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억 주고 산 구급차, 장식품이 된 이유는?

환자 두고 꿈쩍않는 병원 구급차…돈과 바꾼 골든타임

이세영 기자 230@sbs.co.kr

작성 2019.10.29 14:46 수정 2019.10.31 09: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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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구급차 있는데…40분 동안 사설 구급차 기다려
이세영 취재파일용
허길주 씨 아버지는 지난달 급성심근경색으로 대전 공공 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기본 처치를 한 뒤, 이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우니 당장 충남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설 구급차가 도착한 건 40분 뒤였습니다. 그런데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허 씨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습니다. 병원 주차장 한편에 서 있는 구급차였습니다. 병원 자체 구급차가 있는데도, 사설 구급차를 부른 겁니다. 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무사히 받았지만, 호흡 곤란과 같은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허 씨는 '그때 조금만 병원에 일찍 갔더라면…' 하고 생각합니다.

"빨리 갈 수 있는 상황인데 늦어진 거잖아요. 아버님이 지금 후유증을 앓고 계십니다. 시술을 마친 다음에도 계속 호흡 곤란이 있고, 부작용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빨리 갔다면 그런 게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허길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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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나갈 수 있는 응급환자들
대전 지역 응급의료기관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담당 의사는 허길주 씨 아버지가 병원에 도착한 이후 최소 30분 안에 병원을 나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희처럼 시설이 안 갖춰진 경우에는 병원에 들어와서 병원을 나가는 데까지 최소한 30분이에요. 30분 안에 나가야 되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이 환자 같은 경우에도 빨리 갈수록 좋은 거였어요. 그 사이에 심근이 계속 손상되고 있으니까요."(담당 의사)

이런 일, 적지 않다고 합니다. 최근에도 상간동맥 파열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50분을 기다려 서울 강남 병원으로 옮겨졌고, 답답한 마음에 의사가 택시를 타고 환자와 이동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심근경색 환자였고, 환자 약물 투여하고 수액 단 상태로 제가 택시 타고 갔다 왔어요. 그게 더 빠르니까요. 그리고 그 뒤에도 한 번 더 택시 타고 간 적도 있어요, 저희 인턴 선생님하고. 보통 30분에서 1시간 사이를 우리 병원에서 그냥 허비해버리니까요. 그게 제일 문제죠."(담당 의사)

병원 구급차가 없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은 "있는데 안 쓴다"였습니다. 정말로 그런지, 취재진이 병원에 대기하며 꼬박 하루를 지켜봤습니다. 오후 5시 40분쯤, 급성심부전증 응급환자가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도 대학병원으로 전원 결정이 내려졌지만, 병원 주자장에 있는 구급차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속 타는 건, 환자 보호자뿐이었습니다.

"지금 구급차가 없어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밖에 나와 보니까 저기 구급차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건 왜 운행을 안 하냐, 라고 물어봤는데 지금 현재 제도적으로 병원에서 운행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실제로 급한데도 불구하고 지금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되는 상황이에요. 속만 끓이고 있는 상황입니다."(응급환자 보호자)

사설 구급차는, 34분 뒤에야 도착했습니다.

● 1억 주고 산 구급차…운행은 '1번'
이세영 취재파일용해당 병원은, 법정 '지역 응급의료기관'입니다. 지역민들 응급 의료가 병원의 주된 존재 이유이고, 그 때문에 지원도 받습니다. 병원 구급차도 지난 2017년 정부 예산으로 1억 원가량을 지원받아 샀습니다. 그런데, 앞서 설명해드렸던 것처럼 '장식품'처럼 취급하는 덕분에 올 들어 응급환자 이송 횟수는 단 1번입니다.

또 다른 지역 응급의료기관인 수원 한 종합병원도 마찬가집니다. 이곳도 지난 2017년 구매한 구급차가 응급실 한쪽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그럼 대체 왜, 사놓고 안 쓰는 걸까요?

● "사설 업체 위탁 비용이 한 사람 인건비보다도 싸다"

두 병원 모두 '돈'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자체 구급차 운영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설 구급차 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는 겁니다. 대전 병원의 경우, 1억 원 주고 산 구급차가 있는데도, 한 달에 수백만 원씩 사설 구급차 업체에 또다시 돈을 주는 겁니다.

이들도 나름 사정은 있습니다. 주 52시간 도입에 야간, 휴일까지 대기하려면 구급차 운영 인력을 세 명씩 투입해야 하는데, 병원 사정이 못 따라간다는 겁니다. 구급차 안에 들어가는 물품 관리 비용까지 포함하면 결국 사설 업체에 맡기는 게 싸다는 건데, 1년 위탁 비용이 한 사람 인건비보다도 싸다는 게 병원 설명입니다. 다른 병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 '즉시'라는 말만…애매한 법이 문제

'위탁'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법상으로도, 필요한 경우 구급차 운용을 위탁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문제는 애매한 규정입니다.
이세영 취재파일용 30-40분, 길게는 1시간 걸리면 '즉시'일까요? 구급차가 늦게 오더라도 아무도 문제를 삼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즉시'인지, '즉시' 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부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병원마다 위탁 운용 방법이 천차만별입니다. 대전 사례의 경우, 병원에서 6~7㎞ 떨어진 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위탁 계약을 맺은 병원에 상시 대기할 수 있도록 계약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는 병원은 많지 않습니다. 돈이 더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실제 취재진이 만난 사설 구급차 업체도, 저렴한 단가로 계약을 따내는데 병원에서 돈을 주는 것 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응급 의료 전문가들은, 세부적인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히 응급 의료의 경우, 지역별로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 협의체를 만들어 구급차 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즉시'라는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잖아요. '질 관리'가 가능한 구체적인 형태로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아주 급하지 않은 환자일 경우에 현장 도착 목표가 19분입니다. 예를 들어 그 19분의 목표를, 지역에 따라서 90% 혹은 75% 달성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규정이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몇 분 안에 구급차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규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조석주/대한 응급의학회 감사, 부산의대 교수)

종합병원에서 사설 구급차가 오길 기다려 보셨던 분들 중에, 아마 병원에 자체 구급차가 있는지도 모르셨던 경우가 많을 겁니다. 이송 병원이 정해지면 바로 떠날 수 있는데, 바로 떠나야 하는데, 그걸 응급환자들이 모르고 누릴 수 없는 게 우리 응급의료 현실 중 하나입니다. 최근 3년간 중증외상과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실로 옮기는 길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천300여 명에 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