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 휴식" 콜센터 무한경쟁…드러난 '압박 계약서'

원종진, 정경윤 기자 bell@sbs.co.kr

작성 2019.10.11 21:01 수정 2019.10.11 22: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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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모르는 번호를 받았더니 카드회사의 홍보 전화였던 기억 아마 다들 있으실 겁니다. 이런 전화를 누가, 왜 계속 시키는지 저희 이슈취재팀이 콜 센터 상담원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카드회사의 실태를 취재해봤습니다.

이슈 리포트 깊이 있게 본다, 원종진 기자, 정경윤 기자가 차례로 전하겠습니다.

<기자>

한 카드사 콜센터 조회 시간,

[너무 인격적으로 대해줬나 봐.. 왜 불평불만이 그렇게 많으신 건지]

상담원 실적을 두고 팀장 질책이 이어집니다.

[실적도 마이너스인데 앞으로 60점 이하는 인센티브 없습니다. 아예 없어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일일이 보고하는 것은 여전하고 점심시간마저 줄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 : 1시까지 점심시간인데 40분부터 들어가요 근무를요. 콜을 돌릴 시간이 15초 정도 되는데, 그사이에 쉬는 거예요. 실적이 안 나와서 센터장이 갈렸어요 7월달에…]

이처럼 쉴새 없이 마케팅 전화를 걸어야 하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근로 실태, 왜 바뀌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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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콜센터 업체들이 많이 있는 서울의 한 디지털단지입니다.

콜센터 업체들은 카드사들로부터 전화 상담 업무를 하청받는데요, 저희가 매출액 기준 상위 5개 카드사와 콜센터 업체들 간 계약서를 입수해 따져봤습니다.

계약서를 보니 같은 카드사라도 적게는 3곳, 많게는 8~9곳의 콜센터 업체에 고객 상담 업무를 나눠서 하청 주고 있었습니다.

콜센터 7곳과 계약한 한 카드사의 계약서입니다.

매달 콜 센터의 실적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점수를 매기는데 평가 점수가 낮거나, 최하위를 한 횟수가 많을 경우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인원을 줄여야 한다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콜센터 업체 직원 : 너희가 (직원들이) 실적을 잘 뽑으면 쉬게 할 수 있다, 이거에요. 그런데 실적이 안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없어지니 쉬지 않고 하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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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콜센터 상담원들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다른 회사 같으면 노조를 통해서 단체 행동을 하겠지만, 콜센터에서는 좀처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저희는 그 이유를 이 계약서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계약서에는 콜센터 노조가 파업을 해 업무 수행에 차질이 생기면, 카드사와 콜센터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카드사 5곳 가운데 3곳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내용입니다.

[박사영/노무사 : 이런 조항이 있는 건 처음 봅니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정면으로 제한하게 되는 거죠. 이것은 부당노동행위까지 될 수 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실제 한 콜센터 상담원들은 지난달 회사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두 차례 파업을 했는데 회사로부터 카드사와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며 책임을 묻겠다는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불법 파업을 할 경우 손해배상과 재산가압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손영환/콜센터 노조 지부장 : 우리들의 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저희가 행동했습니다, 합법적으로. 그런데 (다음날) 제가 회사에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제지당했어요. 자택 대기 발령이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SBS가 취재에 들어가자, 콜센터 측은 노사 분규 자체만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불법 파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카드사는 콜센터와의 계약에서 문제가 된 조항들을 재검토겠다고 밝혔습니다.

[○○ 카드사 관계자 : 정상적인 상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사례들을 계약서에 열거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을 무조건 하겠다', '압박을 하겠다', 그런 건 아니고… 검토해서 혹시라도 필요하다면 그 부분도 보완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판단해 보겠습니다.]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는 정부가 콜센터 근로 실태를 감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용득/더불어민주당 의원 : '노동쟁의가 일어나면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반헌법적인 조항을 넣은 겁니다. 그래서 (노동부가) 감독을 통해서 이들의 노동권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합니다.]

카드사는 콜센터와 무리한 계약을 맺고, 콜센터는 실적을 이유로 근로 환경을 악화시키는 상황, 상담원들은 을들의 전쟁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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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극한까지 쥐어짜 수익을 만드는 콜센터 업계의 구조.

당국이 제 역할을 하는지, 콜센터 업계의 노동 현실이 나아지는지, 계속 취재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영상편집 : 소지혜, CG : 홍성용, VJ : 정영삼·정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