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국에서 무기개발이란…누가 '군단급 무인기' 날개 꺾나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10.13 09:44 수정 2019.10.13 10: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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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과학연구소(ADD)는 이스라엘 무인 정찰기 '헤론'급의 중고도 무인 정찰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작전 시간이 10시간 이상이고 비행 고도도 높을 뿐 아니라 첨단 관측센서를 장착하고 있어서 군단 이상 부대에 배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차세대 군단급 무인 정찰기 사업입니다.

시제기는 이미 다 만들었고 시험평가를 해서 성능을 따져 보면 양산할 수 있는데 2017년 6월부터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방위사업감독관실의 감독, 감사원의 감사를 받느라 세월을 보냈고 현재는 국방연구원(KIDA)로부터 사업타당성 검토를 다시 받고 있습니다. 개발할 시간도 모자랄 판에 감사와 감독받느라 2년 이상을 허송세월했습니다.

차세대 군단급 무인 정찰기는 시험평가를 거쳐 전력화 여부를 가려야 할, 개발 중인 미완성의 무기체계입니다. 늘 그렇지만 처음 개발해 보는 전인미답의 도전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데도 첫술조차 못 뜨는 상황입니다. 현실과 수준에 맞게 개발하고 기술을 더 배워서 순차적으로 좀 더 나은 무기체계를 내놓자는 진화적 개발 방식의 적용 없이는 한국 무기는 고사한다는 주장이 수년 전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제기됐는데도 관가는 귀를 닫고 있습니다.

● 사연 많은 차기 군단급 무인기

지난 2016년 7월의 일입니다. 차세대 군단급 무인기 시제기 1대가 시험비행 도중 추락했습니다. 항공기의 속도, 방향, 그리고 바람의 속도, 방향을 계측하는 테스트 붐(test boom)이라는 장비를 연구원들이 실수로 잘못 장착하는 탓에 생긴 사고였습니다.

기체 가격은 67억 원. 방사청에 파견된 감사원 감사관과 검사들의 조직인 방위사업감독관실의 처분은 "관련 연구원 5명에게 균등하게 손해배상 청구하라"였습니다. 연구원 1인당 13억 4천만 원씩 물어내라는 겁니다.

ADD는 "무기 개발 중 사고에 대한 금전적 책임을 연구원에게 떠넘기면 연구원들은 몸 사리느라 무기 개발 못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연구원들의 실수가 맞지만 개발 중 발생한 사고의 금전적 책임을 연구원들에게 모두 뒤집어씌우는 건 합당하지 않다는 여론도 뒤따랐습니다.

연구원들에게 13억 4천만 원씩 배상액을 물리는 처분은 재작년 철회됐지만 곧바로 방위사업감독관실의 감독이 진행됐습니다. 이어 감사원의 감사도 뒤따랐습니다. 이렇게 2년여가 흘렀습니다.

● 무인기의 날개를 꺾는 자들

차세대 군단급 무인정찰기에는 광학적외선(EO-IR) 탐지장비 뿐 아니라 합성개구레이더(SAR)도 장착됐습니다. SAR는 지상 표적으로 전파를 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전파를 측정해 영상을 복원하는 장비입니다. 짙은 구름도 뚫고 표적을 정밀 탐지할 수 있습니다.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가 정찰위성급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SAR와 EO-IR의 성능에 있습니다.

차세대 군단급 무인정찰기는 또 위성통신이 가능합니다. 적의 공격 등으로 지상 기반 일반 통신이 마비됐을 때는 위성통신을 통해 명령을 받고 작전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헤론에도 없는 기능입니다.

국정감사 시즌이면 무조건 군을 헐뜯고 보는 국회의원들의 자료가 쏟아지는데 차세대 군단급 정찰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국방위원회 소속의 한 야당 의원이 모 방송을 통해 "차세대 군단급 무인정찰기가 북한의 대공무기 사정권에 들어가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인용한다며 "무인기의 비행고도가 북한의 57mm 고사포의 사정권에 들어가니 요격되기 십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밀 ROC(작전요구성능)여서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차세대 무인정찰기는 기존 군단급인 송골매보다 탐지능력이 월등한데도 비행시간은 수 시간 길고 비행고도는 2배 이상 높습니다. 그럼에도 북한 고사포 사정권 안에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헤론의 비행고도도 북한 고사포 사정권 안이지만 훌륭한 무인 정찰기로 꼽힙니다.

북한은 고사포보다 사거리, 요격고도가 훨씬 뛰어난 지대공 미사일도 수두룩 보유하고 있습니다. 요격되면 안 된다는 국회의원의 논리대로라면 지대공 미사일도 맞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고사포와 지대공 미사일로도 못 맞추는 군단급 무인기가 지구상에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게다가 무인정찰기의 작전 개념은 고사포 위를 비행하지도 않습니다. 고사포 사정거리 밖에서도 고사포 넘어 적 표적을 정밀 관측할 수 있습니다. 평시에도 전방의 비행금지구역 밖에서 북한의 상당한 지역을 감시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고사포, 지대공 미사일에 맞을 각오를 하고 적진 속으로 비행해야 합니다. 적을 정찰하려면 유인기든 무인기든 정찰기를 적군 속으로 보내야 하니, 맞아도 아군 인명피해 없는 무인기를 날리는 게 현대전에서는 상식입니다. 무인기 운용의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산 넘어 산

일단 현재 개발한 헤론급의 차세대 군단급 무인정찰기를 띄운 뒤, 추가적으로 기술을 축적해서 비행고도, 비행시간을 향상시키면 됩니다. 진화적 개발입니다. 기술적, 금전적 밑천도 모자란 데 처음부터 완벽한 무기를 만들라는 '완성형 개발론'은 이제 폐기돼야 합니다.

감사원도 올 초 "현재 개발된 시제기로 최소전력화를 추진하고 추후에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4월 방위사업협의회(국방부 차관·방위사업청장 공동위원장)도 감사원의 의견을 100% 수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연한 귀결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사업은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일찍이 타당성이 있다고 판정이 나와서 시작된 사업인데도 감사와 감독을 거치느라 개발기간이 늘어나 비용이 더 들게 생겼으니 KIDA가 비용의 적합 여부를 따지는 사업타당성 검토를 또다시 하고 있습니다.

KIDA의 사업타당성 재검토 결과는 다음 달 나오는데 국회 국방위 같은 곳에서 괜한 트집을 잡아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유력한 정치 지도자들이 무기 개발을 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듣기 좋은 소리를 종종 했다", "하지만 말 뿐이지 관련 제도와 관리들의 마인드, 현장의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탄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