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구멍 뚫린 김용균법① - 생일에 죽어야 했던 30대 가장

'노동 없는 정치' 이제는 바꿀 때다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작성 2019.11.05 13:21 수정 2019.11.05 13: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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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구멍 뚫린 김용균법① - 생일에 죽어야 했던 30대 가장
"우리가 영국 북부에서 차를 몰고 가며 도로 밑 수백 미터 지하에서 광부들이 석탄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는 너무 쉽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당신의 차를 모는 것은 그 광부들인 것이다. 꽃에 뿌리가 필요하듯, 위의 볕 좋은 세상이 있으려면 그 아래 램프 빛 희미한 세상이 필요한 것이다." - 조지 오웰, 1936,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전기를 만드는 서부 화력발전의 석탄창 컨베이어 벨트 아래서 24살 김용균 씨가 죽은 지 10개월. 이번엔 시멘트를 만드는 공장에서 32살 박경훈 씨가 죽었습니다. 시멘트 생산 설비를 냉각시키기 위해 초속 100미터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환풍구 안에서, 박경훈 씨는 대형 팬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고, 둘째 아들 100일 잔치 이틀 뒤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꼭 필요한 일을 했던 사람들. 그러나 이 외에도 이들에겐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화력발전소 석탄 컨베이어 벨트 아래서, 굉음이 울리는 시멘트 공장 안에서 이들이 매일같이 바쳤던 삶은 모두 너무나도 헐값에 취급됐다는 겁니다. 김용균을 죽게 한 컨베이어 벨트의 허술한 비상 정지 코드도, 박경훈을 죽게 한 환풍 시설의 철망도 설치하는 데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 설비들입니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위험한 현장에, 노동자 한 명만 더 딸려 보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고였습니다. 그러나 연 매출 4조, 연간 영업이익 800억을 내는 회사들에게 이 설비와 인건비에 들어가는 돈은 굳이 안 써도 되는, 아까운 비용이었습니다.
태안 화력 발전소 사고● 법도 바꿨다는데…도대체 왜 변하지 않는가?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 (이하 산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국회의원들의 손을 부여잡고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10개월 뒤, 자식을 잃은 또 다른 부모는 너무 울어 쉰 목소리로, 카메라 앞에서 '제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달라'고 또 호소해야 했습니다.

세상은 故 김용균 씨의 이름을 따 산안법 개정안을 '김용균법'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정부가 입법 예고한 하위 법령에 김용균은 없었습니다. 수은, 납 카드뮴 관련 작업에만 하청이 금지됐고,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하청 업종도 4개 화학물질 업종으로 제한됐습니다. 위험한 일에 하청 노동자를 몰아넣다가 김용균이 죽고 구의역 김 군이 죽었지만, 이들이 했던 일에 대해선 여전히 하청 제한이 없습니다.

2년 전 노동절엔 거제의 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하청 노동자 6명이 죽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진해의 조선소에서 폭발사고가 나 또 3명이 죽었습니다. 다단계 하청 구조의 말단에 있는 이들이 당한 사고지만, 역시 정부의 안으로는 이런 조선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회사는 수백만 원 정도의 벌금만 물면 되고, 안전 책임자가 감옥 갈 일은 거의 없습니다. SBS 이슈취재팀이 김용균 씨 사망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들에게 내려진 판결들을 분석해봤습니다. 안전관리 소홀 책임이 인정된 피고인 295명 가운데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벌금이나 집행유예 처분만 내려졌고, 기업 또한 대부분 500만 원 이하의 벌금만 물면 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 [취재파일] 구멍 뚫린 김용균법② - 사람이 죽었고 벌금은 500만 원입니다)

자본주의 본고장이라는 영국에선 2007년부터 '기업 살인법'이 도입됐습니다. 같은 영미권인 호주와 캐나다에도 비슷한 법이 도입됐습니다. 영국의 경우,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회사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벌금의 상한을 없앴습니다. 탄광에서 해자가 무너져 노동자가 사망한 영국 회사엔 연 매출의 250%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57억 원의 벌금이, 높은 곳에서 떨어진 철제 쓰레기통에 맞아 노동자가 사망한 영국의 돼지 농장엔 연매출의 18%에 해당하는 약 2억 8천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들이 시행하는 '기업 살인법'은 처벌보다도, 기업이 조심하게 해서 안전한 작업환경을 갖추도록 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노동환경을 갖추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성 향상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반복적으로 죽어나가는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에선 오늘도 회사 관계자들이 경찰 조사받느라 일 못하고, 현장 조사 때문에 설비 가동 못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런 위험한 노동 환경은 장기적인 비용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꼭 개선해야 할 과제인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 재계는 30년 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때 반대 논리로 들이댔던 '경영상의 이유'를 오늘날에도 그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 노동 없는 정치, 오늘도 내일도 죽는 사람들

"외형적으로만 보면 여야 정당은 상호 공존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적대적 담론과 감정으로 충돌해 왔다. 그러나 별로 변한 것은 없다. 경제정책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 사회경제적 이슈가 비결정의 영역에 머물거나 혹은 비갈등적 이슈로 다뤄질 때 실제 정치 경쟁은 한정된 갈등 범위 안에서 추상적 가치와 명분에 의존하는 다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최장집, 2010,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지난해 말 김용균 법이 통과되고 4개월 뒤, 정부는 누더기가 된 김용균 법의 하위법령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재계의 입장을 반영해 온 제1야당은 별말이 없었고, 여당에서도 정부안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정치'라는 이름으로 형성된 균형점에는 이미 죽은 이들과 이대로라면 앞으로 또 죽을 수밖에 없는 누군가는 없었습니다.

시민사회는 이참에 영국의 '기업살인법' 같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고 했습니다. 기자회견도 열어보고, 유족들이 대통령에게 릴레이 편지도 써봤습니다. 중대재해기업 처벌을 요구해온 특성화고 실습생 故 이민호 군 아버지 이상영 씨는 "피를 토하고 가슴이 갈라지는 심정으로 다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절규는 국회까지 가 닿지는 못했습니다. 법을 만드는 이들은 그보다는 다른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습니다. 자녀의 대학 입시 비리 의혹이 일고 있는 장관의 거취를 두고, 청춘 바쳐 군대 간 젊은이들에게 감 따라 하고 골프공 줍게 했다는 군 장성을 영입하느냐를 두고, 정당들은 뜨겁게 싸웠습니다. 일 년에 1천 명 가까이 일하다 죽어나가는 목숨들을 이야기할 땐 찾아보기 어려운 치열함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며, 새로 태어난 아들 좋은 옷이라도 사주겠다며 일하러 나간 이들은 허망한 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3명꼴로, 누군가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누군가는 거대한 기계에 끼어 일하다 죽습니다. 매년 통계를 뽑지만 이 숫자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오늘도 내일도 어김없이 누군가는 일하러 내보낸 자식이나 배우자를 잃어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바뀌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는 공동체.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 정치는, 그리고 국가는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 시행을 두 달 앞둔 지금, 이제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참고문헌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2010)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폴리테이아, 2010)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에 대한 고찰과 시사점, 김재윤 (형사정책연구 제25권 제4호 통권 제100호, 2014)
기업살인법과 규제 개혁, 김종구 (법학연구 55권0호,2014)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