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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으로 하나 된 '금빛 우정'…'환상의 짝꿍' 황혜영-정소영

[올림픽의 영웅들 ⑨ 배드민턴]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금메달

"소영아 나 지금 잘 안 들려. 감각이 없어."

"네가 감각 찾을 때 까지 내가 더 뛸게."

'죽을 각오'로 올라온 결승전이었다. '금메달 1순위'라는 지나친 기대는 부담이 됐고, 부담은 긴장감으로 치달아 밤새 눈에 성냥개비를 꽂아놓은 마냥, 잠자리를 훼방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복식 결승전 1세트가 시작됐다. 황혜영은 당황했다. 긴장으로 밤을 샌 탓인지 셔틀콕이 라켓에 닿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소리도 잘 들리지 않으면서 몽롱함이 엄습했다.

정소영과 황혜영은 한 조가 된 이래 코트 위에서 한 몸과 다름없었다. 오른 손이 아프면 왼 손이 바쁘게 움직이듯, 정소영은 황혜영의 몫을 해내며 1세트를 근소한 차로 리드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다친 상처 때문에, 정소영도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다. 1세트를 겨우 승리를 이끌었지만 2세트가 또 한 차례 고비였다. 황혜영이 감각을 되찾고 있었으나 체력이 떨어지면서 팀워크가 다소 흔들렸다. 결국 2세트는 중국에 내주고 만다.

한 세트 씩 주고받으면서 세트스코어는 1:1 동점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 코치진은 선수들에게 정소영을 집중 공격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정소영은 '가장 강력한 수비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거침없이 중국을 반격했다.

1세트에서 황혜영의 몫까지 해냈던 터라 정소영은 점점 더 지쳤다. 이 때 황혜영은 정소영을 다독이며 다시 한 번 파이팅을 외쳤다. 14:11로 한국이 3점 앞서는 상황에서 중국이 다시 2점을 따라잡았다. 매치포인트까지 1점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황-정 조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갑자기 어이 없이 서브 반칙을 일으키며 서브권이 황-정조로 넘어왔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정소영은 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체력이 바닥났지만, 마지막까지 마음을 풀어놓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시도한 짧은 서비스가 마침내 승패를 갈랐다. 두 친구는 서로를 얼싸 안으며 통곡했다. 눈물에 땀과 서러움, 안도감이 뒤섞였다. "우리가 해냈다"

코트에서 10여 년을 함께한 이들의 우정은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애만큼이나 뜨겁다. 황혜영, 정소영은 동갑내기로 고등학교 시절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80년대 중반 각종 국제대회에 정명희, 황혜영, 정소영을 번갈아 팀으로 구성하며 수없는 실험을 했고, '큰 언니' 정명희의 양보로 1991년 드디어 황-정은 한 조가 됐다.

둘은 이때부터 한 이름으로 코트를 점령해나가기 시작했고, 1991년 코리아오픈 우승에 이어 전영오픈 우승, 월드컵 우승 등 1년 동안 국제 대회 10회 우승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이들은 세계 랭킹 1위. 그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까지 휩쓴다.

두 사람은  당시 훈련 과정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됐음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들이 올림픽 금메달은 물론, 각종 국제 대회에서 만들어낸 기록들은 오로지 훈련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함께 호흡하고, 서로가 왼손과 오른손, 왼발과 오른발이 되어 셔틀콕을 공유했던 짙은 교감이 10여 년간 둘을 하나로 묶어왔다. 때문에 이들에게 "올림픽은 곧 '우정'", 그 자체였다.

황혜영·정소영

1991년 코리아 오픈 우승
1991 전영 오픈 우승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 '올림픽의 영웅들' 전체 영상은 SBS미디어넷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제작=SBS미디어넷, 글·편집=SBSi 박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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