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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평화상' made in China!

[취재파일] '평화상' made in China!

서늘한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낙엽이 흩날리는 이맘 때면 언론사 국제부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례 행사가 하나 있습니다. 다름아닌 스웨덴 한림원과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가 차례로 발표하는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특히나 벌써 몇 년째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어 온 고은 시인이나 황석영 작가가 수상할 경우에 대비해 그분들의 일대기나 대표작들을 소개하는 예비 리포트를 만들어 두기 위해 국제부 기자들은 분주하곤 합니다.

아쉽게도 올해도 노벨상은 남들 잔치가 되는 분위깁니다.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문학, 경제학 , 평화 등 모두 6개 분야에서 인류의 발전과 평화에 기여한 인물들에게 수여하는 노벨상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수상자를 배출한 노벨 평화상의 경우, 올해는 라이베리아 대통령을 포함한 3명의 여성에게 돌아갔습니다. 모두 여권 신장에 기여해 온 인물들입니다.

당초 올해 유력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후보로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독재정권의 연쇄 붕괴를 가져 온 이른바 '아랍의 봄'을 이끈 활동가들이 꼽혀왔습니다. 이집트의 인터넷 전문가이자 구글 간부인 와엘 고님이나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청년단체인 '4·6 청년운동'과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블로거 리나 벤 멤니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이밖에 미국의 비밀 외교전문 공개로 세상을 발칵 뒤집히게 만들었던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3명의 수상자 가운데 예멘 출신의 카르만은 아랍의 봄 기간 동안 여성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의외의 수상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그동안 이런저런 후보자 하마평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을 자제하면서 "올해는 지난해처럼 특정 국가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논란이 없는 수상자를 선정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해 왔습니다.

지난해 수감중이던 중국의 반체제 인권운동가 류샤오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겪었던 곤혹스러움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명확하고 강력한 반대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류샤오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중국 정부는 노르웨이 정부에 즉각 보복했습니다. 노르웨이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노르웨이와의 정부 간 교류는 물론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도 중단했습니다. 아마 경제대국 중국의 심기를 거스른 죄로 노르웨이가 치른 댓가가 적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의 노벨평화상에 대한 반발은 노르웨이에 대한 보복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 진영이 서구중심의 논리로 노벨평화상을 이용해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려한다면서 차제에 대체 평화상까지 만들었습니다. 'made in China'! 이름하여 '공자평화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명분은 노벨평화상이 동양적 관심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있기 때문에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류사오보의 수상이 유력하다는 소식에 급조된 공자평화상의 초대 수상자는 타이완의 롄잔 국민당 명예 주석이었습니다. 롄 주석이 중국-타이완 양안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는 것이 수상의 이유였는데 정작 롄 주석은 "수상 이유를 잘 모르겠다"면서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졸속이었다는 반증일 겁니다.

공자평화상 선정위원회는 일찌감치 올해 수상자 후보로 중국 정부가 임명한 티베트 불교 2인자 판첸 라마와 메르켈 독일 총리, 푸틴 러시아 총리, 주마 남아공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포함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곧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중국 문화부가 지난달 29일 갑자기 '공자평화상'을 취소한다고 발표한 겁니다. 공자평화상을 준비해 온 민간단체 '중국향토예술협회'가 당국에 보고하지 않고 임의로 행사를 추진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대신 문화부는 산하 중화사회문화발전기금회를 내세워 '공자세계평화상'을 새로 내놓았습니다. 전쟁과 폭력을 종결시키거나 평화적인 중재를 통해 전쟁이나 폭력을 방지한 사람, 핵무기 및 대량 살상 무기 감축에 공헌한 사람이 수상 대상자로 매년 9월 21일 '국제 평화의 날'에 맞춰 수상자를 발표하겠다면서 내년 9월 21일에 첫 수상자가 탄생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문화부가 이렇게 갑작스레 '공자평화상'을 폐지하고 '공자세계평화상'으로 바꾼 것은 지난해 첫 수상자인 롄잔이 참석하지 않으면서 출범부터 권위를 잃은 데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경우 노벨평화상의 ‘대안’으로 성장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중국인들 조차 괜시리 중국 정부가 '공자'이름만 더럽혔다며 혀를 차고 있습니다.

사실 노벨평화상이 강대국간의 힘겨루기속에 정치적으로 변질된 적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노벨평화상'은 실제로 강대국의 입김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세계적인 전란 과정중에는 선정 자체가 무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나치 독일도 옥중에서 언론의 자유를 호소한 평화운동가 오시에츠키가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마치 21세기 중국처럼 독자적인 평화상을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노벨평화상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되는 요즘, 불현 듯 지난해 수상자 류샤오보의 근황이 궁금해졌습니다. 지난해 시상식 당시 빈 의자만 놔둔 채 영어의 몸으로 상장과 상패, 그리고 150만달러의 상금도 받지 못했던 류사오보는 아직도 어딘가에 투옥돼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 세상을 뜬 부친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립니다. 남편의 영원한 동지인 아내인 류샤 역시 공안의 철저한 감시 속에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노벨상은 분명 최고의 영광이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너무도 미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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