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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부인의 이혼 소송!?"

중남미의 여풍과 그 배경

[취재파일] "영부인의 이혼 소송!?"

중미 과테말라의 영부인이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남편인 대통령이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생활비를 제대로 안 줘 살림살이가 힘들어서도 아닙니다.

알바로 콜롬 과테말라 대통령의 세번째 부인인 산드라 토레스 여사가 8년 간의 결혼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것은 올 9월로 예정된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토레스 여사는 현 정부의 빈곤구제 프로그램을 이끌며 정책 수혜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어 왔으며 남편 못지 않는 정치적 수완을 뽐내온 여걸입니다.

그런데 토레스의 대권 가도에 장애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과테말라 헌법 규정이 대통령 가족의  차기 대선 출마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을 어길 수는 없고, 고심 끝에 영부인은 남편과 갈라서기로 결심하고 지난주 법원에 정식 이혼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죠.^^

영부인의 의도를 뻔히 아는 야권과 카톨릭 교회에서 영부인이 정치적 욕심을 위해 비열한 행동을 하려 한다며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자신을 '헌법 수호 그룹'의 일원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이혼소송 주심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 부부의 이혼을 허가할 경우 판사 가족 중 한 명을 처형하겠다는 협박까지 했습니다.

혼란이 커지자 법원은 학생들의 탄원이 소송절차로 받아들여질지가 결정될 때까지 토레스의 소송 진행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뜨끔한 영부인은 일단 자세를 낮춘 채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지만 그녀가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과테말라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칠레 등 중남미 국가에서는 유독 여성 정치인들의 인기가 높지요.

                    
                
         

<페르난데스 대통령>               <이사벨 전 대통령>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의 현직 대통령이자 전직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페르난데스도 남편의 후광 덕에 지난 2007년 대선에서 TV 방송 토론 한 번 거치지 않고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이사벨 페론이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등장했는데, 이사벨 역시 영부인 출신이었습니다.

'에비타'로 유명한 에바 페론 역시 갑작스런 병으로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뜨면서 비록 대통령은 못 됐지만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인기가 높았던 영부인이자 정치인이었습니다.

      

                                    

<칠레 바첼레트 전 대통령>                      <브라질 호우세피 대통령>

칠레도 바로 직전 대통령이었던 바첼레트가 여성 대통령이었고,  남미 최대국인 브라질을 이끌고 있는 딜마 호우세피 대통령 역시 대표적인 여장부입니다.

물론, 중남미의 여성 대통령들이 항상 남성들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첫 여성 대통령 타이틀을 가진 이사벨은 집권 2년이 채 못돼 쿠데타로 실각했고 집권기간 중 반 체제 인사 살해에 연루된 혐의로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는 등 정치 역정이 고달팠고  아르헨티나 현직 대통령인 페르란데스는 '남미의 이멜다'로 불릴 정도로 사치를 즐겨 구설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럼에도 중남미 여성 정치인들이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저는 중남미의 근, 현대 정치사를 통해 간단히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16세기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통치 아래 놓였던 중남미는 19세기 초반이 되면서 칠레를 시작으로 차례 차례  독립하게 됩니다. 독립 이후 중남미 국가들은 각각 왕정과 과두정 등 다양한 정치 체제를 실험해 보지만 쓰라린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결국 20세기 초가 되면  대부분의 나라들이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 발견되는 공통점은 정치가 불안정하고 쿠데타가 거듭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무기력하고 부패한 정치 세력과 독재자들은  거의 남성들이었습니다. 남성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게 된 배경입니다.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경제 자립과 발전에도 실패하면서 많은 중남미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근본 원인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 중심으로 꾸려진 '세계적인 착취 구조'에서 찾았는데 이른바 ' 종속이론'과 '사회주의 혁명론'이 중남미 대륙을  휩쓸게 됩니다.

이후 좌파 성향의 정권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중남미의 정치 풍토도 많이 바뀌는데, 그 흐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양성평등의 실현입니다. 그 결과, 여성들의 정치 엘리트 진입에도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여기에 센세이션한 인물에 쏠림 현상이 강한 라틴 민족의 특성이 에바 페론 같은 카리스마 있는 여성 정치인들이 맘껏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됐습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                  <호주 길러드 총리>             <아이슬란드 요한나 총리>

중남미를 넘어 전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호주의 길러드 총리를 대표로 핀란드, 우크라이나, 아이슬란드, 슬로바키아에 이르기까지 여성 수반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닙니다.

특히 아이슬란드 여성 총리 요한나는 동성애자임을 선언했고, 재임 중 여성 파트너와 결혼까지 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중요한 것은 집권자가 남성이냐 여성이냐가 아닙니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고 정도를 걸어 온 정치인을 제대로 뽑아 그를 중심으로 국민의 역량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결집하느냐에 한 국가의 성패가 달린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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