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소프라노 조수미를 만나다 ①

누구나 그리운 이름, 어머니를 위해 부르다

김수현 기자 shkim@sbs.co.kr

작성 2019.06.03 09:39 수정 2019.06.03 13:4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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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위한 앨범 '마더'를 낸 소프라노 조수미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진작 쓰기 시작했던 글인데, 피치 못할 개인적 사정으로 늦어져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조수미 씨를 인터뷰하고 공연을 봤는데, 항상 최선을 다하는 '프로페셔널'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6년 만에 한 이번 인터뷰에서도 '프로페셔널' 조수미는 그대로였고, 어머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저 역시 딸이요 어머니이기도 해서 더 그랬나 봅니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 역시 항상 평화롭고 좋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조수미 씨 역시 음악가의 꿈을 딸에게 심어주고 엄격하게 훈육한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딸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합니다. 앨범에 실린 노래에, 조수미 씨의 이야기에,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쓴 SBS 8시 뉴스 리포트 기사는 '조수미의 사모곡'을 주제로 썼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인터뷰라 이번 앨범 관련 외에 다른 질문도 많이 했는데, 뉴스에서는 주제가 분산되기도 하고 시간 제약도 있어서 다루지 못했습니다. 아쉬워서 지난번 조성진 인터뷰 때처럼 인터뷰를 풀 텍스트로 소개하려 합니다. 역시 내용이 많아 2편으로 나눴습니다. 1편은 조수미 씨가 들려주는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Q. 새 앨범 소개 부탁드려요.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클래식뿐 아니라 여러 장르를 함께 담았어요. 5월에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그런 앨범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저희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은 앨범이기도 하고요.

Q.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저희 어머니는 성악가를 꿈꾸셨어요. 그런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셨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긴 후에도 자신을 원망하시면서 사신 분이에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플랜B'가 없었어요. 성악가라는 어머니의 꿈을 이뤄야만 하는 딸로 성장해야만 했죠. 그래서 연습 시간도 굉장히 많았고, 어린아이로서는 너무 힘든 시간도 많이 보냈죠.
[취재파일] 소프라노 조수미를 만나다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제가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렸다기보다는, 어머니의 꿈이 결국은 제 꿈이더라고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음악적인 활동이며 사회 활동이며 이런 것들이 사실은 저희 부모님들께서 하고 싶으셨지만 못했던 일들이거든요. 제가 그 꿈을 잠재의식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최대한으로 재능을 발휘하고 노력하면서 이뤄내며 이 자리에 온 거예요. 과정이 쉽지는 않았죠. 어머니를 원망한 적도 있었고, 미워한 적도 있었고, 오해를 푸는 시간이 상당히 걸렸어요.

Q. 어머니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언제였나요?
=제가 한 여덟 살 정도였던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는 본인이 음악을 할 수 없었던 그 상황이 굉장히 힘드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24시간 오페라를 들으셨고요. 저는 만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온갖 종류의 예술, 악기, 발레, 고전무용 모든 상황에 준비가 될 수 있는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어머니는 저를 철저히 교육시키셨어요.

어머니는 또 '너는 나같이 한 남자의 아내가 되지 않고 전 세계를 돌면서 멋진 음악으로 만인의 연인이 될 거야. 넌 그렇게 살 거야'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이 말을 하루에 적어도 서너 번씩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때 좀 성숙하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왜 저렇게 사시나,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특히 저녁식사 후에 설거지하시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시는데, 항상 끝날 때는 투덜거리셨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저는 뒤에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불쌍해 보이고 처량해 보이고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도 어머니를 좀 무시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난 저렇게는 안 살 거야, 이렇게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뒷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워 보이는 거예요. 어머니의 뒷모습이 그냥 한 외로운 여성의 모습으로 보이고. 그래서 저렇게 자신의 꿈을 못 이룬 것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힘들게 사시는데,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 꿈을 이뤄드려야 되겠다, 비록 어렸지만 그런 작은 각오를 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Q. 여덟 살 때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놀랍네요. 그때 어머니와 화해하신 건가요? 어머니와 화해는 어떻게 이뤄졌는지요?
= 제가 대학교 1학년을 잘 못 마치고, 서울대학교에서 굉장히 안 좋은 성적으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어요. (뒤에 다시 얘기가 나오지만, 연애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공부를 게을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학을 갔어요. 그러니까 제 앞길이 굉장히 불투명했을 때 유학을 가게 된 거죠.

