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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농민 "손자는 보고 싶지만..."

축산농민 "손자는 보고 싶지만..."
"손자 녀석이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돼요. 할아비가 학교 들어가는 기념으로 책가방을  선물해 주려고 했는데, 구제역 때문에 얼굴 볼 수가 없게 생겼으니 이거 워째야 돼? 택배로 부쳐주자니 서운하고, 걱정이여"

한 달 넘게 구제역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충남 홍성군 금마면 한 마을 입구. 마을주민들과 방역초소 근무를 서고 있는 올해 65세인 김모 씨는 분무소독기를 등에 지고 혹시 모를 구제역 바이러스 전파를 막느라 방역 작업이 한창입니다.

살을 에는 강추위 속에 오전 8시부터 밤 8시까지 2인1조로 계속되는 초소근무로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힘들지만 턱앞으로 다가온 설명절을 생각하면 가슴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더욱 시리기만 합니다.

평생 키워온 한우를 지켜내자고 한 달 전쯤 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설명절 귀성객방문을 사절했기 때문인데요, 김씨뿐 아니라 35가구 주민 모두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해 설날 내려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요. 자식, 며느리야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지만 유독 재롱을 피우며 잘 따르는 손자 녀석을 못보게 생긴게 영 아쉽고 가슴이 휑하기만 하다고 하십니다.

이 마을 35가구 중 18가구에서 한우 200여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대규모로 축산업을하는 주민은 별로 없고 집집마다 10~20마리씩 소를 키우고 있지만 한우는 예나 지금이나 재산 밑천이기에 주민들에겐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식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설명절을 따뜻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대신 소를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이죠. 다만 민족 전통 명절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집집마다 노부부끼리 떡국 끓이고 전 몇 개 부쳐 간소하게 차례상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조상님들도 이 위중한 구제역 사태를 하늘에서 잘~알고 계시기에 너그러이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고 있다고 하네요.

한낮 기온이 영하 10도 가량에 머무는 동장군의 기세도 주민들의 방역작업 열기를 꺾을을 수는 없었습니다. 옷을 몇겹씩 껴입고 폐 드럼통을 잘라 만든 임시난로 속에 통나무를 태워가며 잠깐씩 언 몸을 녹입니다.

주민들은 마을축사에서 100여 미터 앞에 방역초소와 철제문을 세우고 모든 외부 차량과 사람의 진입을 막고 있습니다. 택배차량 및 우편집배원 오토바이도 예외가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온 소포나 편지, 공과금 고지서, 신문 등은 방역초소에 내려놓고 손소독기로 철저히 소독을 한 뒤 마을주민들이 직접 나와서 집으로 가져가게 할만큼 꼼꼼하게 방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덕분인지 다행히 이 마을을 비롯해 국내 최대 축산단지인 홍성군은 아직까지 구제역 방어를 잘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말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 발병 이후 최근까지 충남에서는 모두133건의 구제역 의심신고가 들어와 이 가운데 82건이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한 달 동안 하루평균 4.4건의 구제역 의심 신고가 들어와 2.7건이 양성 판정을 받은 셈이죠. 살생부에 오른 우제류는 소 2천262마리, 돼지31만376마리 등 31만3천여 마리에 이릅니다.

설을 앞두고 살처분 피해농가 177가구중 114가구에 308억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보상금 금액이 피해액에 50%에 불과하고 보상금 산정기준도 농민들에겐 불만스런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소만 보더라도 발육 과정이 다 다르고 몸무게가 비슷하다해도 육질은 천차만별이기에 금액 차이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보상금 산정기준을 보면 이런 육질의 차이는 반영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7개월 미만 300만 원, 7개월 이상 500만 원 하는 식으로 정하고 있으니 농민들에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책상머리 행정이란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 서둘러 지급하고 있는 구제역 보상금이 농민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도 않고, 귀한 소를 잃어 쓰린 속만 더 아프게 할 뿐입니다.

정부에서도 선포했듯이 구제역은 국가적 재난상태입니다. 이번 기회에 구제역 예방과 방역 시스템, 살처분 매몰의 효용성 뿐 아니라 소가 전 재산이고 삶의 전부인 축산 농민들이 안전하고 걱정없이 축산에 매진할 수 있도록 세밀하고 꼼꼼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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