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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만과의 전쟁'은 '대 테러전'보다 어렵다

[취재파일] '비만과의 전쟁'은 '대 테러전'보다 어렵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금세기 들어 두 개의 커다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 하나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은 '빈 라덴' 사살이라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면서 칠부 능선의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전쟁인 '비만과의 전쟁' 에서는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장기전의 양상마저 띄고 있습니다.

자신의 살을 태워 없애는 일은 따지고 보면 남을 해치는 일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한데다 매년 테러에 의한 것보다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가 훨씬 더 많은 상황에서 '뚱보 나라' 미국의 '비만과의 전쟁'은 좀처럼 활로를 모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비만은 유전적인 요인이나 게으름, 무절제 등 '자기 관리 실패'로 치부돼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다뤄져 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분석가들이 하나, 둘 늘고 있는데, 이들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차원에서 비만을 해부하고자 합니다. 특히나 미국 사회에서 이같은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가집니다.

미국처럼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는 사회의 경우, 사회의 안정과 기득권 유지에 대한 기득권층의 열망은 뜨겁게 마련입니다. 미국 사회에서도 주류 기득권층인 '백인 기독교도'들이 타 인종, 타 교도인들을 무리없이 아우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먹을 거리'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는 일이 급선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차별'이나 '권리'에 대한 주장의 목소리는 잦아들게 마련이라는 얘기지요.

일종의 '우민화 정책'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미국에서도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라고  하루종일 스포츠 중계 보면서 소파에 앉아 감자튀김 같은 패스트푸드 먹으며 시간 보내는 '뚱뚱하고 멍청한' 국민들을 원했던 시절이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건강과는 무관하게 싼 값의 '먹을 거리'만 확보되면 어떤 선거도 문제없다는 인식이 지배했던 시절입니다.

1970년대 중반 미 정치권은 소비자들의 식품 가격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해외에서 개발된, 값 싸고도 맛이 뛰어난 고과당옥수수시럽(HFCS)을 대량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마시는 캔 음료에 적힌 ‘액상 과당’이 바로 HFCS인데요, 이 과당은 분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스란히 간에 도달하는 특성을 지닌 비만의 주범이었습니다. 불과 30년 만에 그 사용량은 10배로 늘어났고 미국인들은 비만으로 가는 특급 열차 티켓을 얻었습니다.

악마의 유혹은  HFCS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라면 기름으로 익숙한 팜유는 과자나 감자튀김 같은 가공식품에 '바삭거리는’ 맛을 더하고 유통기한을 길게 늘려주는 효능이 있지만 돼지기름보다 더 심각한 포화지방 덩어리입니다.

어느새 마약에 취하듯 과당과 팜유에 중독된 미국인에게 패스트푸드 업계는 파상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어린아이들부터 나이드신 어르신들까지, 주머니 사정 어려운 빈곤층을 넘어 중산층 가정까지, 미국인들은 차례로 패스트푸드에 대한 절제를 잃어갔고 그 틈을 타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햄버거와 피자의 크기와 칼로리량을 별 거부감없이 성큼성큼 늘려갈 수 있었습니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외식은 보편화됐고, 학교도 탄산음료 자판기에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일견 정크푸드로 인한 비만이 모든 미국 가정의 문제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히 비만은 계층의, 인종의 문제입니다. 21세기 들어 빈곤층의 비만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데, 이는 수치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흑인의 33%, 히스패닉의 26%, 백인의 15%가 비만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비만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미국 정부는 어렵사리 최근 비만 대책을 하나 내놨습니다. 앞으로19개 대형 외식업체들은 어린이 식단에서 감자튀김과 콜라를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계 최대의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는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정책이 하나 만들어졌다고해서 식습관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주말 외신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떴습니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 '아동 비만 퇴치 운동'에 매진해 온 백악관 안주인 미셸 오바마 관련 기사였습니다

미셸이 워싱턴 D.C에 새로 문을 연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 초콜릿 쉐이크와 콜라를 주문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보수 언론과 공화당 인사들이 미셸을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로 몰아세웠다는 내용입니다. 제게는 한 번 입에 붙은 패스트푸드 끊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집니다.

비만의 사회적 정치적인 원인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분석한  저서 '비만의 제국'(Fat Land)의 결말에서 저자인 그렉 크리처는 유명한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테는 '영원히 춥고 저주스러운 소나기'를 참아야 하는 지옥의 세번째 구덩이에 대식가들을 가두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우리는 '비만'이라는 지옥의 첫번째 구덩이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여러분은 이 지옥에서 계속 허우적대시겠습니까?  남은 건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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