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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후쿠시마 여자라고 파혼하자네요"

[취재파일] "후쿠시마 여자라고 파혼하자네요"

방사능 재앙의 한복판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의 비극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자신을 후쿠시마현 사람이라고 밝힌 혼기 꽉찬 한 일본인 여성이 '야후 재팬'에 가슴 아픈 사연 한 자락을 올렸습니다.  

후쿠시마의 여인은 같은 대학에 다니던 간사이 출신의 남자 친구와 클럽 활동을 함께 하며 사귀기 시작했고 졸업 후에도 비록 서로 직장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소중한 사랑을 계속 키워 나갔습니다. 두 사람은 이틀 이상 휴일이 생기면 어느 쪽이 됐건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만났고 마침내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상견례도 마치고 올해 안에 결혼하기로 날짜까지 잡은 두 사람에게 지난 11일 엄습한 대지진과 쓰나미는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고향인 후쿠시마에 살던 여인에게 남자친구는 시시각각 전화와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며 무사한 지를 물었고 걱정과 위로의 말을 전해왔습니다.

다행히 여인의 가족과 친지들은 모두 무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든든하던 남자의 연락이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가 폭발하고 방사능 오염이 심각하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오던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는 여인에게 전화로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남자는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았지만 여인은 갑작스런 이별 통보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방사능에 쏘였을 지도 모르는 여자과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다는 고뇌 어린 결론을 내린 남자 친구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후쿠시마 여자라는 이유로 앞으로 영영 결혼이나 연애를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한없는 절망감이 든다며 후쿠시마 여인은 글을 마쳤습니다.

글을 접한 네티즌들은 그런 이유로 약혼녀를 버리는 남자를 어떻게 믿겠냐며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다며 격려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방사능 위험을 과장 보도해 시청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무책임한 언론에 책임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댓글 중에는 "같은 일이 닥친다면 힘들겠지만 나도 남자와 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다"는 솔직한, 혹은 현실적인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최근 일본에선 후쿠시마현에 사는 주민들에 대한 차별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고 있습니다.

NHK 방송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피난을 떠난 후쿠시마 주민들이 인근 지역의 호텔이나 여관에 갔다가 숙박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후생노동성이 후쿠시마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숙박업소들이 숙박을 거절할 수 없도록 지도해달라고 지방자치단체에 협조 공문을 내려 보내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원전 주변 마을 주민 4만 2천여명을 조사해 본 결과 67명만이 옷에서 소량의 방사능이 검출됐고 이 마저도 건강에 영향이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실체 없는 루머가 괴물이 되어 엄한 사람들을 잡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쓰라린 피폭 경험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2차 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을 당한 원폭 피해자들이 70만 명이나 되는데 이 가운데 10%가 '재일 한국인'이었습니다. 당시 이들은 원자폭탄의 폭발과 함께 열선, 폭풍, 방사능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4만 명이 사망했고, 3만 명 중 2만 명은 남한과 북한으로 각각 귀국했습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들은 분단과 전쟁, 냉전을 거치면서 사회의 그늘에 가리워진 채 고통 받아왔습니다.

간신히 생명을 구한 원폭 피해자들도 방사능이 인체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파괴력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 현재 생존자는 2천 6백여 명입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회원 기준) 방사능 후유증에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자녀 세대로 대물림된 가난과 질병, 차별과 소외 등의 문제라고 합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대 재앙 이후 66년 만에 다시 찾아 온 후쿠시마의 악몽!! 



후쿠시마 사람이란 낙인이 찍힌 채 어둠속에서 숨 죽여 흐느껴 우는 21세기 판 주홍 글씨의 비극이 현실화 되지 않도록 일본 정부, 더 나아가 지구촌 이웃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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