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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딸은 싫어! 아들로 바꿔!

- 인도의 성전환수술과 남아 선호

[취재파일] 딸은 싫어! 아들로 바꿔!

남아 선호가 유독 심했던 우리나라에서는 딸로 점지된 뱃속의 아이를 아들로 바꿀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긴 수탉 꼬리털 세 개를 뽑아서 임신부의 요 속에 몰래 넣어두거나 도끼를 요 밑에 깔아 두는 시어머니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고전 한의서마다 빼놓지 않고 임신부에게 복용시켜 딸을 아들로 바꾸는 이른바 '전녀위남(轉女爲男)'의 처방이 기록된 것만 봐도 오래전부터 인위적인 성전환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딸 사랑에 푹 빠진 '딸 바보'들이 속출하고 있는 요즘에도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아들 낳는 법'을 찾아 용하다는 한의원이나 점집을 문지방 닳도록 드나드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요, 그래도 우리는 인도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이미 인구 12억 명을 돌파해 2025년이면 중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 인구대국이 될 것이 확실한 인도에서는 남아선호가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인도의 여섯 살 이하 남아 1,000명 당 여아의 비율은 914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매년 인도에서 태어나는 여아의 수는 남아에 비해 60만 명이 부족합니다. 이런 불균형 성비는 자연적인 선택이 아닌 부모들의 인위적인 관리 때문입니다. 태아 감별이 힘들었던 과거에는 딸을 낳으면 몰래 죽이거나 버리는 야만적인 폐녀(廢女), 기녀(棄女)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불법 낙태를 거쳐 낙태가 금지된 요즘엔 성전환 수술로 변형돼 왔습니다.

인도에서 실제로 매년 수천 명의 여자아이들이 아들을 원하는 부모의 욕망 때문에 강제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성전환 수술은 주로 인도 중부 마디야프라데시주 인도르의 병원들에서 이뤄지는데 수술 비용은 우리 돈으로 약 345만 원 정도로 인도 국민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돈이지만 뉴델리와 뭄바이 등지의 부유한 부모들은 딸을 아들로 바꾸기 위해 은밀히 인도르를 찾고 있습니다.

보통 0세에서 5세까지 어린 나이의 딸 아이들이 수술대 위에 오르고 있는데요, 성전환 수술에 동의할 수 있는 법적 나이인 14살 미만의 여자 아이들이 아들을 원하는 부모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수술을 받고 있는 겁니다. 불법이지만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한 번 물어 보지도 않고 딸아이에게 누군가의 아내가 될, 엄마가 될 권리를 빼앗은 몰상식한 부모들은 아마도 이렇게 항변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어린 나이라  성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수술받고 나서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남자인 줄 알고 살면 괜찮을 꺼야~."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하는 의사들조차 성전환 수술을 받은 여자 아이들은 평생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다 성인이 된 뒤에도 성 정체성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고 심리적으로도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이처럼 여아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 이유는 뭘까? 인도의 부모들이라고 해서 딸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배경 때문입니다.

우선 '카스트'로 대표되는 뿌리 깊은 신분제 사회이다보니 아들을 낳아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재산을 자기 핏줄에게 상속하고 싶어하는 부자들이 많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조혼과 결혼 지참금 풍습이 여전해 딸은 결혼시킬 때 큰 돈이 드는 부담스런 존재로 여겨져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펀자브(Punjab), 하르야나(Yaryana), 구자라트(Gujarat) 처럼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주들에서 성비 불균형은 더욱 심각합니다. 특히 펀자브주에서는 남성 10명 당 여성 비율이 7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여아들의 성전환 수술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도 사회에서는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비난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인도 아동권리보호위원회는 정부에 진상 조사를 요청했고 인도 의료위원회는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의지로 강제 성전환 수술을 받는 일이 없도록 새로운 지침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기의 성을 선택하는 것이 가족 차원에서는 이해할만한 일이라고 해도 국가적 차원에서는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인도에서 매년 남아보다 여아들이 60만 명 적게 태어나는 성비 불균형 현상이 18년간 지속된다면 1천만 명의 결혼 적령기 여성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강간이나 여성 밀매 같은, 미혼 남성이 많은 사회에서 증가하는 사회 문제가 빈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하고 상대적으로 지위와 경제력이 낮은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들은 결혼은 꿈도 못 꾸는 사태가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결국 사회를 파괴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여성이 시대의 중심이 된 21세기, 시대 착오적인 남아 선호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매년 1억 명의 여아들이 낙태와 성전환을 통해 세상에서 사라지는 젠더사이드(Gendercide, 여성에 대한 조직적인 살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을 넘어 서글픔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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