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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덩샤오핑의 '일국양제'는 시진핑에게 독이 된 걸까?

덩샤오핑 전 중국 주석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정부가 수립된 이래, 전왕조인 청나라 영토 기준으로 중국 공산당 통치력에서 벗어난 곳이 몇 곳 있습니다.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 정부가 정착한 타이완과 19세기 영국과 포르투갈에게 넘겨진 홍콩과 마카오가 그 곳들입니다.

이들 지역을 원위치시키려했던 중국 정부는 여러 노력끝에 1997년과 1999년, 홍콩과 마카오를 (중국 관점에서) 회복했습니다. 이때 적용된 원칙이 '하나의 중국'과 '일국양제'입니다. '하나의 중국'은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직 하나 뿐이라는 의미이고,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 안에 다른 두 체제가 공존할 수있다는 원칙입니다. '하나의 중국'이 중국 통일의 대원칙이라면, '일국양제'는 통일의 방식으로서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중국을 실현하기 위해 일국양제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덩샤오핑 전 주석입니다. 마오쩌둥이 숨진 뒤 혼란했던 중국의 권력을 손에 쥔 덩샤오핑은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 인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나섰던 지도자였죠.

덩샤오핑은 타이완, 홍콩, 마카오가 중국으로 합쳐지기만 한다면, 각각의 사회가 어떤 시스템을 유지하던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일개국가 양종제도(一個國家 兩種制度)'를 꺼내들었습니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그 결과 홍콩도, 마카오도 지금 중국으로 편입됐습니다. 이때부터 '일국양제'는 '하나의 중국'을 실현하는 절묘한 묘수로 평가되며, 아직 중국과 통합되지 않고 있는 타이완에게도 유효한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국인민대회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시진핑 주석의 집권기인 지금도 하나의 중국, 일국양제 원칙은 더욱 굳건해지는 분위깁니다. 시 주석은 타이완과의 관계에 대해 하나의 중국과 일국양제 원칙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에 위배되는 상황에 대해 철저하게 응징하면서 말이죠.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은 온갖 경제적 이익을 줘서라도 외교관계를 끊어버렸고, 일반 기업들, 예컨데 항공사나 여행사들이 실수든 고의든 타이완을 국가로 분류해놓으면 보복 조치로 본때를 보여줬습니다.

그래선지 최근 타이완엔 친중(親中) 세력의 입지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중국이 외교적, 경제적으로 옥죄는 상황에서 성장이 멈춘 저혈압 경제가 지속되고 있는 타이완의 현실적인 선택지는 친중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11월 타이완 지방 선거 결과에 반영됐습니다. 중국 공산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차이잉원 총통의 민진당이 참패했습니다.

홍콩과 마카오에도 마찬가집니다. 재작년 홍콩 주권반환 20주년 행사에 참석한 시 주석 연설의 핵심 내용도 하나의 중국과 일국양제였습니다. "홍콩은 전에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중앙정부 권력에 도전하는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냥 강조만 한 게 아니라 살벌한 경고까지 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말처럼 일국양제 원칙 아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 하지만, 중국화의 모습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홍콩에선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리고, 본토 중국인들의 막대한 자금이 홍콩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홍콩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홍콩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부족해갔습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 행정장관을 포함한 친중파 정치인들이 홍콩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중앙정부를 비판하는 책을 팔던 사람들이 실종됐다 어느 날 갑자기 본토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덩샤오핑의 약속대로 일국양제는 유지되고 있었지만 제도를 운영하는 건 결국 사람이었고, 그 사람들이 중국 정부에 기울어진 사람들로 채워져 가고 있었던 겁니다. 덩샤오핑이 구상한 일국양제의 큰 그림은 어쩌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잠식되는 상황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5년 전 이른바 우산혁명이 홍콩의 중국화에 대한 1차 저항이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범죄인 인도법안 반대시위가 홍콩인들의 2차 저항입니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뜻을 함께 한 걸 보니 규모만 놓고 보면 2차 저항이 더 강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홍콩인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꼭 했습니다. 그만큼 더 절실하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사실 이번 시위 촉매제인 범죄인 인도법안은 정상적인 사법시스템이 작동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필요한 법안입니다. 하지만 그 인도 대상국에 중국이 포함됐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일들이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홍콩인들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홍콩인들의 반대에 홍콩 정부는 물론 중국 정부도 놀란 듯 합니다. 특히 중국 정부 입장에선 하나의 중국과 일국양제 원칙에 대한 저항감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확인한 게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묘수라고 생각했던, 잘 작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통일의 대원칙이 홍콩 사람들의 반감을 이렇게까지 키웠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또 하나 당황스러운 점은 이런 저항감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조짐이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교롭게도 타이완에선 하나의 원칙과 일국양제를 반대하는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이 다음 총통선거 후보로 다시 선출됐습니다. 불과 반 년 전에 참패했던 차이잉원 총통이 홍콩 시위와 반중국 정서에 힘을 받아 부활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은 중국 중앙정부로선 매우 유감스런 상황입니다. 무력감에 좌절했던 타이완의 반중국 세력들이 홍콩의 시위를 주시하고 있고, 어느 정도 희망을 보기 시작한다면 중국 중앙정부로선 최악의 상황인 셈입니다.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자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중국 중앙정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 하지만, 필사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4일 텐안먼 사태 30주년 집회는 물론이고, 6월 12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 모습은 중국 TV에선 단 1초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인민일보나 신화사, 환구시보 등 활자 매체들이 보도하고 있지만, 시위 상황을 전하는 대신 홍콩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와 사설을 싣고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우리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까지 접속을 차단하면서 홍콩 시위 소식 확산을 철저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는 외부 세력이 홍콩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중국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중국의 통일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남 탓하는 게 제일 자연스러운 대응책일 수 밖에 없겠군요. 중국의 지목한 선동의 주체는 당연 미국입니다. 관영매체들은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홍콩의 저항세력 인사들을 만난 뒤 시위가 발생했다는 구체적인 팩트까지 제시했습니다. 의아한 것은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지목하진 않는다는 겁니다.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더 이상 깊숙이 찌르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겠죠?
'범조인 인도 법안' 홍콩 경찰-시위대 대치
중국의 말대로 미국이 홍콩 시위를 선동하고 있는 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홍콩 시위가 중국을 상대할 미국으로선 또 하나의 좋은 카드임엔 분명해 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계속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타이완에 무기 수출을 해왔고, 최근엔 미 국방부 전략보고서에 타이완을 국가로 적시했습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해왔던 오바마 정부 때까지와는 달리 중국에 대한 의도적인 도발로 해석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전면 부정하는 단계로까진 보이진 않습니다만, 하나의 원칙의 약한 고리를 파악해 중국을 흔들기만 해도 나름의 성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얘깁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홍콩 시위의 이유를 이해한다고 밝혔습니다. 예상보단 수위가 낮은 발언이었던 건 오사카 G20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과 얼굴을 맞대기로 한 만큼 속내를 다 드러내진 않겠다는 전술로 풀이됩니다. 안 그래도 이래저래 트럼프 대통령과의 무역 마찰로 국내 입지가 예전만 못한 시진핑 주석 입장에선 굳건히 믿었던 통일의 대원칙, 하나의 중국과 일국양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까지 겹치면서 고민의 깊이가 한층 더해졌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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