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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와 함께 잊혀진 두 사람

[취재파일] 비와 함께 잊혀진 두 사람

1995년 6월 29일. 제가 중학교 교복을 입은 지 몇 달 안 됐을 때입니다. 90년대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면 그날을 잊지 못할 겁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5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외신들은 '수도의 중상류층 거주 지역의 대형 백화점이 무너졌다' 보도했습니다. 90년대가 성장의 한 축이 되는 이들에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한동안 언론은 삼풍을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건축관련 안전 규정들이 대거 강화됐습니다.

지난 달 20일 오후 3시 45분. 서울 천호동의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90년대 이후 처음 들은 '건물이 무너졌다'는 말에 황당함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경찰에, 소방서에, 구청에 상황을 물어보고 확인할수록 심각한 상황인 게 확연해 졌습니다. 15명을 구조했지만 인테리어 작업 중이던 두 명의 인부는 찾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소방 인력이 동원돼 밤을 지새웠습니다. 하지만 30시간 후, 두 명의 인부는 모두 숨을 거뒀습니다. 먼저 구조됐지만 숨진 이모 씨는 베테랑 조명기술자로 알려졌고, 마지막으로 구조된 김모 씨는 6명의 식구를 위해 인천에서부터 새벽부터 서울 천호동까지 일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씨의 수색이 진행되는 다음날 오후 동안 먼저 구조됐다 숨진 이 씨의 장례는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인테리어 업자와 이씨 사이에 끼어있던 공사 인력업체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안 된 26일, 경찰에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붕괴 첫 날부터 다음 날까지 쉴 새 없이 수색에 나선 소방관들처럼, 강동서 형사들도 밤을 새며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기둥 없이 벽으로 버티는 건물의 벽 가운데 14개를 건물구청 허가 없이 철거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건물안전진단 비용을 아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사고 직후 건물 운영자 이모 씨는 잠적한 상태였습니다.

500여 명과 2명, 그리고 강남 한복판과 천호동. 천 평 넘는 대형 백화점과 3층짜리 상가 건물. 수의 싸움에서는 90년대의 삼풍과 지난 달의 천호동 상가붕괴 사고를 비교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90년대에 매듭지어졌다고 생각한 사고가 또 일어났다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에 앞서 '생명'이 사라졌다는 건 한없이 슬픈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언론에서 한동안 천호동을 말하고, 건축 관련 규정 강화를 외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인 7월 27일, 서울엔 큰 비가 내렸습니다. 이번엔 '수도의 중상류층 거주 지역 뒷산에서 산사태'가 났습니다. 인재로 17명의 목숨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천호동의 낡은 건물의 붕괴사고는, 인부 두 명의 죽음은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과 지면이 한정돼 있어 언론이 모든 것을 담기는 불가능하다지만, 두 명의 죽음이 너무 쉽게 잊혀지는 건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수도가 물바다가 되고 스무 명 가까운 목숨이 사라진 건 설명할 필요가 없이 충격적이었지만 말입니다. 단 이틀 동안이었지만 - 짧은 기간 천호동에 모아졌던 눈동자의 개수를 생각하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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