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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살인 괴물쥐! 그리고 남아공 빈민가

[취재파일] 살인 괴물쥐! 그리고 남아공 빈민가
잇따른 돌연변이 거대 생물체들의 출현에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멀리 아프리카 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거대한 괴물쥐가 나타났습니다.

이 남아공 괴물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쥐로 알려진 아프리카 두더쥐붙이쥐의 변종으로 추정되는데 몸 길이가 1미터나 됩니다. 왠만한 고양이 보다 훨씬 큰데요, 몸집 만큼이나 큰 2.5센티미터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곳니는 없고 앞니와 앞 어금니만 가진 설치류 (齧齒類, rodent)의 일종으로 수명은 50년 정도이며 식물 뿐만 아니라 동물도 먹어치우는 잡식성 동물입니다.

그런데, 이 남아공 괴물쥐가 경악스럽게도 사람을 공격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며칠 전 남아공 남단 대도시의 케이프타운과 수도인 요하네스버그에서 어린 아이 2명이 괴물쥐의 공격을 받아 숨진 겁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3세 여자아이 루나티는 한밤중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집 외벽에 난 구멍을 통해 들어온 괴물쥐에게 물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루나티의 엄마인 부키스와 드와드와는 경찰 진술에서 "딸을 발견했을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빰에 날카로운 것에 깊게 파인 듯한 상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괴물쥐가 아이의 눈을 완전히 도려내 파먹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남아공 괴물쥐의 인간 공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서 지난달에는 77세 노인이 괴물쥐에게 물려 사망했습니다.

괴물쥐 습격에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주민들은 경찰에 괴물쥐를 잡아달라는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습니다만 경찰은 오히려 숨진 아이의 엄마를 '자녀 관찰 소홀'의 책임을 물어 체포했을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신 많은 분들이 돌연변이 거대 괴물쥐의 가히 엽기적인 살인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쉽게 간과하게 되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괴물쥐가 어떻게 집안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어린 아이를 물었을까? 바로 이 점이죠!

앞에 상술한 사건 개요에 답이 나와 있는데요. 괴물쥐는 '집 외벽에 난 구멍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와' 자고 있던 아이들을 물었던 겁니다. 집 외벽에 난 구멍이라...? 이것이 바로 흑백 차별의 후유증이 여전한 남아공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징표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 우리나라만해도 외벽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집은 사라졌지만 멀리 남아공 빈민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피해 아동인 루나티의 집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품고 있는 남아공 제2의 도시이자 세계 10대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케이프타운 '외곽'에 자리한 빈민촌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주워 온 판자때기를 얼기설기 엉성하게 이어붙여 비 바람이나 피하고자 만든 움막을 집으로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에서 잠을 자다가 루나티는 변을 당했습니다.

이런 판잣집에 무슨 단단한 콘크리트 외벽이 있겠습니까? 아니면 두꺼운 방범창이 달려있겠습니까? 야생 들판과도 같은 빈민가 마을에 먹이를 찾아 나타난 허기진 괴물쥐에게 구멍이 숭숭 뚫린 허름한 판잣집은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다른 희생 아동은 남아공 최대 도시인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대규모 빈민가인 소웨토(South Western Townships)에 살고 있었습니다. 추정컨데,  그 아이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빈민촌에는 물론 거의 100% 흑인들만 살고 있습니다.

1994년 역사적인 넬슨 만델라의 집권과 함께 남아공은 공식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흑인차별)를 철폐했고 스스로 '무지개의 나라'로 칭하며 상대적으로 소외받았던 흑인에 대한 지원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을 치르면서 빈민가를 없애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흑인 정권이 들어선 지 17년이 지났지만 남아공에는 여전히 아파르트헤이트의 그림자가 남아 있고 인구의 77%를 차지하는 흑인들은 여전히 가난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살아 온 빈민가를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10%도 채 안 되는 백인이 모든 경제권을 쥐고 있는  남아공의 경제는 근래 들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된 이유는 백인들의 자본이 해외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흑인들을 위한 법들이 많이 만들어지다보니 기득권을 가졌던 백인들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백인 자본은 몰래몰래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대다수의 흑인 국민들은 가난해서 세금을 낼 돈이 없고 그동안 많은 세금을 내줬던 백인 재벌들이 빠져나가면서 국가의 재정 상황도 상당히 열악해졌습니다. 그렇다보니 빈민가에 살고 있는 흑인들에 대한 지원도 이전만 못하게 됐습니다.

'The second tracking'이란 이름으로 이민을 떠난 남아공 백인들이 수만 명에 달하면서 요하네스버그 같은 대도시는 마침내 흑인들 차지가 됐지만 다운타운은 급속히 슬럼화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선 남아공 흑인과 짐바브웨 등 인접국 흑인 이주민 간의 黑-黑 갈등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습니다.



흑인 중산층 형성은 아직 멀기만하고 분명한 사회의 한 축이었던 백인들의 외면도 달래지 못하면서 남아공 흑인 정권은 갈팡질팡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경험 부족 탓인지 부정, 부패의 만연과 인종적 고려에서 비롯된 비 효율과 사회 분열이 많은 시행 착오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흑백사진의 악몽은 걷어냈지만 남아공 하늘에 진정한 천연색 무지개가 뜨는 날이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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