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노라노'라는 패션디자이너를 아시는지요?
제가 노라노에 대해 주변에 묻자 20대들은 "어, 노라조! 엽기컨셉의 가수 아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겐 신세대 가수 이름과 혼동 될 만큼 생소한 이름일 수 있겠지만,
노라노는 1956년 지금은 없어진 반도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개최하며 한국패션사 기틀을 다진 1세대 대표 디자이너입니다.
우리가 한국 패션을 말할 때 첫머리에 말하는 앙드레 김보다도 7살이나 연세가 많은 것은 물론, 물론 디자이너로서 데뷔도 빨랐죠.
다만, 앙드레김만큼 세간의 유명세를 덜 탄 이유는, 드러나기 싫어하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본인의 성격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앙드레김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언론에 홍보하며 존재감을 드높이는 스타일이라면,
노라노는 철저하게 오직 옷을 만들고 파는 일에 만 집중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는 성격이랄까요.
물론 두 스타일 가운데 무엇이 낫다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앙드레김의 어떤 홍보전문가보다 적극적인 홍보마인드가 오늘날 '앙드레김패션'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까요.
언뜻 앙드레김과 정반대의 전략으로 보일만큼 언론과는 그동안 담을 쌓고 지내온 것에 대해 노라노는 "원래 성격이 하나밖에 모른다"며 "그나마 옷에만 집중할수 있었기에 지금껏 현역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자평하더군요.
올해 우리 나이로 꼭 여든이 된 노라노 여사.
그동안 우리 언론이 너무 무관심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한국 패션의 역사의 한 부분을 쓰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패션쇼에 이어, 1960년대는 윤복희의 미니스커트와 펄시스터즈의 나팔바지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이 두 아이템은 패션 역시 봉건적인 굴레에 잡혀있던 젊은 여성들에게 일대 신선한 혁명이었습니다.
70년대에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4년 연속 출전하는 것은 물론, 미국 뉴욕 중심가에 매장을 차려 미국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합니다.
이후 90년대 초까지 미국은 물론 중국과 유럽까지, 실크를 기반으로한 실용적인 옷으로 적극적인 수출전선에 나서며 한국 패션의 위상을 높였죠.
올해로 패션디자이너 생활 꼭 60주년.
더 늦기 전 그녀가 한국 패션에 남긴 족적을 정리하는 리포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분명 나이를 알고 찾아 만났건만 실물을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많이 봐도 60대 후반으로 밖에 안 보이는 외모, 거기에 너무나도 발랄한 말투 그리고 말투보다 더 젊고 유연한 생각들...
본인은 "아직도 철이 안들어 그렇다"고 겸양의 말씀을 하셨지만, 전 노라노여사에게서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이에게 느껴지는 기분좋은 존재감을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진정한 원로가 없다고 말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원로들이 너무 고답적이고 딱딱한,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참으로 마땅치 않다'는 말들만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지만, 결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젊은이들의 사고에 귀를 기울이는 노라노 여사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진정 존경받는 원로의 존재감이란, 경험에서 우러나온 설교도 좋지만 결국은 그가 살아온 삶과 현재의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에도 느껴진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내년에 패션인생 60주년을 기념하는 쇼를 준비중인 노라노여사.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그녀가 60년 동안 해온 그 어떤 쇼보다 멋진 쇼를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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