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갑질 종합세트" 대구 사립학교, 이번엔 프라이팬 강매?

교육청 특별감사 착수

안희재 기자 an.heejae@sbs.co.kr

작성 2019.05.15 13:5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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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에게 프라이팬 강매한다" 황당한 제보

정말 좋은 물건을 찾았다 싶으면 주변에 권유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권유와 강요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상하 권력 관계가 낀다면 조금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예컨대 직장 최고위층 누군가의 '권유'로 자의에 반하는 무언가를 하게 된다면, 과연 권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구 한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소개합니다.

"학교가 교사에게 프라이팬을 강매한다" 날아든 제보에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학교와 프라이팬은 영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매? 권유가 아니라? 사실 아무리 이사장, 교장 권한이 강한 사립학교라도 이런 일이 가능한지 쉽게 납득이 안 갔습니다. 이 학교는 이사장과 교장이 군림하는 왕국이기에 이런 일도 가능하다는데, 과장처럼 느껴졌습니다. 과장이 아니라는 건 이 학교에 대해 좀 더 알아보면 이해가 갑니다.
사립고 프라이팬 강매 성적 조작● '갑질 종합세트' 사립고교…이번엔 프라이팬?

"사학비리, 갑질의 종합세트"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학교를 두고 나온 평가입니다. 당시 참다못한 교직원들의 제보로 시작된 대구 교육청 특별감사.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학교장이 선생님들에게 일삼았다는 폭언은 교육자로 보기에 민망한 수준이었습니다. 연이어 제기된 교직 세습과 채용 비리에 이어 교직원들 사이 연애 금지령을 내린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갑질 비리 의혹은 정점을 찍었습니다. 감사 끝에 교육청은 학교장과 교감, 간부들에게 정직 등 중징계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사립학교법상 징계권은 학교 법인이 갖습니다. 학교는 교육청 요청을 무시하고 견책과 같은 경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습니다. 교육청 손도 닿지 않는, 이사장과 교장의 왕국이란 표현은 틀린 말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이런 공간에서 뜬금없이 프라이팬은 왜 튀어나온 걸까. 문제의 프라이팬 업체 사장은 이 학교 전 동창회장 A 씨. 알고 보니 A 씨는 이 학교 이사장과 20년 이상 만난 절친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적지 않은 수의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지난 3년 동안 A 씨가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구매 희망자 명단을 제출하게 하며 눈치를 줘 사실상 반강제로 물건을 사야 했고, 심지어 신제품 이름을 짓고 설명까지 덧붙여 제출해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간부들 등쌀에 저항할 수 없었다는 선생님들. "제자들 가르쳐야 할 시간에 프라이팬, 쓰레기통 이름 고민하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느껴졌다", "창피해서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냈다"는 선생님들의 자조 섞인 고백에선 그간의 말 못 할 고통이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지난해 녹음했다는 파일엔 교직원들을 모은 자리에서 홈쇼핑 전화번호를 여러 차례 강조하는 학교 부장 교사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본인도 직접 고기를 구워 봤는데 아주 좋았다며 방송 시간까지 상기해줬고, 또 하필 방송 시간이 교사 연수 시간과 겹친 터라 프라이팬을 사는 이들을 위해 일찍 마치도록 해준다는 친절함(?)까지 베풀었습니다. 퇴근 전까지 구매 의사를 직접 말해달라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권유라고 보기엔 어려웠습니다. 대담하게도 이 녹취는 지난해 국감에서 갑질 학교로 한참 두드려 맞을 때 녹음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간부들은 국감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부장 교사는 A씨의 신제품이 나올 때면 매번 교장 지시를 받아 이런 일을 했다고 선생님들은 전했습니다.
사립고 프라이팬 강매 성적 조작● 학교 창고에 쌓인 프라이팬 120개…"강매 아닌 권유였다"?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학교 창고 안엔 A 씨의 프라이팬 120여 개가 쌓여 있었습니다. 프라이팬을 들고 교장실을 찾아가 봤습니다. 학교장은 결코 강매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A 씨가 동창회장으로 일하며 그간 학교에 공헌한 바가 큰데 마침 좋은 제품으로 사업을 한다고 해 권유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익숙한 말이 떠올랐달까요.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진 일부 교사들이 자신을 음해하려 꾸민 이야기라고도 주장했습니다. 30여 분 가까이 이어진 면담 시간 동안 고구마 한 바구니를 먹는 듯했습니다.

그의 '권유'가 진짜 권유였던 건지 아닌지, 교육청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나섰습니다. 지난달 프라이팬 강매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한 겁니다. 대구 교육청은 조만간 감사 결과를 발표할 방침입니다. 이번엔 문제가 발견되는 즉시 수사 기관에도 정식 수사 요청을 하겠다고 합니다. 교육청은 앞서 소개한 녹음 파일은 물론 더 많은 자료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교육청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권유라고 볼까요? 강매라고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