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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재개발로 시작돼 재개발로 사라진 '개미마을'

[취재파일] 재개발로 시작돼 재개발로 사라진 '개미마을'

앞 뒤 보지 않고 자신의 일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두고 '개미'라고 표현합니다. 서울에는 '개미마을'이 두 곳 있습니다. 홍제동과 문정동 두 곳입니다. 척박한 땅에 주민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양새가 마치 '개미'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지난 주, 저는 이 두 곳 가운데 문정동 개미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화요일 개미마을을 찾았을 때, '마지막' 철거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쫒겨나 포클레인에 부서지는 집을 보고 있었습니다. SH공사 소속 보상팀(재개발 예정지 주민 보상과 철거 등을 담당합니다)의 지휘를 받는 용역들이 마을 주민들을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쫒겨났습니다. 철거 현장에 발을 내딛고 얼마 안됐을 때 여자 용역들에게 사지를 붙잡혀 질질 끌려 나왔습니다. 기자가 벼슬이냐, 업무방해하지 말라는 야유를 들으며 말이죠. 발바닥과 구두가 찢겨질 정도로 기를 쓰고 버텼지만 1대 7 상황은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당한 내쫒김은 문정동 개미마을의 갈등 정도를 보여주는 단면 같았습니다.

법조타운이 개미마을 터로 오게 되면서부터 재개발 갈등이 시작 됐습니다  2005년 서울시는 지금 광진동에 있는 동부지검과 지법을 문정동 개미마을 땅에 옮겨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어떤 이들의 일터와 삶터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사이 200세대가 넘는 이주대상 주민들의 대부분은 SH공사에서 제시하는 보상금과 임대주택을 입주를 받아들이고 떠났습니다.

남은 40여 세대들은 SH공사에서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대주택이 비싸니 SH공사에서 짓는 아파트의 분양권을 원가에 가깝게 달라는 겁니다. 이 문제는 서울시 의회로, 권익위로 갔습니다.

시의회와 권익위는 개미마을 주민들에게 특별분양권을 주라고 ‘권고’했습니다. 권고지만 이 결과가 나오기까지 SH공사와 주민들 사이의 신경전과 공방은 지난했답니다. 둘 사이 감정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제가 찾아간 날 SH공사는 수년을 끌어온 철거 마무리를 오후3시까지 완료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땅에 제가 눈치없이(?) 들어선 거겠죠. 눈치없는 객이 끌려나오고, 정확히 6시간 후 개미마을의 모든 건물은 부서졌습니다.

이제 문정동 개미마을은 사라졌습니다. 예전 200개의 가건물들이 서 있던 땅은 지난 화요일 이후 허허벌판이 됐습니다. 개미마을은 80년대에 가락시장과 올림픽 선수촌 개발을 하며 쫒겨난 이들이 모이며 시작됐다 합니다. 척박한 땅에서 땅주인에게 지대를 내며 개미처럼 일을 했다는 곳. 그리고 용역들도, 용역을 지휘하는 사람들도 모두 일개미 처럼 제 일만 했던 곳. 재개발로 시작된 개미마을은 재개발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아줌마들의 울음 소리와 용역들의 고함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재개발 지역이 그렇듯 높고 번쩍이는 건물이 들어서면 개미마을은 기억에서도 잊혀질 겁니다. 몇몇의 기억과 입에 가끔 살아날 겁니다. 그리고 또다시 어디선가 이런 일들이 반복될지 모릅니다. 앞뒤 볼 사이 없는 개미들이 사는 마을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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