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뉴타운, 10년만에 '실패한 정책'이 되기까지

-서울시 주택정책 '신구상' 발표, 그 이후

[취재파일]뉴타운, 10년만에 '실패한 정책'이 되기까지
"비장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시장 취임 이래 가장 힘든 마음이다."

지난 월요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타운을 비롯한 서울시의 재개발·재건축 정책 '신구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로 서두를 열었습니다. 이 '신구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를 떠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네, 서울시의 재개발·재건축 문제,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고는 건드릴 수 없고 건드려서도 안 될 문제들임이 분명합니다.

서울시의 새 주택정책에 대해 지난 일주일 동안, 현 시점에서 나올 수 있을 만한 지적은 거의 나온 것 같으니, 여기서 저까지 덧붙이진 않겠습니다. 저는 그저, 시청 대회의실에서 '신구상'을 발표하는 박원순 시장을 쳐다보면서, 거대한 역사의 사이클에서 어떤 변곡점을 내가 여기서 또 하나 더 목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뉴타운'은 여러 모로 실패한 정책이 돼버린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동산 호황기였던 2002년 '뉴타운'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 당시 상황에서 적잖은 설득력을 가졌던 정책이라고 말하는 게 공정합니다. 강남에 편중된 부와 선진적인 주거환경을 강북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하겠다는 ‘강남북 균형발전’의 기치가 ‘뉴타운’이라는 정책을 낳은 토대였습니다. 대규모 개발이 일정 이상 부의 증가를 약속했던 ‘좋은 시절’, 알을 낳게만 하면 황금알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저쪽 바구니에만 차고 넘치도록 가득 든 알을 이쪽 바구니에도 채우겠다는 구상 자체는 분명 괜찮은 발상이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이어진 세계적인 자산 버블 속에서, 여기 서울 '뉴타운' 전망의 장밋빛도 그 광채를 더해갑니다. 2002년 1차 뉴타운 시범지구는 은평·길음·왕십리 3곳이었지만, 2003년과 2005년엔 무려 12곳, 11곳씩 추가지정 됩니다. "우후죽순 지정됐다"는 표현이 딱 맞죠. 당시, '우리 동네도 지정만 되면…', '저 동네처럼 고층 아파트로 싹 갈고 길도 넓히고 뭣도 하고 뭣도 하면…' 한몫씩 다 잡을 수 있게 된다는 희망찬 얘기들 나눴던 기억, 또는 그런 어른들 얘기를 귀동냥했던 기억들, 있지 않으신가요. 그런가 하면, '어디어디 지금 알박기 해놔야 된다는데…' '거기 빌라 하나 사놓으면 대박 될 거라는데…' 하면서 가본적도 없는 동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또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실천'했던 기억들도 있을 겁니다.

                   


