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나사 풀린 코레일

지난 추석 명절 때 일이다. 추석 하루 전날 연휴 아이템 제작이 있어 아내와 아이들 먼저 서울 형네집으로 올려 보내고 오후 6시쯤  KTX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오전부터 서울지역 폭우소식을 들은 터라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현장 상황을 몰라 그 뿐이었다.  KTX가 수원을 지나 광명역을 앞두고 터널 안에 진입하면서 속도가 확 떨어졌다. 수도권 선로 침수가 잇따라서 서행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거북이 운행을 하던 열차는 마침내 터널 한 가운데에서 10여 분쯤 멈춰섰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선로가 침수돼 차량 운행이 지장을 받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터널안에 갇혀있는 답답하고 갑갑한 심정, 기분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만큼 별로였다. '이러다가 혹시 무슨 일 나는 것 아냐?'라는 걱정에 승객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깜깜한 터널 쪽을 두리번 거렸다. 불안은 다행히 기우였다.

지난 주말 광명역 터널 안에서 KTX 탈선 사고가 났다.

"갑자기 차량이 덜컹대다가 몸시 흔들리며 콱 멈춰섰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일부 승객은 유리창에 머리를 처박기도 했다", "승무원이 문을 열어줘 차량 밖으로 나왔고 희미한 비상불빛을 따라 터널 속을 걸어나왔다"...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다.

잠깐 멈춰 서 있는 것도 불안하고 기분이 찝찝했는데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큰 사상자가 나오지 않은것은 천우신조였다.

사고 사흘 뒤 코레일은 잠정적인 사고원인을 발표했다. 하지만 선뜻 수긍하기 힘들게 엉성한(?) 내용이었다. 요약하면, 사고 당일인 11일 새벽1시10분부터 4시30분까지 노후 케이블  교체공사 실시후 오전 6시부터 7시22분까지 통과한 4개 열차 중 3개 열차에서 선로전환기 불일치장애(정상 작동시 파란불, 오작동시 빨간불이 켜져야 하는데 이게 뒤바뀌는 경우)가 발생했다.

오전7시32분쯤 코레일 오송 전기사업소 직원이 선로 전환기 불일치 원인을 찾기 위해 조사에 나섰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자 선로전환기내 포인트박스를 열고 상행 직진만 가능하게 연결시켰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케이블을 잘못 연결시켜 선로전환기 진입부는 작동을 안 한 채 우측선으로 남아 있고 중간부(선로가 겹치는 크로싱 부분)는 상행 직진으로 전환된 것이다.

한마디로 엇박자가 난 것. 따라서  진입하던 KTX열차 앞쪽 4량은 달려오는 힘으로 탄력을 받아 선로를 타고 하행<오른쪽>으로 진입했지만 나머지 6량의 열차는 크로싱 부분에서 힘이 떨어지면서 바퀴가 상행선 쪽으로 움직이며 탈선했다.

코레일은 당초 선로전환기 불일치 장애를 일으킨 것은 케이블 교체를 하던 중 밀착쇄정기 콘트롤러 5번 단자의 너트 1개가 빠져 있어서 불일치 신호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케이블 교체공사 중 외주업체가 너트 1개를 조이지 않은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사고 원인을 정비 불량과 초동대처소홀, 관제센터 근무 태만 등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해야 할 코레일이 어떻게 그렇게 허술하게 정비작업을 했으며 사후 확인과 점검까지 안일했었는지 납득이 안 된다.

경부선과 호남선 등에 설치된 선로전환기는 1000여 개가 넘는다. 수없이 자주 케이블 교체공사를  했을테고 선로전환기 불일치 장애가 왜 생기는지, 어떻게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을 해야하는지 등은 직원들이 다 공유하고 있지 않았을까? 더욱이 그날 현장 감독자는 경력 9년차 라고한다.

또 항공기 관제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KTX관제센터도 열차운행에 위험 요인이 있음에도 자세한 점검 내용과 조치를 확인하지 않고 하행선으로 선로 전환을 시도한 것은 어이가 없다. 코레일 발표대로 7mm 너트 한 개가 풀려서 선로전환기 불일치 장애가 났고 현장 직원이 문제를 못찾아 엉뚱하게 케이블을 잘못 연결해 탈선사고를 불렀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차량과 선로 등 시스템에 대한 문제보다 모든 걸 '인재(人災)', 사람 탓으로 돌리는 이번 발표가 혹 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 미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번 기회에 7mm 너트 뿐 아니라, 확 풀어져 헐렁거리는 코레일 나사도 흔들림 없이 꽉 조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천우신조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