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노인의 징용 피해자 증언…"바짝 마른 그들은 힘없이 걸어왔다"

정동연 기자 call@sbs.co.kr

작성 2019.10.12 13:55 수정 2019.10.12 15:39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日 노인의 징용 피해자 증언…"바짝 마른 그들은 힘없이 걸어왔다"
"조선인 징용공들의 작업복은 언제나 너덜너덜해 구멍이 뚫려 있고 지저분했다. 인간 취급이 아니었다. 한 벌밖에 없어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제 말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에 대한 증언이 당시 함께 일했던 일본인에게서 나왔습니다.

도쿄신문은 오늘(12일) 일본의 패전 직전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하다 원자폭탄에 피폭당한 니시야마 스스무 씨의 증언을 소개했습니다.

1942년부터 이 조선소에서 일했다는 그는 "언제부터인지 갑자기 조선인 징용공이 늘어났다. 징용공들은 100명 정도 대열을 이뤄 산 건너편 1㎞ 떨어진 정도 떨어진 집단 숙소에서 고개를 넘어 걸어왔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징용공들은 힘없이 걸어왔다. 영양실조 탓인지 바짝 말랐었다. 기력이 없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니시야마 씨의 기억에 따르면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조선소에서 한 일은 거대한 배의 선체를 대못으로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끈으로 연결된 허술한 작업대에 올라가 다른 징용공들이 건네는 못을 건네받은 뒤 못질을 했는데, 못이 빨갛게 뜨거운 상태여서 맨손으로는 잡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가장 위험한 작업이었다. 발판이 불안정해서 추락사 한 사람도 있었다"며 "조선인 징용공이 상사로부터 맞는 것도 자주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하자 일본인들이 징용공들에게 음식과 술을 대거 주면서 대접을 했다는 기억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상당히 가혹한 취급을 했으니 보복을 당할 것을 우려한 것 같다"며 "패전 후 대부분의 조선인 징용공들은 한반도로 돌아갔다"고 전했습니다.

니시야마 씨는 일본 패전 후 조선인 징용공들이 살던 집단 숙소에 머문 적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잘도 이런 돼지우리 같은 데서 살게 했구나'라고 생각하며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도쿄신문은 이 인터뷰의 배경을 설명하며 "전에는 널리 알려졌던 조선인 징용공의 실상이 지금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며 "열악한 노동환경과 민족차별이라는 무거운 사실을 잊고 있는 게 한일 갈등의 배경에 있는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