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상무 출신 예비역들이 쓰는 새 역사…다시 쓸 후배는 없나요? ①

투자 없는 기적은 없다…상무 아이스하키팀 재창단이 필요한 이유

김형열 기자 henry13@sbs.co.kr

작성 2019.05.08 09:14 수정 2019.05.08 15: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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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 1 그룹A(2부 리그)에서 대한민국은 선전을 펼쳤지만, 3위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최하위 리투아니아에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하지 않았다면… 아니 지더라도 연장전에 가서 승점 1점만 더 따냈다면 벨라루스를 제치고 2위에 올라 '꿈의 1부 리그' 월드챔피언십 승격을 이룰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소득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Post 평창 시대'를 맞은 한국 아이스하키는 2014 소치올림픽 8강에 진출했던 슬로베니아와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 4강에 올랐던 벨라루스를 사상 처음으로 꺾는 등 또 한 번 큰일을 내면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 귀화 공격수 없이 펼친 '골 잔치'
2019 세계선수권에서 공격포인트 2위에 오르며 올스타에 뽑힌 김상욱평창 올림픽에 7명의 귀화 선수가 나섰던 아이스하키 대표팀에는 현재 3명의 귀화 선수(골리 맷 달튼, 수비수 에릭 리건, 알렉스 플란트)만 남아 있습니다. '귀화 선수 1호' 브록 라던스키는 지난해 5월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은퇴했고, 공격수 마이클 테스트위드와 마이클 스위프트, 수비수 브라이언 영은 부상을 비롯한 개인적인 사정 등을 이유로 더 이상 대표팀 차출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특히 대표팀의 1,2라인에서 주축을 이뤘던 귀화 공격수 3명(라던스키, 스위프트, 테스트위드)이 모두 빠지게 되면서 이제 대표팀의 공격 라인에는 파란 눈의 태극전사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대표팀은 2012년 이후 7년 만에 귀화 공격수 없이 세계 선수권에 나서야 했고, 예전보다 공격력이 약화됐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첫 경기인 헝가리전부터 화끈한 골 잔치를 펼쳤고, 5경기 동안 16골, 경기당 평균 3.2골을 몰아치며 우려를 씻어냈습니다. 신상훈이 6골로 득점왕을 차지하고, 김상욱이 포인트 2위(4골 3도움), 김기성이 포인트 9위(2골 3도움), 안진휘가 포인트 11위(1골 3도움)에 오르는 등 토종 선수 7명이 골고루 득점포를 가동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7명 중 6명은 상무 출신 예비역 병장이었습니다.
헝가리전에서 형인 김기성(왼쪽)에게 패스하는 김상욱● 새 역사에 발판이 된 상무
평창올림픽에서 체코를 상대로 첫 골을 터뜨린 조민호상무 아이스하키팀은 평창 올림픽 유치를 확정하고 1년 만인 2012년 7월에 창단됐습니다. 동계 올림픽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에 평창 올림픽 개최국인 한국의 참가가 불확실한 상황(당시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IIHF 회장은 한국이 세계랭킹 18위 이내로 올라올 정도의 경쟁력을 갖춰야만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에서 어떻게든 경쟁력을 끌어올려 올림픽 무대에 나가기 위한 조치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창단된 상무는 한국 아이스하키의 역사적인 도약에 커다란 발판이 됐습니다. 대표팀 에이스 김기성과 김상욱 형제를 비롯해 일반 군입대와 함께 선수 생활을 접을 위기에 놓였던 이들은 상무에 입대해 경기력을 유지하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월드챔피언십 승격이라는 '키예프의 기적'에 마침표를 찍은 신상훈도, 평창 올림픽에서 역사적인 첫 골을 넣은 조민호도 모두 상무(출신) 선수들이었습니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수비수 김원준● 상무의 폐지…선수 생활 위기에 몰린 태극전사
▲ 2015년 NHL 유망주 캠프에 참가해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김원준
[앵커 : NHL 댈러스 스타스가 수비수 김원준을 포함한 한국의 하키 선수 3명을 유망주 훈련 캠프에 초청했습니다.]
[김원준 : (NHL 훈련 캠프를 통해) 많은 자신감을 얻고 기술을 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도 상무 출신 선수들은 대표팀의 16골 가운데 15골을 합작했습니다. 상무 출신이 아니면서 유일하게 골을 넣은 선수는 김원준 선수 한 명입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지원 속에 핀란드에서 유학하고 NHL 유망주 캠프를 다녀오기도 한 김원준은 대표팀에서 1라인 수비수를 맡고 있는 핵심 전력입니다. 하지만, 1991년생으로 상무 입대 연령 제한을 꽉 채운 그는 올해 안에 상무가 재창단되지 않으면 다시는 태극마크를 달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인기 프로종목과 달리 저변이 열악하고 훈련 장소도 마땅치 않은 아이스하키에서 한창 나이에 병역 의무를 위해 빙판을 떠났다가 재기에 성공한 선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 평창의 진정한 유산은…

평창 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면서 상무의 존속을 약속했던 정부는 올림픽이 끝나자 이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월 마지막 상무 선수 6명의 제대와 함께 상무 아이스하키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평창 올림픽의 유산을 계승, 발전하자며 만든 '2018평창 기념재단'이 이달 초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이 기념하고 보존해야 할 Legacy는 비단 개폐회식장이나 경기장뿐 만이 아닙니다. 끝없는 노력과 많은 투자를 통해 끌어올린 선수들의 경기력, 그리고 선수 개개인이 얻은 노하우와 경험도 모두 평창의 유산입니다. 물론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 여부를 따져봐야 하고 예산 등 실질적인 문제를 검토해야 하지만, 평창의 유산을 계승한다는 점과 동계 스포츠의 육성 측면, 그리고 지금까지 보여준 발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동계 올림픽 최고 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에서 상무의 존속 여부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이유가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사진=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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