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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알베르 2세의 못말리는 여성 편력!

[취재파일] 알베르 2세의 못말리는 여성 편력!

영국 윌리엄 왕자의 결혼에 이어 또 하나의 세기의 결혼으로 불렸던 모나코 알베르 2세의 웨딩 세리모니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지난 1956년 알베르 2세의 부왕인 레니에 3세와 헐리우드 스타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프라하 결혼에 빗대가며 일찌감치 이런 저런 화제가 만들어졌습니다.

화려한 전야제에 이어 민간 버전과 종교 의식 버전으로 나뉘어 2박 3일간 치뤄진 동화같은 초호화 결혼식에는 우리 돈으로 약 855억원이나 들었습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과 아프라카 각국의 왕족들과 정치지도자들이 하객으로 대거 참석했고, 조르지오 알마니를 비롯한 패션계 리더와 영화계, 음악계, 스포츠 분야 스타들도 자리를 빛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결혼식의 품격을 높여 준 헤로인은 다름아닌 알베르 2세의 대공비인 샤를렌 위트스톡이었습니다. 조르지오 알마니가 직접 디자인한 화려한 보트 넥 드레스를 입고 아버지의 팔짱을 낀 채 등장한 그녀는 역시나 소문대로 아름다웠습니다. 누구 말말따나 '자체 발광'이라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도 왕비의 우아함이 엿보였습니다.

남아공 올림픽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에 걸맞게 늘씬한 이기적인 몸매에 빛나는 금발, 깊이 패인 호수 같은 푸른 눈에 오똑한 코를 가진 위트스톡은 시어머니인 그레이스 켈리에 못지 않은 미모를 뽐내며 20만 명의 하객들과 전 세계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줬습니다.

그런데 이 훈훈한 대공비가 왠일인지...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동반 입장하면서 첫 눈물을 흘릴 땐, 행운을 거머쥔 신데렐라가 부모님 생각에 감사의 눈물을 흘린거겠거니 했지만, 모나코 전통에 따라 성당에 부케를 바치러 갔을 땐 성가대의 반주가 흐르는 가운데 하염없이 펑펑 눈물을 쏟았습니다. 손수건까지 꺼내들고 눈물을 찍어내자 스물살 연상의 부군 알베르 2세는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뭔가 있다!?" 이 영문 모를 눈물은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1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갑부이자 그레이스 켈리의 피를 이어받아 준수한 외모 (물론, 지금이야 머리 벗어진 중년의 아저씨지만...)로 유럽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히면서도 53살이 될 때까지 독신자 신분을 유지해 온 알베르 2세의 문란한 사생활과 화려한 여성 편력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까요? 소싯적에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 브룩 쉴즈, 기네스 펠트로 등과 염문을 뿌렸고, 중국 여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장쯔이와 공리와도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나 공리와는 상당히 진지한 연애를 지속해 혼인 직전까지 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모나코 왕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온 중화권 영화제작자 쉬펑이 알베르 2세 즉위 전1996년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리를 소개했습니다. 당시 공리는 칸 영화제 출품된 주연작 <풍월>의 상연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알베르 2세와 첫 대면을 가졌는데 알베르 2세가 공리를 자신의 신부감으로 낙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리가 싱가포르 갑부와 비밀 결혼을 했다는 루머가 나돌면서 '왕자와 여배우'간의 동화 같은 결혼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알려진 스캔들이 이 정도일 뿐  당대 유럽 사교계의 '불나방'이었던 알베르 2세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은 보다 드라마틱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반증하듯 법적으로는 총각인 알베르 2세에게는 이미 사생아가 둘이나 있습니다.

1991년 프랑스의 코트 다쥐르 지방에 여행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전직 미국인 웨이트리스와의 사이에서 생긴 19살 소녀 재스민 그레이스가 있고  토고 출신 전직 항공기 여승무원과도 아들 알렉상드르를 가졌습니다. 사생아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결국 DNA 검사를 통해 친자임을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양육비는 받고 있지만 2002년 개정된 모나코 법에 따라 사생아들은 왕위 계승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가계명인 '그리말디'도 쓸 수 없습니다.

아마도 여기까지는 신부 위트스톡도 알고 있었고 그냥 묵인하기로 했을 겁니다. 굳이 따지자면 2000년부터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했으니, 토고 여승무원과의 혼외 정사는 위트스톡에 대한 배신인 셈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트스톡이 결혼을 불과 열흘 앞두고 머물고 있던 프랑스 니스를 떠나 고향으로 도망치려 했다는 프랑스 언론의 보도는 어떤 연유에서 나온 걸까요.

모나코 왕실 측은 위트스톡이 혼수 준비로 파리의 백화점에 다녀왔던 게 와전됐다고 해명했었지만, 결혼식 마지막날 순서가 막 끝나갈 무렵인 어제 영국 텔레그래프에 기사가 하나 떴습니다. 익명의 모나코 왕실 고위층의 말을 인용해 "알베르 2세가 혼외 정사로 낳은 세번째 사생아에 대한 소문을 해명하기 위해 곧 친자확인 검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그제서야 위트스톡의 돌출 행동에 대한 비밀이 풀렸습니다. 한마디로, 결혼 직전 남편감에 대한 추가 사생활 스캔들을 미리 전해 듣고, 격분한 신부가 결혼을 보이코트하려고 했던 겁니다. 추정컨데, 모나코 왕실의 설득과 모종의 당근(?)이 추가로 주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멀리와 버린 신부 측 입장에서도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나코 공국 대공 부부의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는 예상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스무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는 일도, 또 남편의 바람기를 극복하는 일, 둘 다 쉽지 않기 때문인데요, 제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면, 위트스톡이 시어머니인 그레이스 켈리의 전철을 밟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레니에 3세의 끈질긴 구애에 못이겨 은막의 스타 자리를 훨훨 벗어던지고, 모나코 공국의 국모가 된 그레이스 켈리의 이후의 삶은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남편과의 불화 속에 사랑에 굶주렸던 그녀는 술과 남자에 빠져 지내다가 1982년 미스테리한 교통사고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의문의 교통사고로 요절한 영국 다이애나 비처럼 눈엣가시가 된 그레이스 켈리를 모나코 왕실이 사고를 위장해 제거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지만 아직도 그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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