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남자도 양산 쓰세요"…더위 대책 시동 거는 일본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19.06.11 14:53 수정 2019.06.13 16:5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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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남자(日傘男子, 히가사 단시)'를 늘려라!
오늘(11일) 낮, 긴자 거리의 모습.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비 예보가 있었던 터라 양산을 쓴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도쿄는 지난주 장마에 들어갔습니다. 주말에 걸쳐 비가 내리면서 5월 말에 찾아왔던 이상 고온 현상이 다소 누그러들었지만, 장마가 끝나면 또 푹푹 찌는 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일사병-일본에서는 열중증(熱中症)이라고 부릅니다- 환자가 넘쳐났던 일본이 올해부터는 '양산 쓰는 남자'를 띄우는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일본 환경성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69.8%가 양산을 사용하는 반면 남성은 14.3%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는데요, 여성들이 자외선 차단을 위해 여름철에 양산을 쓰는 것에 익숙한 반면 남성들은 양산 간수가 귀찮거나 남들의 시선이 의식된다는 이유로 양산을 거의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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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성은 양산에 대한 남성들의 관습적인 저항감을 줄이고 양산이 실제로 더위 차단에 효과가 있다는 자료들을 알기 쉽게 포스터 형식으로 제작해 '양산 남자'를 늘려보겠다는 작전입니다. 실제로 환경성이 공개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기온을 섭씨 30도로, 습도를 50%로 설정한 상태에서 양산을 쓰고 15분 동안 보행하면 모자만 착용했을 때에 비해 땀 발생량이 17% 감소했다고 합니다. 또 환경성이 홈페이지를 통해 자체 발표하는 '더위 지수'의 경우 31도 이상이면 외부 활동을 가능한 자제해야 하는 '위험' 단계인데, 양산을 사용할 경우 최대 1~3도를 낮출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환경성이 제작한 '양산 남자' 포스터. 양산을 사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여기에 일본백화점협회 등 업계도 적극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16일)은 '아버지의 날'(미국의 풍습이 그대로 일본에 정착)인데요, 대형 백화점과 양판점 등을 중심으로 이날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로 양산을 추천하는 마케팅에 한창입니다. 남성용 양산은 대부분 양산과 우산 겸용이고, 여성용보다 우산살의 길이가 10cm 정도 길고, 검정이나 회색 등 단색의 차분한 디자인이 대세입니다. 주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남성용 양산의 가격은 5천 엔(우리 돈 5만 3천 원 정도)에서 만 2천 엔(13만 원 정도)로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더위를 앞두고 선물용으로 구입하거나 본인이 직접 사용할 양산을 구매하는 발길이 예년에 비해 늘었다고 합니다. 도쿄 긴자의 유명 백화점 '마쓰야'는 지난 4월 중순부터 남성용 양산 코너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는데요, 5월 말 기준으로 단일 매장에서 62개가 판매됐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불과 4개가 팔렸던 걸 감안하면 확실히 늘어난 수치입니다.
도쿄 긴자 마쓰야 백화점 5층의 남성용 양산 매장의 모습. 환경성에서 제작한 포스터와 함께 양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도쿄 북쪽 사이타마 현에 기반을 둔 한 대형 백화점 체인이 남성 8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답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들이 양산을 고를 때 중요시하는 포인트로 자외선 차단 능력이 1위(21.0%)였다고 합니다. 기존에 '무게'를 가장 큰 고려 요소로 꼽던 것에서 양산의 '실제 능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자외선 차단 능력에 이어 '열 차단'이 8.2%였고, '무게'를 꼽은 답변은 4.4%에 그쳤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높은 기온과 습도로 악명높은 일본 태평양 해안 지역의 더위를 감안하면 '남자가 무슨 양산을…'이라고 체면을 차릴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성용 양산은 차분한 단색 위주로, 정장과의 매치를 고려했습니다.SBS 도쿄지국이 있는 신바시(新橋) 근처는 지하철 환승의 요지인데다,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많이 근무하는 사무실 밀집지역입니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거리에 나가 보면 정장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로 가득한데요, 일본 정부의 '양산 남자' 정책이 효과를 거두어 곧 다가올 한여름에 각자 양산으로 강렬한 햇빛을 가리고 다니는 풍경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