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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자칫하면 흥인지문까지 와르르?

회사로부터 황급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흥인지문(동대문)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보물 1호 동대문이 무너졌다니,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남대문에 이어서 동대문까지?"였습니다. 일단 동대문으로 향하면서 이곳저곳 전화를 했습니다. 한통 두통 하다 보니, 동대문이 '무너진' 건 아니었습니다. 서울 지역 계속된 폭우에 건물 지붕 일부가 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급하게 동대문으로 뛰어갔습니다.

* 깨지고, 금가고, 잡초까지...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왼쪽 2층 지붕 위가 좀 이상합니다. 지붕 가장 윗부분 용마루에서 추녀로 내려오는 부분, 추녀마루(내림마루)의 마감재 일부분이 떨어져 그 잔해가 기와 위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마감재가 떨어져 나간 부분은 누런 흙이 들어있는 속살을 다 내보이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마감재가 떨어진 부분 사이로 보이는 흙에는 온갖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또, 언듯 육안으로 보기에도 다른 쪽 마감재 부분도 멀쩡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군데군데 금이 좍좍 가 있는 상태였고요. 기와가 깨진 곳도 여러 군데 눈에 띕니다.

* 표면적 원인은 폭우, 근본 원인은?

일단 이번 동대문 파손의 표면적인 원인은 '폭우'입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건물 노화와 관리 부실 때문입니다. 동대문 지붕에는 금이 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에 많은 양의 비가 스며들다 보니,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동대문의 총체적인 보수는 1960년대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붕 보수는 2000년에 하고서 11년 동안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눈에 띌 정도로 하자가 있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그동안 관리 책임이 있는 종로구청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게다가 많은 비가 예보됐었는데,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요?


* 구청 “경미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동대문은 보물 1호입니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유형 문화재로, 총체적인 관리 책임은 문화재청에 있지만, 문화재청이 대전에 위치한데다가 지청이 없다보니, 문화재 소재지 지방자치단체에 1차적인 관리 책임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대문의 관리 책임은 종로구청과 서울시청이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지붕 파손을 두고는 구청은 사실상 손을 전혀 대지 않고 있었습니다. 지붕 파손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지붕 파손 사실조차 폭우가 한바탕 서울을 휩쓸고 지나간 지난달 29일 한 시민의 신고로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동대문 옆에 관리사무소를 두고, 하루에 2차례씩 점검을 한다고 하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나마 그게 지난주 금요일인데, 구청은 나흘이나 지난 어제(8월 2일) 오후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보수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것도 취재진들이 몰려들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동안 구청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구청 측은 그 동안 비가 와서 보수를 하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지붕 보수를 하려면 인력과 장비가 동원이 되어야 하는데, 비가 오면 낙상의 우려가 커져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정도의 파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상 경미한 정도의 파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고 접수 하루 뒤인 지난달 30일(지난 토요일)에는 서울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은 이미 최대 120mm의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있었고요. 그렇다면, 떨어져 나간 자리를 메우지는 못할망정,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천막 정도는 쳐 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지난달 31일(지난 일요일)에 서울 지역에 70mm가 넘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만약 비가 조금이라도 더 왔거나, 바람이라도 불었다면, 자칫 동대문 지붕이 모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구청도 이런 사실을 인정합니다. 스스로 "다행히도 비가 많이 안 왔다"고 말할 정도이니까요.


그런데도, 동대문을 직접 담당하는 구청 직원은 '내부 보고' 때문에 보수 작업 현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담당 부서의 다른 직원들만 나와 있었는데, 기자들의 질문에 응대하던 이 직원은 좀 더 구체적인 답변을 원하자, "사실 지난 이틀 동안 휴가였다"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동대문 건물이 노후하기 때문에 내년 문화재청에 45억 원의 예산을 신청해서 전반적인 점검과 보수를 하겠다고 합니다. 만약 예산을 배정받기도 전에 상상도 하기 싫은 큰 문제가 생겼으면 어쩌려고 했을까요.

* “문화재 관리 제대로 해라”

일부에서는 총체적인 부실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감재 부분은 생석회, 백토, 진흙을 1:1:1로 섞은 삼화토로 바른다. 이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굳어지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금이 갈 정도까지 뒀다는 건 이해가 안 간다. 애초에 비율을 잘못 넣은 부실 공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지붕 곳곳에 잡초가 무성한데, 이건 그동안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더 나아가서는, 동대문 주변 대형 건물 공사까지 지적합니다. 45m 앞 호텔 신축공사, 100m쯤 좌측의 병원 철거 공사, 주변 대형 쇼핑몰의 지하수, 2개의 지하철 노선까지 다니고 있어 불안정한 지반과 진동으로 동대문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 동대문을 지켜라

떨어진 부분을 생석회로 메우는 보수 작업은 오후 2시 30분쯤부터 시작되어 4시 정도에 끝났습니다. 불과 1시간 반이면 되는 임시 보수 작업을 무려 나흘이나 미뤄왔다니요. 그것도 "경미하다"는 이유 때문에요.

600년 넘게 서울을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흥인지문(동대문)이 단지 비 앞에 무릎을 꿇을 리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인 것입니다. 숭례문 화재 사건이 일어난 지도 이제 갓 3년째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탓 할 것이 아니라, 미리 좀 더 철저한 관리와 관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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