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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 번 조사에 해외 은닉자산 세계 3위에 오른 한국

[취재파일] 한 번 조사에 해외 은닉자산 세계 3위에 오른 한국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피나는 연습과 준비를 통해 세계 상위권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위 선양입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해외 비정부 기구(NGO) 자료를 보면 일부 기업과 부유층의 나라 망신 시키는 탐욕 순위도 상위권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케이먼 제도, 바하마 군도, 스위스 등 세금 안 내고 자산을 빼돌릴 수 있는 조세회피지역으로 국내 자산이 유출된 순위입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았습니다.

이번 조사는 영국에 본부를 두고 다국적 전문가들이 참여한 단체인 조세정의네트워크에서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 조세전문가 제임스 헨리 팀이 벌인 결과입니다. 조세정의네트워크는 NGO로 활동을 하다가 2003년부터는 영국 의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독립기구로 활동을 하는 탈세나 조세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단체입니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면서 전문성이 강화됐고 오랜 기간 동안 역외탈세 부분을 추적하면서 조세회피지역 내에도 네트워크가 구축이 돼 있는 단체입니다.

조세정의네트워크 아시아 지부 책임자 이유영 씨를 만나보니 이번 조사는 IMF와 World Bank 처럼 국제기구에서 집계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금 유출입을 확인하고, 이를 다시 조세회피지역을 관리하는 글로벌 은행 프라이빗 뱅킹 담당자 네트워크 등을 활용한 자료로 검증해 분석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까지는 국가별 해외 은닉 자산 규모만 공개돼 있고 각 국가별로 누가, 어떻게 자산을 빼 돌렸는지는 공개돼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조세정의네트워크는 1970년 대 이후 2010년 까지 전 세계 부유층이 세금을 피해 해외에 은닉한 자산이 최소한 21조 달러(2경3,950조 원)에서 최대 32조 달러(3경6,496조 원)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빼돌려진 자산이 7,790억 달러로 우리 돈 888조 원이나 됐습니다. 너무 액수가 크면 실감을 못하곤 하는데 우리나라 지난해 경제 규모의 90% 가까운 규모입니다. 누적 개념이라지만 엄청난 액수입니다. 1위는 중국으로 1조1,890억 달러였고 2위 러시아가 우리와 별로 차이 없는 7,98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번에 드러난 액수는 실제 규모보다 적으면 적었지 많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악이 가능한 수치만 이 정도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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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재산은닉 국가별 규모(단위: 10억 달러)]


 
조세회피지역은 세금을 거의 부과하지 않거나 아주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나라들입니다.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만 주면 허울뿐인 페이퍼 컴퍼니도 바로 설립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곳입니다. 전 세계 부유층과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유령 회사를 이곳에 만드는 이유입니다. 서류상 거래가 이곳을 통해 집중되게 해서 세금을 피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조세회피지역에 세운 서류상 회사도 30대 재벌 소속 47개를 포함해 5천개나 됩니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조세 피난처와의 외환거래가 지난 11년간 6배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그렇다고 조세회피지역에 해당 자금이 머물러 있거나 경제 활동이 활발한 것도 아닙니다. 대표적인 조세회피지역인 케이먼 제도 같은 경우 그 지역에 영화관이 단 1개일 정도로 생활 수준은 열악합니다. 실제 자금은 미국이나 스위스 등 글로벌 은행 계좌로 다시 보내져 그곳에 안착됩니다. 조세회피지역에서 이뤄지는 거래라는 것이 결국 세금 덜 내려는 기업이 외국업체와 거래 할 때 원래 가격보다 비싼 가격을 장부상에 적어놓고 송금한 뒤 거래 상대방이 그 차액을 조세피난처로 빼돌리는 것이고 이렇게 세탁된 돈이 최종 목적지인 스위스 등으로 흘러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실제 거래 대금은 800원인데 1,000원을 장부상에 적어놓고 거래 상대방에게 송금한 뒤 거래 상대방이 차액 200원을 약속된 조세회피지역에 보내는 겁니다. 조세정의네트워크 보고서를 보면 자금을 은닉하는 것을 돕는 대표적인 은행으로 스위스의 UBS, 크레디트 스위스, 골드만 삭스 등을 꼽았는데 상위 10개 은행의 자산관리 부분이 관리하는 개인 고객 자산만 2010년 기준으로 우리 돈 7,162조원으로 5년 전보다 2.5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이 이번에 불명예스럽게 해외 자산은닉 순위가 급상승 한 이유입니다. 과거에는 비슷한 조사를 할 때 주로 유럽과 관련된 조세회피지역 위주로 다루면서 한국 부유층들의 은닉 자산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번 조사는 미국 쪽과 관련된 조세회피지역의 자금흐름을 자세히 조사했더니 한국 발 해외 은닉 자산 액수가 수면 위로 많이 드러난 겁니다. 한 차례 자세한 조사에서 이 정도니까 앞으로 몇 차례 관련 조사가 이뤄지면 2위인 러시아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1970년대부터 조사가 이뤄진 것에 대해 개발도상국 시절에 집중된 일 아니냐는 시각이 있던데 자산 유출 규모를 보면 그렇지 만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나라가 해외 차관 등을 빌려서 발전하는 단계에서 자산은 소수 부유층과 기업에 편중된 반면 빚은 일반 국민 모두가 지도록 했고 일부 부유층은 그 편중된 자산을 엄청난 규모로 해외에 은닉했다는 점입니다. 과세 당국이 세부 자료를 하루 속히 확보해 지금이라도 과세할 수 있는 부분은 과세에 나설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다행히 OECD 등 국제기구에서도 최근 조세회피지역에 대한 규제 강화 흐름이 있고 재정이 어려워진 선진국들도 점점 조세회피지역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어, 국가간 공조를 이뤄내는데도 어느 때보다 유리한 여건입니다. 이제는 인력과 비용 탓만 할 것이 아니라 행정력을 적극 활용할 때입니다. 세금의 의무를 공평하게 적용하고, 추가 증세 없이 세수 감소를 막는데도 이 보다 좋은 수단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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