그런데 유학 자체는 저한테 '자유'로 다가왔어요. 인터넷도 없고 국제전화도 거의 못 쓰고 편지로만 왔다 갔다 해야 했던 힘든 상황이었는데, 일단 제가 제일 처음 외국에서 느낀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드디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에 혼자 왔구나' 하는, 자유의 느낌이었어요. 그때까지 어머니의 통제가 심했기 때문이에요.
[취재파일] 소프라노 조수미를 만나다그런데 그 자유도 첫날 딱 하루였어요. 갑자기 먹을 것도 구할 수 없고, 잘 곳도 없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고. 당시 비행기 34시간 타고 가서, 문화와 언어와 모든 것이 다른 그런 곳에 혼자 뚝 떨어진 거예요. 나이도 만 20살, 21살밖에 안 됐을 때. 그래서 아주 작고 초라한 호텔, 호텔이라고도 하기도 민망한 작은 방에 혼자 앉아있는데, 어머니가 제일 보고 싶더라고요. 그때 저 자신도 굉장히 놀랐어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엄마가 보고 싶지? 난 늘 엄마한테서 도망가고 싶어 했던 딸인데. 그러면서 어머니하고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서로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말을 글로는 쓸 수 있었고, 어머니의 글을 읽으며 어머니의 진심을 알 수 있었어요.

어머니가 성악가가 되지 못했으니까 딸이 대신해야 한다는 그런 거라기보다는, 결국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재능이 있다는 걸 어머니가 간파하고, 저에게 조금…… 조금 거세고, 심하셨지만, 엄청난 서포트를 하신 거죠.

어머니하고의 시간이 좋아지는 데 그래서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어요. 83년도에 유학 갔고 다시 한국에 온 게 88년도였기 때문에. 그때 김포공항에서 어머니를 만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나의 엄마, 어머니라는 걸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어머니를 꽉 껴안았죠. 그때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제대로 화해한 것 같아요.

Q. 딸이 꿈을 이룬 걸 어머니가 기뻐하셨을 텐데, 표현을 많이 하셨나요?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시는 것 같기는 한데 표현은 잘 안 하세요.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가장 큰 서포터이기도 하지만, 가장 두려운 비평가이기도 해요. 항상 제 콘서트에 오셔도 단 한 번도 너무너무 잘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 저는 어머니가 제 분장실을 들어설 때 표정과 하시는 말씀 첫마디, 그걸 보고 아, 오늘 공연이 좋았다, 내가 제대로 했구나,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무대 서기 전에 뭐 안 먹고 들어갔지?' 이런 말씀 하신 건 제 고음이나 콜로라투라 기교나 이런 게 어머니가 기대했던 소리가 안 났다는 뜻이에요. 최상의 컨디션으로 공연을 아주 잘했을 때 어머니는 별로 말씀이 없으시고 그냥 미소를 크게 지으시죠. 어머니가 경상도에서 자라셨는데 조금 무뚝뚝하세요. 하지만 말씀하시는 거, 표현하시는 게, 척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Q. 속정이 깊으신 거네요?
=그렇죠. 속정이 굉장히 많으세요.

Q. 어머님께서 지금 많이 편찮으시다고요.
=어머니는 늘 음악을 들으며 사시는 분이셨어요. 저와 떨어져 있어도 항상 제 음악을 들으시고, 모든 종류의 클래식 음악을 다 찾아 들으시고, 음악을 생활화하면서 사신 분인데, 지금은 음악을 들을 수 없으세요. 굉장히 고통일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슬픈 건, 이제 어머니는 제 이름도 모르시고 저를 알아보지도 못하세요. 저는 어딜 가나 거의 매일 국제전화를 하면서 어머니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거의 대화가 안 돼요.
그런데 이번 앨범이 나오자마자 들고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던, 드보르작이 작곡한 '어머님이 가르쳐주신 노래'라는 곡을 이번 앨범에 실었거든요. 앨범을 드렸더니, 처음에는 뭔지 모르시죠, 뭐든 인지를 못 하시니까. 그런데 제가 그 앨범 음악을 폰으로 틀면서 앨범을 드린 거예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정말 생각지도 않았는데 앨범을 딱 손에 쥐시더니 제 얼굴을, 앨범 커버를 손으로 이렇게 쓰다듬으시면서 그 노래를 계속 듣고 계시다가, 감동적인 부분에서 눈을 딱 감으시더라고요. 마치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노래라는 걸 알고 들으시는 것처럼.