여기서 무언가, 또는 누군가에 대해 판단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거품 속에서는 이게 다 부풀어 오를 것처럼 보였고, 또 부풀어 오르게 해줄 것 같은 사람이 더 좋아 보였던 겁니다. 2006년 지방선거에 당선된 서울지역의 단체장들도 '뉴타운'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표들을 받아 입성했고, 버블이 터지기 직전이던 2008년 총선에 이르면, 후보들이 앞다퉈 내놓던 뉴타운 관련 공약들은 그야말로 붉은 장미처럼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후반, 정신없이 부풀어 올랐던 미국 주택시장과 금융가의 거품이 펑 터져버리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던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부각되면서, 우리 경제도 혹독한 시련기를 맞았습니다. 이후 우리 경제상황은 얼마간 부침이 있었지만, 부동산 시장의 냉각기는 4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후죽순 지정"되며 호가만 잔뜩 올랐던 뉴타운 예정 지역들에 도사린 수많은 문제들도 수면 위로 떠올랐죠. 불법 거주자라고 하기엔 한 자리에서 정말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 집세를 올려줄 형편이 안 되는 세입자들 뿐만 아니라, 덩그러니 오래된 집 한 채 외에 가진 게 없는 노인들까지 모두 잠재적인 뉴타운 역외민들로서 거주불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는 2009년의 용산참사가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파르게 치솟은 호가가 계단을 내려오는데도, '알을 박고' 대출금을 쏟아 부어온 외부 투자자들도 '물렸습니다.' 장기적인 경기불안이 예고되는 가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뉴타운 지정구역'이라는 '때깔' 잃은 간판만 곳곳에 초라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현재까지 뉴타운 조성이 얼추 마무리된 건 10년전 첫 시범지구로 선정됐던 은평과 길음, 왕십리 지구 뿐입니다. (그나마 이 곳들에 조성된 신규 아파트 단지 일부는 미분양 물량을 여전히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큰 기대 속에 우후죽순 지정됐던 23개 지구 대부분 지역들은 ‘뉴타운 지구’라는 레테르에 발목이 묶인 채, 사업 진척도 지지부진한 상탭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제, "장밋빛 약속들은 모두 거품이었다"며 '청소'에 나설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더 나아 보입니다. '뉴타운'을 둘러싼 기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아도, 뉴타운 붐 조성에 일조했던 오세훈 전 시장은 4차 뉴타운을 추가 지정하지 않고 몇몇 관리대책들을 고안해 내는 것 외에 별로 손쓸 방도가 없었습니다. '뉴타운'에 지분이 없는 재야의 인물이 들어서서야 가차없이 빗자루를 휘두를 수 있게 된 것이죠. 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뉴타운 문제가 아니지만, 사실 그 뿌리에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장기호황에서 장기불황으로의 큰 전환과 그로 인한 시대적 필요의 변화가 총체적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뉴타운을 둘러싼 10년의 사이클이 박원순 시장의 '신구상' 발표회에서 큰 턴을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새 인물이 내놓은 '신구상'은 어떻게 이 상황을 정리할까요. 대규모 철거 후 신규 고층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방식의 개발정책을 지양하고, 기존의 거주자들과 환경을 최대한 보호하는 선에서 '공동체'를 조성해 나가겠다는 서울시의 구상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시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성질이 매우 다릅니다. 이 구상이 얼마나 실천으로 옮겨질 지, 실천으로 옮겨진다면 그 결과는 어떨지, 최소한 몇 년이 지나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을 지양'한다는 이 기조가 최소한 박 시장 임기 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가정할 때, 이후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서울의 주거환경과 서울시민들의 자산 구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입니다.

그 영향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것이 되려면, 무엇보다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은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뉴타운 옥석 가리기'가 오히려 뉴타운 구상의 시발점이었던 '강남북 불균형 상태'의 심화를 더 촉진할 수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추진동력이 더 강했던 한남뉴타운 등 '원래 더 비쌌던' 지역, 강남권 인접 구역들은 다른 뉴타운 구역들이 해제되면서 더 큰 프리미엄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부동산 개발계획은 한 번 중단될 경우 되돌리는 데 긴 시간이 걸립니다. 전 같으면 부동산 시장에서 돌았을 자금이 몇 년째 방향을 잃고 있는 가운데, 향후 부동산 시장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바람이 불 경우, 공급보다 수요가 넘친다는 아주 작은 시그널에도 시장이 요동치고 '원래 더 비쌌던' 지역들에 과도한 쏠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뉴타운을 해제하는 지역들에서 추진하겠다는 '마을공동체'가 프리미엄이 붙은 대규모 개발 지역과 경쟁할 수 있을지, 실효성과 시의 자원 분배 효과를 치밀하게 따져 이 정책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가 정부와 공개적으로 각을 세우는 것은 '신구상'의 적절한 추진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도 꼭 하고 싶습니다. "정부의 도움 없이 이 상황을 서울시가 다 해결할 수 없다"는 서울시 얘기는 분명 지당한 얘깁니다. 그러나 정부와 제대로 조율을 하나도 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이 주관하는 발표회를 통해, "정부가 (사업추진이 더 이상 불가한 지역의) 조합 해산 비용을 대야 하는데, 협조가 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공개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오히려 상황 진척을 현재보다 더 늦출 뿐입니다. 서울시가 '신구상'을 진정성 있게 실천하는 것보다 '이래서 이 정부는 안 된다'는 정치적 제스처를 우선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서울시가 먼저 정부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접점을 모색해야 합니다. 참 얄궂은 상황입니다. '편'이 다른 정부와 지자체가 앞으로도 최소한 1년 가까이 동거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도, 서울시의 주택 문제는 계속 곯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1년은 '편 다툼'으로 낭비하기엔 너무 길고 중요한 시간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