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왜 한국여자들은 아이를 낳지 않느냐'에 대한 어떤 대답

직장내 출산율 국내 평균의 1.5배, 유한킴벌리

[취재파일] '왜 한국여자들은 아이를 낳지 않느냐'에 대한 어떤 대답
이 회사엔 '느티나무 공간'이란 곳이 여러군데 있습니다.

임신중인 여직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침대와 쇼파, 마사지 의자 등이 마련돼 있고 육아 잡지들도 비치된 아늑한 방입니다.

임산부들은 막달이 다가오면 회사가 마련한 태아 검진을 받고, 정기적으로 소속팀장이나 부서장과 간담회도 가집니다. 아예 자리를 마련해 줄테니, 임신 중 업무에서 고충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부서장에게 얘기해 도움을 받으라는 취집니다.

출근시간도 고를 수 있습니다. 법정근무시간은 똑같이 지키지만, 8시, 9시, 10시까지 3가지 출근시간 중 자신의 상황에 가장 맞는 시간을 골라 출근합니다.

육아중인 여직원이 신청하면 회사에서 그때마다 유축기를 빌려 설치해 줍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보육시설 등 국가가 의무화하고 있는 각종 대기업의 모성보호 정책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 회사는 최근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도 꼽혔다는 유한킴벌립니다. 이번에 취재가기 전까지, 아는 사람 하나 없었던 남의 회사를 너무 칭찬했나요.

저도 일단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을 최고의 자세라고 배우는 기자이다 보니, 써놓고 나서 좀 쑥스럽긴 합니다.

그러나 이곳의 임산부 직원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저는 지금까지 얘기한 모성보호책들을 차치하고라도 이곳이 널리 칭찬해 알리고 싶은 기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눈치주는 게 없어서 좋아요. 제가 외근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먼저 나서서 도와주셨어요. 임신했다고 하면 그냥 다 축하해주는 분위기에요.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 모르지만 아이를 낳고 돌아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부담을 주지 않으세요."

네, 저도 직장인으로서, 언젠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자 하는 여성으로서 바로 이것이 임신하고픈 모든 여성직장인들의 소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회사도 언제나 이렇게 모성친화적인 기업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법적 의무 외에 이 회사가 여러 모성보호책을 펼치기로 한건 2005년부텁니다. 당시 이 회사의 40%를 차지하는 여성직원들의 출산율은 평균 1.0명 정도. 당시 우리나라 평균출산율보다도 낮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적극적인 모성보호에 나섰을 때,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6년만에 여성직원들의 평균출산율이 1.68명에 이른 것입니다. 왜 한국여자들은 애를 낳지 않느냐는 세간의 성토에 대한, 다른 말 필요없는 대답입니다.

혹 이 취재파일을 읽으시는 분들은 첨부된 저의 지난 14일 리포트를 한 번 봐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나라의 모성보호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이 낳은 상황들은 아주 간략하게나마 제 리포트에 담고자 애썼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해 초고령사회로 돌진하게 있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조금 낳는 나라.

일할 사람, 소비할 사람, 사회를 유지할 사람이 심각한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나라.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아니 연일 이어지는 노인 자살 기사들을 기계적으로 접하면서 이미 그 부메랑의 날카로운 끝이 우리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복잡하게 얽혀있긴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여성들의 모성과 노동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기본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이 상황은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리포트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이지만 그나마 모성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는 대기업 정규직 여직원들은 조금 나은 편이었습니다. 비정규직, 계약직 여성들은 임신과 동시에 사회에서 밀려나는 게 당연시돼 있었고 재취업의 기회도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악을 쓰고 바둥바둥 지금의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한번 밀려난 계단을 다시 오를 수 없는 사회, 잠시 쉬어가거나 느릿느릿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출산과 육아 때문이어도 그것이 밀어냄의 사유가 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혼자 벌어서 아이 학원이라도 제대로 보내기 힘들지만, 임신과 육아는 몰래몰래 있는 듯 없는 듯 장막 뒤에서 해결하거나 밀려나거나 하는 사회에선 "네", 누구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구미 선진국들이 우리 눈엔 과하다 싶을 만큼의 모성 보호책을 펴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자비롭거나 생각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전에 좀더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모성보호책을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제게 한 고급공무원이 그러시더군요.

경제학적 관점에서 효율의 측면을 따져 정책을 수립하게 돼 있는 입장에선 마인드보다 효과를 중시하게 된다고요.

네, 그 말씀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임산부들, 아니 여성들과 그들의 가족들도 마찬가집니다.

너희들이 마인드를 바로 가지면 아이를 낳을 거라는 구호, 여성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출산 캠페인으로는 절대 출산율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가져올 효율성.

지금 모성을 보호하지 않는 기업들의 제품을 살 소비자도 일할 근로자도 없는 내일.

모성보호에 대한 이른바 사회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더 개선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처할 내일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