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구멍 뚫린 김용균법② - 사람이 죽었고 벌금은 500만 원입니다

정혜경 기자 choice@sbs.co.kr

작성 2019.11.05 13:22 수정 2019.11.05 13: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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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인테리어 시공업체에 소속된 63살 근로자 A씨는 재작년 여름, 건물 외벽 누수 여부를 점검하는 일을 맡아 고층 작업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회사 대표 B씨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미흡했습니다.

사업장 인근 고압선에 장비의 어느 부분이라도 접촉하지 않게 최소 이격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게 했어야 했지만 따르지 않았습니다. 안전모 안전대 등의 보호구 착용 지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A씨는 작업대 측면의 난간을 딛고 올라서다가 머리 위에 위치한 고압충전장치에 머리가 닿으면서 쓰러져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대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6월 업체 대표 A씨를 징역 1년에 처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사례는 SBS 이슈취재팀이 故김용균 씨가 숨진 지난해 12월 11일부터 분석을 시작한 지난 1일까지, 11개월간 전국 법원에서 내려진 모든 심급의 판결 중 유일하게 집행유예 없는 징역 판결이 내려진 사례입니다.
[취재파일] [산재②] 사람이 죽었고 벌금은 500만 원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대가

팀 동료인 원종진 기자는 노동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난달 22일 숨진 박경훈 씨의 사연을 취재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원 기자가 입수한 근무 일지엔 김용균 씨의 경우처럼 2인 1조 규정이 명시돼 있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박 씨의 죽음은 이미 2주 전에 다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이었지만 다시 한번 이 현실에 대해 환기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은 당시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처했던 것인지, 또 그 죽음에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진 건지, 그리고 이 '구조적 살인'을 해결하기 위해선 앞으로 어떤 것들이 필요할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판결문을 찾아봐야 했습니다.

SBS 이슈취재팀은 2018년 12월 11일 故김용균 씨의 사고 당일부터 분석을 시작한 지난 1일(금)까지로 기간을 정해 그사이 전국 법원에서 내려진 모든 심급의 판결문을 분석해보기로 했습니다. 분석의 편의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가 동시에 혐의로 적용된 것으로 대상을 특정했습니다. 그 결과 207건의 판결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판결 중 시기 상으로 겹치는 경우는 최종 심급의 선고를 기준으로 분석했습니다. 가령 이 시기 원심을 유지한다는 대법원 선고가 이뤄지면, 2심 판결의 내용을 확정한다는 내용의 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갈음하고 2심 판결의 선고 내용을 분석 대상으로 추출했습니다. 207건의 판결마다 죽음까지 이른 피해자가 한 명씩만 있는 건 아닙니다. 죽음에까지 이르진 않았더라도 수 명의 노동자가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외상을 입은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취재파일] [산재②] 사람이 죽었고 벌금은 500만 원입니다● 집행유예 없는 징역 판결 단 한 건…70% 이상이 500만 원

분석 결과 추출된 피고인은 모두 452명. 이 가운데 숨진 근로자가 소속된 회사 또는 그 회사에 실질적으로 일을 주어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하청 회사 등 '법인 피고인'은 157곳, 이 사업장의 대표 또는 현장 안전관리 책임자 등 개인 피고인은 295명이 판결문에 등장했습니다.

실형만, 또는 실형과 벌금이 함께 선고된 피고인들 중 집행유예 없이 징역 실형만 선고된 사례는 앞서 서두에 언급한 사건 단 하나였습니다. 그렇다고 이 한 사건이 다른 것들에 비해 특별히 악랄한 죄질로 인정될 만한 점이 많았던 건 아닙니다. 사업주는 작업 전 안전 장비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현장 책임자는 안전 용구 착용이나 작업 환경에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선고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벌금형'의 범위도 구해봤습니다.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선고된 경우가 70.5%(216건)에 이르렀습니다. 700만 원 이하는 14%(43건), 1천만 원 이하는 12.4%(38건), 1천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2.9%(9건)으로 각각 나타났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누군가의 실수 또는 주의 소홀로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매겨지는 벌금은 대체로 700만 원 이하 범위로(84.5%) 수렴됐습니다. 가장 많은 벌금은 2천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 "산재 사망 발생하면 회사 망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 줘야"

이 분석 결과를 놓고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대가 또는 책임치고 지나치게 가벼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따랐습니다. 이상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집행위원장(전문의)은 취재진에 "같은 죽음이 반복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며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책임자 개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안전 환경 구축'에 실패한 기업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먼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이번에 개정된 이른바 '김용균법'에서 도급을 금지한 '위험 업무' 업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산재 사망 사건에 대한 처벌 수위를 근본적으로 끌어올려, 경감심을 가지게 할 필요가 있다고도 조언했습니다.
[취재파일] [산재②] 사람이 죽었고 벌금은 500만 원입니다실제 영국, 호주 등에선 '산업살인법' 또는 '기업살인법'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처벌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호주는 고용주 혹은 고용주와 관련해 용역을 제공하거나 고용된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하청 노동자에게도 중대한 손해를 야기하게 되면 개인에겐 최고 25만 달러(약 2억 8천만 원), 기업엔 125만 달러(약 14억 4천만 원)까지 벌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징역형도 최고 25년으로 매우 높습니다. 2003년 이 법이 제정된 뒤 인구 1만 명당 사망자 수를 비율로 나타낸 '사망 만인율'은 2.3에서 2009년 1.9로 감소했습니다.

영국에선 2007년 도입된 '기업살인법'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노동자의 사망을 유발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관리 의무에 중대한 위반이 발견된 경우, 경영진의 과실 또는 위반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이 노동자의 사망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확인될 때 적용됩니다. 벌금의 상한선은 없지만, 영국 의회의 지침으로는 기업의 1년 총 매출액의 5~10% 범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사망 만인율은 도입 당시 2007년 0.7에서 2009년 0.4로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제2, 제3의 김용균' 막을 김용균법 필요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김용균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엔 과거 법의 테두리 밖에 있던 특수고용노동자, 배달종사자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는 점, 그리고 원청 기업의 책임을 과거보다 확대했다는 점에서 물론 의미가 있습니다. 위반 시 처벌의 상한선도 일부 상향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취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상한선이 상향 조정된 것만으로는 기업 처벌을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구조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따릅니다. 상한선을 높이는 것보다 오히려 하한선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던 김용균 씨의 죽음. 그 이름까지 따 만든 산업안전보건법이 제2, 제3의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기 위해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취재파일] 구멍 뚫린 김용균법① - 생일에 죽어야 했던 30대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