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촛불 그리고 소통

유재규 기자

작성 2008.05.27 17:41 수정 2008.10.07 15:4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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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가 매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거리로 처음 나온 이후엔 촛불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하다 거리로 치고 나오는 게 수순이 된 듯 합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제 10조에서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 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 집회 성격상 부득이하게 야간에 해야 할 땐 질서 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해야 하고, 이때 질서 유지를 조건으로 관할 경찰서장이 집회나 시위를 허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야간 촛불 집회는 허용이 안 되기에 '문화제'란 형식을 취했고 평화롭고 질서있게 진행되는 이상 경찰이 개입할 여지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리 시위로 발전하면서 이 법 조항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집시법 10조 위반은 주최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 벌금, 질서유지인은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구류 또는 과료, 이 사실을 알고 참석한 사람은 5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차도를 무단으로 걸어다닌 것이니 도로교통법도 위반한 셈이 되죠. 20만 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 법률에 따라 거리 시위를 '불법 시위'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배후설을 제기했습니다. 보수 단체도 분명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천 명이나 되는 시위대가 게릴라처럼 도심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시위를 벌이는 데는 누군가의 '조종'이 필수적이라는 추론에 근거한 겁니다. 누군가 시위를 기획하고 그 집행부의 의도에 따라 시위를 벌이는 게 과거의 시위 패러다임이기도 하니까요.

어청수 경찰청장은 과거 한총련이 한창일 때도 자정 정도면 시위를 그만뒀는데 이번엔 더한 것 같다면서 자전거를 탄 선발대가 미리 나가서 리드하고 있다 나타나 경찰력을 분산시키는 등 치밀하게 조직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주최 측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라고 일축합니다. 연행된 집회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직장인이고, 고등학생도 끼어 있고, 심지어 부부도 있다는 거죠. 예전처럼 조직화된 시위대가 아니란 겁니다.

경찰들도 실무적으론 조직화되지 않은 시위대라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게 주최 측의 주장입니다. 주최가 확실하고 통제력을 갖고 있다면 주최 측만 상대하면 되지만, 자발적 참석자들이다보니 일정한 체계가 없어 주최 측도 행동의 예측이 불가능하고 경찰과의 협의도 어렵다는 거죠. 수천 명의 사람이 모이는 데 누군가의 개입이 전혀 없을 순 없겠죠. 2002년도 그랬고, 2004년도 그랬듯 올해도 배후의 실체는 '인터넷'인 것 같습니다.

참석자들 일부는 노트북과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도구를 들고 집회에 나옵니다. 그리고 틈틈히 상황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죠. 시위 상황 역시 참석자들이 가져온 캠코더로 찍어 실시간 중계됩니다. 또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합류하기도 하고요. 인터넷 동호회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뜻을 함께 해 같이 나오기도 합니다.

인터넷이 촛불을 밝히고 있는 셈이지요.

'눈팅족'(게시판의 글들을 읽기만 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나와보고 또 친구들을 불러내고 이런 식으로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촛불을 든 '눈팅족'들이 거리로까지 나선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경찰과 보수단체는 자발적으로 촛불을 든 사람들을 거리로 뛰도록 일부 세력이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게릴라처럼 일부가 뛰어나가면 사람들이 호응하고 이 때 주도 세력은 뒤로 빠진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주최 측과 진보단체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불신이 쌓여왔고, 이들 불신이 쇠고기를 매개로 모였다가 대통령의 담화에서 '별 다른 내용이 없다'며 폭발했고, '수입 고시'라는 일정이 절박감을 주면서 결국 거리 시위로 이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국회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안이 부결된 것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주장합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국회에서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고 '의회 시스템'이라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가 과연 적절하게 작용하고 있느냐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그것이 결국 '직접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과연 저 시위대 가운데 대선에서 투표장에 갔던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지,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기보단 감성적으로 동영상 몇 개 보고 시위대가 휩쓸려가는 건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시위 참석자들은 '불법'이라는 으름장에 꼬리를 내릴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대통령이 송구스럽다란 말까지 했지만, 그 이후로도 정책적으로 달라지는 건 전혀 없지 않냐'며 촛불로만은 뭔가 변화를 이끌어내기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거리 시위를 택했다고들 합니다.

거리 시위가 과연 정당하냐란 논쟁도 있습니다.

이번 시위에서 '공론의 장'역할을 하는 '다음 아고라'에 가면 거리 시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글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게 더욱 호소력을 지닐 것이란 주장들도 있습니다. 참석자 중에도 거리 시위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분명 있고요. 그렇다보니 촛불 문화제 참석자가 두 부류로 나뉘는 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리 시위건 촛불 문화제건 이제 '쇠고기 수입 반대'보단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반대 구호가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이번 촛불집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중의 하나는 10대들로부터 시작해 2-30대, 가정주부로 확산되는 자발적인 참여에 있다. 정부가 추가협상이나 담화문을 통해서 제시한 대책에 대해 여전히 국민 다수가 납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당분간 당분간 이런 집회는 지속될 것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국민 사이에 소통의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불신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정부가 시스템 개혁이나 납득할 만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정부는 '쇠고기 수입 고시'일을 또 며칠 뒤로 연기했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수습책이 나오고, 촛불 문화제와 거리 시위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편집자주] 유재규 기자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취재로 우리 일상의 사건.사고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