그 장면이 저는 너무 기가 막히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Q. 아버님은 2006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장례식에 참석 못 하고 파리에서 하신 공연 실황 봤는데, 저도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이 공연 앙코르 때 조수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이야기하고, 눈물을 머금은 표정으로 '아베마리아'를 부른다. 나는 이 공연 실황을 이전에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인터뷰를 앞두고 다시 보다가 눈물을 쏟고 말았다. 2013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위해 나는 병상에서 평소 좋아하시던 노래를 틀어드리곤 했는데,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틀어드렸던 노래가 바로 이 '아베마리아'였던 것이다.)
=네, 맞아요. 저희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냐면, 지금 자기 남편이 세상을 떴어요.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예요. 근데 딸보고 장례식에 오지 말고 관객과 약속을 지켜라, 하시는 거예요. 저는 얼마나 많은 어머니가 그렇게 하실지 궁금해요.

파리에서 중요한 공연이 있었고, 하필이면 그 공연을 촬영해서 DVD로 낸다는 계약까지 오래전부터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걸 다 뒤로 하고 귀국하려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그럴 수 없다, 차라리 네가 파리에서 멋진 공연을 해서 그 공연으로 아버지를 기억하게 해 달라, 하시는 거예요. 저는 어머니의 그 말씀에 늘 착한 딸처럼 복종을 했고.

사실 저는 그날 제가 어떻게 노래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머니를 또 한 번 원망했죠. 결국 나를 딸로 보시진 않는 거구나, 끝까지. 어머니에게 저는 딸이 아니라, 한 명의 예술가이고 성악가. 어머니가 좋아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사랑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악가'였던 거죠. 이 말을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그런 분인데 어느 날 전화에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아빠는 그렇게 해서 음악으로 기억이 됐는데, 나도 하늘나라로 가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반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네' 이런 식으로 스쳐 가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 말씀이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아서 항상 담아두고 있었어요.
[취재파일] 소프라노 조수미를 만나다그렇지만 그동안 바흐다, 영화음악이다, 또 무슨 음반 녹음이다, 이렇게 새로운 활동을 계속하면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그 음반을 낼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일단은 두려웠어요. 두려웠다는 게 딴 뜻이 아니라, 어머니는 아직 남은 시간이 많으신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갑자기 음반이 나오면 어머니가 안 좋아하시지 않을까, 솔직히 두려웠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어머니 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지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젠 빨리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서둘러서 5월에 음반을 내게 된 거죠.

Q 타이틀곡인 '바람이 머무는 날'은 예전부터 부르고 싶어 했던 곡이라고 들었어요.
='바람이 머무는 날'은 멜로디가 굉장히 정적이고, 원래는 기악곡인데 시를 넣어보고 싶었어요.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저의 마음을 담아서요. 어머니를 사랑하고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요.

바람은 항상 불고 스쳐 가는데, 바람이 머무는 그 날은 분명 내 곁에 어머니라는 너무나 소중하고 위로받아야 할 존재가 있다는 걸, 바람을 잡으면서까지 생각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 노래를 들으며. 그래서 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사랑해 주시면 좋겠어요.

Q. 다른 곡들도 사연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앨범 첫 곡 '마더 디어(Mother Dear)'는 굉장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넣은 곡이에요. 폴란드 민요인데 사실 부르기 힘들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자장가로 시작하다가 콜로라투라로 끝나는데, 그 가사가 저와 어머니가 제 남자 친구 때문에 냉전을 벌였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어머니, 제발 저를 제 남자 친구와 나가게 해 주세요. 저는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거든요.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든, 저는 그 남자를 사랑해요.' 이런 내용이에요. 사실 제가 대학교 다니다가 유학 가게 된 게 남자 친구 때문에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거든요. 모든 상황이 이 노래와 딱 맞는 거예요. 그래서 이 노래를 녹음하면서 굉장히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마스카니의 '아베 마리아'도 수록돼 있어요. 다른 작곡가 '아베마리아'도 있지만, 이 곡을 불러봤어요. 이 곡은 사실 기악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그런데 이 곡은 종교적인 내용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 그리고 이 세상이 끝나더라도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것을 음악적으로 너무나 잘 표현한 곡이에요.

영화 '히말라야'에 들어간 노래도 있고, 알렉산드로 사피나(이탈리아의 테너이자 팝페라 가수)와 페데리코 파치오티(테너 겸 기타리스트)하고 하는 듀엣도 있고. 커피 한잔하면서, 차 안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촉촉하고 감동적인 앨범이 되기를 원했어요.

Q. 공연을 어머니도 보실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요.
=네, 어머니는 보실 수 없지만, 공연에 오시는 많은 어르신들, 어머님 아버님들, 딸들, 가족들, 그분들이 모두 저의 가족이에요. 음악 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생활이 별로 없고 바빠서 정작 자기 가족 행사에는 잘 참여하지 못하는데요, 이런 음악회를 하게 되면 오시는 분들이 굉장히 가족처럼 느껴져요.

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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