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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먼로 치마 속 훔쳐보기!'

- '관음증'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들

[취재파일] '먼로 치마 속 훔쳐보기!'

10만 개가 넘는 포르노 사이트가 성업 중인 나라 미국이 요즘  50년 전 세상을 뜬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중부의 대도시 시카고 한복판 미시간 애비뉴의 '파이오니아 코트(Pioneer Court)'에 8m 높이의 대형 먼로 동상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조형 예술가 J. 슈어드 존슨이 제작한 이 동상은 먼로를 섹시 스타의 반열에 올려 준 영화 '7년 만의 외출(1955년 작)' 속 한 장면을 그대로 재연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 먼로가 지하철 통풍구 위에 서서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원피스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잡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내년 봄까지 전시될 예정인 이 동상을 보기 위해 벌써부터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동상이 워낙 크다보니 그 아래에서 서 있다 보면 자연스레 허벅지와 속옷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보다 동상의 노출 수위가 몇 단계 더 높다는 의견부터 "여배우의 치마 속을 이제 눈치 안 보고 쳐다 볼 수 있게 됐다"는 은근한 농담까지 뒷 얘기가 무성합니다. 짓궂은 남성들은 동상 밑에서 망측한 퍼포먼스를 펼쳐 주위의 여성들을 민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다보니 점잖은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 동상이 도시의 품격을 해치는 '말초적이고 퇴폐적이며 천박한 상업주의'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먼로 동상이 사람들의 '관음증'을 자극하고 있다고 힐난했습니다.

조기 철거 주장까지 나오는 가운데 지역 신문인 '시카고 트리뷴'이 온라인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략 응답자의 40%는 '괜찮은 예술품'이라고 답했지만 다수인 60%는 '천박한 조형물'이라고 혹평했습니다. 성에 대한 폐쇄성이 급속도로 무너져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번 일이 어떻게 전개됐을지 자못 궁금합니다.

먼로의 동상 밑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심리를 과연 '관음증, 훔쳐보기'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섹스 심벌' 먼로 얘기라고는 해도 '관음증'을 '성적 도착증' 으로만 몰아간다면, 그외 또 다른  분석틀을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창호지에 구멍 뚫어 신방을 훔쳐 보던 우리의 전통 관습을 관음증의 기원(?)이라고 삼는다면 이제 관음증은 현대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된 지 오랩니다. 모든 장벽이 없어진 '개방 사회'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조각조각 파편화 돼 홀로 어두운 공간에 숨어 타인의 삶을 엿봐야하는 '닫힌 사회'가 된 겁니다.

익명의 공간인 인터넷을 떠도는 '연예인 X파일'이나 '몰래 카메라식 프로그램'에 대중들이 열광하고, 보호 받아야 마땅한 개인의 '신상 털기'가 공포스럽게 번지고 있는 요즘 한국이 바로 그렇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관음증'을  'Peeping Tom'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Peeping Tom', 말 그대로 '훔쳐보는 톰' 이라는 용어는 11세기 잉글랜드 코벤트리에서 있었던 '레이디 고디바'의 일화로부터 유래됐다고 합니다.

11세기 경 잉글랜드 중부지방 코벤트리의 영주인 남편, 레오프릭 백작의 지나친 징세를 보다 못한 백작 부인 '레이디 고디바'가 남편과 위험한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백작은 부인인 고디바가 가혹한 세금을 깎아주라고 요청하자 부인에게 거꾸로 "만약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농노들의 세금을 깎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백작은 물론 부인이 이 제안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 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백작 부인은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전라로 말 등에 올라 영지를 돌게 됩니다.

영주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알몸으로 영지를 돈다는 소문을 들은 농노들은 그 마음에 감동하여 '레이디 고디바'가 영지를 돌 때, 누구도 그 알몸을 보지 않기로 하고 집집마다 문과 창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내려서 영주 부인의 희생에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음증'을 뜻하는 'Peeping Tom'은 무엇일까요?

다른 농노들의 '점잖은 외면' 과 달리, 솟아오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도는 '레이디 고디바'를 몰래 훔쳐 본 재단사가 있었습니다. 훔쳐보기를 하던 재단사는 결국 눈이 멀어버렸다고 합니다. 재단사의 이름인 톰(Tom)을 따, 이후로 훔쳐보기의 대명사로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현재는 관음증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심리학 용어가 됐습니다.

뜻하지 않게 관음증을 유발시켰던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의 이름을 따서 벨기에에서는 초콜릿 브랜드가 생겨났습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Godiva 초콜릿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이렇게 추앙받고 있는 고디바는 영혼이 아름다웠던 여인이었지, 먼로처럼 요염한 여인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천박한 '훔쳐 보기'에 눈이 멀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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