대한 절대 지지 봉인을 푸는 듯한 호남 민심에 구애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많아 보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 민주당에 묻습니다. 호남의 기대를 감당할 형편과 능력을 여전히 갖고 있습니까? 여전히 호남을 믿어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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