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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이돌 고시' 시대

[취재파일] '아이돌 고시' 시대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요즘 10대 청소년 장래희망 1순위는 단연 '연예인'이라고 합니다. 특히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의 '아이돌' 가수는 최고 인기 직종입니다.

최근 가수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또래의 초등학생, 중학생 가수까지 등장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가수'는 더 이상 '꿈'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나도 할 수 있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 가수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연예기획사의 철저한 관리와 교육을 거쳐 '만들어' 집니다. 우리 가요계에 이런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기획사들은 일찌감치 ‘될 성 부른 새싹’을 발탁해 '사관학교'식의 또는 '선수촌'식의 엘리트 교육을 통해 잘 포장해 대중 앞에 ‘잘 만든 문화 상품’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슈퍼주니어, 빅뱅, 2PM, 소녀시대, 카라, 티아라....... 요즘 TV만 틀면 나오는 스타들이 다 이렇게 배출된 '아이돌'입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첫째 관문. 바로 기획사의 오디션입니다. 슈퍼주니어, 소녀시대를 배출한 SM 엔터테인먼트는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오디션을 치르고 있습니다. 매주 치르는 데도 매번 수백 명씩 몰려 북새통을 이룹니다. 빅뱅, 2NE1의 소속사 YG와 2PM, 원더걸스의 소속사 JYP 등 대형 기획사들도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오디션을 여는데, 그 때마다 일대는 10대 청소년들로 뒤덮일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몰리고 있습니다.

사실 오디션을 본다고 해서 합격자가 반드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비공식적인 통계이지만, 연예인을 꿈꾸는 지망생들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디션에 붙을 확률도 1% 정도에 불과하지만, 기획사 측에서도 진짜 '보석'을 찾기가 힘듭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가수 아이유 양도 20차례 가까이 오디션에 떨어졌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게다가 오디션 계에도 사교육 열풍이 불어서 지원자들의 실력 가늠이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통계가 정확히 잡히지는 않지만, 전국적으로 가수 지망생을 교육하는 학원 숫자만도 3천 곳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런 학원에서는 노래 기본기 뿐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 처리까지, 오디션 '쪽집게'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강의료도 수백만 원에 이르지만, 학원마다 수십 명씩 수강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실력이나 외모가 출중해서, 아니면 끼가 충만해서, 운이 좋아서 오디션에 합격을 하면 두 번째 관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기획사의 '연습생' 생활입니다. 연습생은 대부분 숙소 생활을 하면서 기획사가 짜놓은 일정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학생의 경우, 학교와 부모님의 허락 하에 수업 대신 연습 생활을 거치기도 하고요. 그게 불가능하면, 방과 후에 학원이나 독서실을 가는 것처럼 기획사 연습실로 달려가 ‘아이돌’ 수업을 받습니다. 연예인으로서 필요한 노래, 연기, 춤 수업이 기본이고요. 이미지 메이킹이나 해외 진출을 위한 외국어 수업도 포함이 됩니다.

이 연습생 생활을 얼마나 거쳐야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짧게는 몇 개월 만에도 데뷔를 할 수 있지만, 길게는 수년 동안을 연습생으로 지내야 하기도 합니다. 과거 스포츠 선수들이 거치는 ‘연습생’과 비슷한 과정입니다. 최고 걸그룹 소녀시대의 경우도 평균 5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쳤다고 하죠. 하지만, 연습생이 됐다고 해서 모두가 데뷔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연습생이 되어서 데뷔까지 무사히 할 수 있는 확률은 또 1% 정도입니다. 결국 오디션을 봐서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확률은 0.01%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아이돌' 가수의 최종 멤버로 발탁하기까지 '서바이벌' 제도를 운영하는 기획사들이 많습니다. 연습생들에게 미션을 하나씩 준 뒤 그것을 통과하는 연습생들에게 아이돌 멤버 구성권을 주는데, 그게 곧 최종 멤버 확정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래, 춤, 연기, 몸매, 숙소 생활까지 모든 것이 데뷔 전날까지 평가 대상이 되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체력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춤 연습을 하면서도, 대부분의 남녀 연습생들은 몸매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습니다. 끼니를 다이어트 음료나 고구마를 먹으며 때우는 것이죠. '몸'이 곧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가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기획사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연예계 자체가 '정글'인데,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심'과 '독한 근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아이돌' 한 팀을 배출하려면 수십억 원의 돈과 수년에 거친 시간이 투자되는 만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완벽한 상품’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려운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드디어 데뷔를 한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비슷비슷한 과정을 거쳐 나온 수많은 아이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나은 점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미니 앨범을 내고 데뷔한 레드애플은 연습생 시절부터 데뷔까지 1년 정도가 걸렸는데요, 데뷔한 이후에도 7시에 일어나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새벽 2시에 마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돌 밴드이다 보니, 악기 연주를 곁들인 라이브가 중요하죠. 그래서 일정을 다 마친 새벽 2시 이후에 수면 시간까지 줄여가며 개인 연습을 할 때가 일쑤라고 합니다. 리더 재훈은 "데뷔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치열한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야한다"고 말합니다.

오는 8월 데뷔를 앞두고 있는 여성 솔로 엘리자베스. 23살의 이 여가수는 15살 때부터 연습생 생활과 데뷔를 반복해 왔습니다. 기획사의 무리한 경영으로, 자신과 맞지 않는 음악 스타일 때문에,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해 왔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기획사를 만나 1년 정도 데뷔를 준비해 왔는데요, 오랜 시간 힘겨운 시간을 보내며 포기를 생각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라면서 눈물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끝이 없이 달려야 하는 길. 매번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길.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경쟁이 더 치열한 곳에서는 더 치열하게 부딪혀야 할 것입니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이들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아이돌'을 꿈꾸는 사람들은 '아이들'입니다. 자칫 허황된 꿈에만 젖어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내달리는 건 아닌지, 그 나이에 누려야 할 것들을 잃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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