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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차세대 2½톤 軍트럭 사업 돌입…기아차 '룰' 무시

[취재파일] 차세대 2½톤 軍트럭 사업 돌입…기아차 '룰' 무시
▲ 아덱스에 전시된 기아차의 차세대 2½톤 표준차량

예비역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트럭이고 현역들에게는 손발과 같은 차량이 2½톤 군용 트럭입니다. 공식 명칭은 K511인데 부대에 따라서 '육공트럭', '두돈반', '2와 2분의 1톤' 등으로 제각각 불립니다. 작전, 훈련, 교육 때 병력이건 부식이건 장비건 뭐든 싣고 어디든 내달리는, 올드(old)하고 투박해 보여도 없으면 군대 안 돌아가는 최고 살림꾼입니다.

기아자동차가 40년 독점했던 전통의 2½톤 중형표준차량이 싹 바뀝니다. 5톤 트럭도 방탄 차량으로 새로 개발합니다. 중형 표준차량 및 5톤 방탄킷 차량 통합 개발 사업입니다. 육군본부가 주관하며 1조 7천억 원을 들여 완전히 새로워진 2½톤 트럭과 5톤 방탄 트럭 1만 여대를 도입합니다. 2024년까지 개발을 마치고 곧바로 양산을 개시한다는 목표입니다.

기아자동차와 한화디펜스가 뛰어들어 경쟁입찰이 성립됐습니다. 1차 관문은 사업 제안서 평가로 내일(4일)부터 사흘간 진행됩니다. 육군본부는 기아자동차와 한화디펜스가 제출한 제안서를 블라인드(blind) 방식으로 평가해서 오는 8일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잡음이 새 나오고 있습니다. 블라인드 방식 평가여서 평가위원들이 회사명이 가려진 제안서를 보고 객관적으로 점수를 매겨야 하는데 기아자동차가 제안서 접수 마감 다음 날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의 차세대 2½톤 표준차량과 방탄 차량의 제원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겁니다. 기아자동차 차량의 제원을 소개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으니 평가위원들은 아무리 회사명을 가린 제안서라도 어느 회사 것인지 눈치챌 개연성이 큽니다.

기아자동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형 방산 전시회에 차량의 실물들을 전시해버렸습니다. 또 한 번 적극적인 노출입니다. 블라인드 평가의 공정성을 뒤흔드는 강자의 비신사적 처사라는 비판이 육군과 방산업계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 차세대 군용 표준차량 보도자료 중 일부
● 제안서 접수 마감되자 보도자료 전격 배포

차세대 2½톤 표준차량과 5톤 방탄 차량 사업 제안서 접수 마감은 지난 9월 26일이었습니다. 기아자동차는 접수 마감 이튿날인 9월 27일 기자들에게 '기아자동차, 군 차세대 중형표준차량 개발 사업 참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기아자동차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준대형 신형 트럭 '파비스'를 기반으로 중형표준차량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7리터급 디젤 엔진 및 자동변속기 ▲ABS 및 ASR ▲후방주차보조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구체적인 제원을 공개했습니다.

기아자동차 2½톤의 차별적 특징으로는 ▲기동성 향상을 위한 컴팩트 설계 ▲4×4, 6×6 구동 적용 ▲전술도로 운영에 최적화된 회전반경 구현 ▲영하 32℃ 시동성 확보 ▲하천 도섭(渡涉) 능력 강화 ▲야지 전용 차축 및 최신 전자파 차폐기술 적용 ▲프레임 강도 보강 등을 열거했습니다.

신규 개발되는 기아자동차의 5톤 방탄차량도 ▲강인한 디자인의 방탄 캐빈 및 적재함 ▲손쉬운 무기장착이 가능한 구조를 적용해 실전에서 높은 생존성 확보에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위와 같은 보도자료를 토대로 기사가 무더기로 작성돼 퍼져나갔습니다. 제안서 평가위원들이 봤다면 기아자동차의 차세대 2½톤 표준차량과 방탄차량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보도자료에 제안서 내용이 들어갔거나 제안서 내용이 녹아있다면 규정 위반입니다. 블라인드 평가인데 이래도 되는 건지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 아덱스에도 등장한 기아차 2½톤 표준차량

2년마다 열리는 동아시아 최대 무기 전시회인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즉 아덱스(ADEX) 2019가 지난달 15일부터 20일까지 서울공항에서 열렸습니다. 기아자동차도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기아자동차의 메인 부스 전면에 차세대 2½톤 표준차량과 5톤 방탄차량이 전시됐습니다.

보도자료를 통한 제원 공개에 이은 아덱스 실물 공개입니다. 아덱스를 찾아 기아자동차 부스를 둘러본 육군의 획득 부문 핵심 관계자는 "기아자동차가 40년 동안 2½톤 트럭을 독점하다 보니 게임의 룰을 모르는 것 같다"며 "솔직히 얄밉다"고 말했습니다.

기아자동차 측은 제안서 접수 다음 날 제원이 포함된 보도자료 배포와 아덱스 실물 전시에 대한 해명은 안 하고 오히려 한화디펜스 탓을 하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한화디펜스도 7차례나 광고인지 홍보인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화디펜스가 2½톤 표준차량 사업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까지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화디펜스 측은 "보도자료나 광고를 낸 적은 없고 기자들이 문의하면 사업 참여 사실을 확인해 준 바는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사업 제안서 마감 훨씬 전에 한화디펜스와 기아자동차가 차세대 2½톤 표준차량 사업에 뛰어든다는 기사가 나오긴 했는데 그마저 두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사업 제안서 마감 후에는 한화디펜스발(發) 기사는 아예 없습니다.

한화디펜스는 타타대우의 상용트럭을 기반으로 2½톤 표준차량을 개발합니다. 다연장로켓인 천무의 발사차량, 현무 탄도미사일 발사차량, 타이곤 장갑차 등 대형 군용 차량 개발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으니 독창적인 2½톤이 나올 것 같다는 추측은 무성한데 제원은 소문 한자락 들리지 않습니다.
2½톤 군용 트럭은 2024년부터 신형으로 교체된다.
소극적인 육군…기아자동차 눈치 보나

기아자동차는 2½톤 군용 트럭의 기득권자입니다. 40년을 독점했습니다. 힘 빼고 공정하게 뛰어도 기아자동차에게 유리한 게임입니다. 블라인드 평가인데 굳이 떠들썩하게 홍보하고 전시해서 차량 제원을 노출할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기아자동차는 그렇게 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홍보와 전시가 블라인드 평가의 규정을 어겼는지 여부는 제안서 평가위원회가 판단합니다. 육군 관계자는 "제안서 평가위원회가 평가를 하는 동시에 기아차의 행위에 대해 논의해서 처분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육군은 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평가위원회가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하면 벌점 등의 불이익 부여를 권고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육군이 자체적으로 기아자동차의 비신사적 행위를 경고하고 교통정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육군본부의 사업이니 스스로 판단해서 처분하면 될 일을 제안서 평가위원회에게 떠넘겼습니다. 그래서 기아자동차의 2½톤 40년 기득권이 육군도 꼼짝 못 할 정도의 철옹성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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