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고 손기정옹, 한국 마라톤의 선구자

<8뉴스>

<앵커>

타계한 손기정옹은 암울했던 시절 마라톤으로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긍지와 용기를 안겨준 체육인이었습니다.

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옹의 일생을 정희돈 기자가 되짚어 봤습니다.

<기자>

베를린 올림픽이 절정으로 치닫던 1936년 8월 9일.

아시아의 조그만 식민지 나라에서 온 23살의 조선청년 손기정은 나라 잃은 울분을 달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2시간 29분19초의 세계신기록이자 동양인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

그러나 손기정은 웃을 수 없었습니다.

기테이 손이라는 일본 이름에 남의 나라 국기를 달고 뛴 쓰라린 운명에 시상식 내내 고개를 숙인채, 월계수잎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습니다.

{고 손기정/94년 인터뷰, 당시 83세}
"나라없는 설움을 절실히 느꼈다. 뛰긴 내가 뛰었는데 다른 나라 국기(일장기)가 올라갔다."

손기정의 낭보는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퍼져 일제치하에서 꺼져가던 민족혼을 다시 일깨웠고, 동아일보는 일장기를 지워 그가 조선의 아들임을 세계만방에 알렸습니다.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난 손옹은 어린시절부터 타고난 달리기실력으로 주목 받았고, 양정고보 재학중에는 8백미터부터 마라톤까지 모든 종목에서 우승해 화제가 됐습니다.

해방후에는 지도자로 서윤복과 함기룡를 조련시켜 두차례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을 일궈냈고, 육상연맹회장까지 맡아 체육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힘든 시절, 그가 지핀 한국마라톤의 불꽃은 지난 92년 바르셀로나에서 황영조의 우승으로 56년만에 다시 환하게 타올랐고, 이제 이봉주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옹은 지난해 와병중에도 후배들을 불러 한국 마라톤의 미래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고 손기정/지난해 인터뷰}
"(지도자로서) 그 힘을 또 발휘해서 당신같은 후계자가 나오도록 열심히 해야지."

마라톤 영웅의 길고도 힘든 레이스는 이제 끝났지만, 고난의 시절 그가 일깨운 민족혼과 지칠줄 모르는 마라톤맨 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