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상'과 '현실'의 차이…학교 스포츠 정상화 권고안

정희돈 기자 heedon@sbs.co.kr

작성 2019.06.04 17:47 수정 2019.06.05 09: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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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주중 대회 개최 금지'와 '체육특기자 제도 개편' 등이 담긴 파격적인 권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체육계 현장에서는 이 권고안을 따르면 엘리트 스포츠가 무너질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오늘(4일) 스포츠 혁신위가 학교체육 정상화를 위해 권고한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하나도 '틀린 말'은 없다. 학생 선수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권'인 만큼 이것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고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위는 이에 따라 선수들의 학기 중 주중 대회 참가와 개최를 전면 금지하고 최저학력제 도달 학생만 대회 참가를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 혁신위가 제시한 아이디어에는 기본적으로 공감은 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무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권고안이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부터 체육특기자 제도 개편, 학교 운동부 관리, 소년체전 확대 등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있고, 아주 오래전부터 수십년간 관행처럼 진행되어 온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니 막막하고 어렵다는 것이다.

다양한 불만과 우려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근간에는 엘리트 체육이 한꺼번에 무너질까 하는 큰 두려움도 깔려 있다. 특히 소년체전을 학교 운동부와 학교 클럽 선수들이 함께 경쟁하고 중등부와 고등부 선수들도 참여토록 하는 '통합 학생스포츠 축전'으로 확대 개편하자는 권고안에 대한 불만이 대표적이다. 혁신위가 2021년까지 시간적으로 유예를 두긴 했지만 그동안 성인대회인 전국체전에 포함돼서 엘리트 선수 발굴의 근간이 됐던 고등부 경기를 중등부와 합쳐 축제형식의 '학생스포츠 축전'에 포함시킬 경우 고교 선수들의 경쟁력이나 경기 수준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교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지면 성인 대표팀으로 이어지고 결국 한국스포츠의 국제 경쟁력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 고등학교 축구감독은 "스포츠에서 실력은 훈련량에 비례한다. 이 권고안대로라면 학생 선수들은 훈련량도 경기 경험도 확 줄어들 것이다. 볼을 수천 번 차야 자기 기술이 되는데 이젠 그렇게 가르칠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한국축구에서 박지성, 손흥민 선수가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 문경란 위원장스포츠 혁신위도 이런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위원회 위원인 이대택 국민대 교수는 "많은 고민을 했다. 현장에서 반발이 나올 수도 있지만 우리 스포츠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선 누군가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큰 책임감으로 권고안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혁신위의 권고안에 대한 일선 체육인들의 반발은 마치 '이상'과 '현실' 인식에 대한 차이로 느껴진다. 혁신위는 이번에야말로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일선 체육인들은 하루하루 바쁜 우리에게 그 큰 그림을 당장 한꺼번에 색칠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항변한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좁힐 묘안은 없는 것일까. 혁신위도 올곧은 개혁의 의지는 지켜가야 하지만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관행과 한국 체육의 묵은 문제들이 단 한 번에 해결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체부와 교육부 등 행정관처의 역할도 중요하다. 체육계의 개혁이 가능하도록 예산과 정책적 지원은 물론 현장의 목소리도 귀담아듣는 배려와 동반자적 자세도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