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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번의 '무죄' 한명숙 판결 스타일 분석해보니…①

'한방' 김형두 부장판사 vs. '잘근잘근' 김우진 부장판사

[취재파일] 2번의 '무죄' 한명숙 판결 스타일 분석해보니…①

저는 수학을 싫어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봤을 때도 언어, 탐구, 외국어 세 영역에서 틀린 문제보다 수리영역에서 틀린 문제가 몇곱절 많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재수를 해야 했던 기억이...) 꽉 짜여진 논리틀과 공식 내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자유연상을 선호하는 저와는 안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해 법원을 출입하면서 판결문을 볼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숫자 하나 안 나오는 긴 텍스트니까 신문 읽듯 읽기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서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겼습니다. 법원 출입 기자인 제가 판결문 읽기를 꺼리게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판결문 속의 절차적 진실과 실체적 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검찰을 위한 변명' 편에서 쓰겠습니다.)

                       

판결문에 대한 이해를 넓혀 준 첫 판결문이 지난해 4월 9일 나왔던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첫 번째 무죄 판결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 6개월 후인 지난 10월 31일 한명숙 전 총리는 두번째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 출입기자로서 읽는 판결문의 느낌은 또 조금 달랐습니다. (이 두 판결 모두 1심 판결입니다.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어 '무죄 확정' 판결은 아닙니다.)

편의상 첫번째 무죄를 '5만 달러 사건', 두번째 무죄를 '9억 원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5만 달러 사건은 한명숙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지난 2006년 12월20일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미화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이 기소했던 사건이지요. 9억 원 사건은 지난 2007년 3월부터 8월 사이 돈이 든 여행용 가방을 한 전 총리 자택이나 인근 도로에서 건네주는 등 세 차례에 걸쳐 9억 원을 한 전 총리에게 줬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진술을 토대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입니다.

처음에 뜬금없이 수학 얘기를 꺼냈는데요, 판결문도 수학처럼 철저한 공식, 논리구조,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형사재판은 한 사람의 '사회적 생명'을 다루는 터라 엄격한 입증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우선 5만 달러 사건의 죄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중 뇌물죄'이고, 9억 원 사건은 '정치자금법 위반'입니다. 둘 다 금품을 수수했다는 사실을 기초로 하지만, 뇌물죄의 경우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전제된다는 게 차이입니다. 뇌물은 "돈을 줄테니 뭔가를 해 달라"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어울리겠고, 정치자금법의 경우는 "잘 봐 달라"라는 막연한 기대를 표현한다랄까요.

똑같이 돈을 받았는데 죄명이 중요한 이유는 적용법조가 다르기 때문이죠. 5만 달러 사건의 경우, 5만 달러가 판결 시점 환률로 5천만 원이 넘는다면 "수뢰액이 5천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특가법 2조1항을 적용받게 됩니다. 9억 원 사건의 경우는 "법에 정해지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기부받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정치자금법 45조1항으로 의율됩니다.

죄명 다음에 판결문에 나오는 내용이 검찰의 '공소사실'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각 사건의 범죄사실(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건냈다 등)이 되겠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한 전 총리 측 변호인이 반박을 하게 되고, 법원은 양측의 의견을 듣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판단, 이른바 '선고'에는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과 객관적 기준이 들어가겠지요. 일단 객관적 기준부터 말씀드리면 적용법조에 따른 형량, 형을 깎아줄 수 있는 양형의 이유(초범, 깊이 반성, 사회적 기여 등) 등을 종합해 형을 정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 따라 한 전 총리는 2번의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2번의 '무죄', 한명숙 판결 스타일 분석해보니...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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