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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학 입학도 아닌데 왠 눈치작전

[취재파일] 대학 입학도 아닌데 왠 눈치작전

눈치 작전...대학 입시 때에나 듣는 단어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받은 점수에 따라 학교나 학과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어떤 학교, 학과에 지원하느냐에 맞춰 학교나 학과를 결정하는 전략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눈치 작전이 요즘 여의도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4.27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에 임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입니다.

3월 22일 현재, 한나라당 분당을 보궐선거 준비 상황은 이렇습니다. 강재섭 전 대표와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 등 모두 6명이 후보 공천을 신청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공천심사위원회가 경선 등을 거쳐 이들 가운데 한 명을 최종 후보자를 결정할 가능성이 큽니다.그러나 당 지도부와 여권 핵심 인사들의 표정에는 공천 심사가 그냥 이대로 진행되길 원치 않아 보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선거 사무를 책임지고 있는 원희룡 사무총장마저 '전략 공천', 즉 당 지도부가 당선 가능한 인물을 골라 낙하산 공천할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나라당 전략 공천의 핵심 인물은 바로 정운찬 전 국무총리입니다. 이재오 특임장관을 비롯한 여권 핵심 인사들의 정 전 총리에 대한 구애는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정 전 총리는 요지부동입니다. "내가 직접 출마한다고 말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며 불출마를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당 지도부는 애를 태우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당 지도부의 구애가 소용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당 지보는 정운찬 카드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절대 안 나겠다는데 왜  당 지도부는 정운찬 카드를 놓지 못하는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답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게 있습니다. 만일 손학규 대표가 분당을 보궐선거에 나온다면, 현재 한나라당 후보로 신청한 어느 인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 자체 여론조사에도 유일하게 정운찬 전 총리만 손 대표에게 승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임태희 대통령 실장이 18대 총선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입니다.

특히 성남 분당 지역은 내년 4월 총선에서 서울 강남의 판도를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이런 분당 지역에서 패배한다면 그야말로 한나라당이 안방에서조차 안심할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당도 이런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보궐 선거에서 분당을 지역이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워낙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였던 지역이라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재 민주당 후보 공천을 신청한 인사로는 김병욱 분당을 지역위원장과 김종우 분당고향만들기모임 회장이 있는데, 이들이 대어를 낚기엔 다소 버거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손학교 대표 출마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손 대표가 충분히 승산 있는 카드라는 점은 한나라당도 인정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만약 손 대표가 패한다면 감수해야 할 충격이 너무나 크다는 겁니다. 때문에 민주당 쪽에서도 정운찬 전 총리의 출마 여부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거취를, 반대로 민주당에서는 정운찬 전 총리의 거취만 바라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바로 오매불망 분당을 보궐선거에 나갈 생각으로 두 당에 후보 공천을 신청을 한 8명(한나라당 6명, 민주당 2명)이 그들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기회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공천 심사 과정에 충실히 임했던 이들이 마음을 상했을 거라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지역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할 분당을 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는 여야 정당끼리의 눈치작전 후보 경쟁에 시선이 고울 리 없을 겁니다.

취재파일을 쓰는 동안 신정아 씨가 새로 발간한 책에 정운찬 전 총리에 관한 부분이 알려졌습니다. 저술 내용의 진위를 떠나 정운찬 전 총리에겐 상당한 악재가 될 게 뻔해 보입니다. 이로써 정 전 총리의 분당을 출마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어를 낚기 위해 손학규 대표가 나설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성숙된 것 같은데요...과연 손 대표가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요?  한나라당은 또 다른 전략공천자를 찾아야 할 지, 아니면 지금 후보 중에서 골라야 할지 계속 골치 아픈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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