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日, 내년 도쿄 올림픽 일정 발표…불편한 속내 '역력'

"주요 종목 '오전' 결승은 미국 '골든타임' 고려한 것…누구를 위한 올림픽이냐"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19.04.17 16:19 수정 2019.04.17 16: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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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어제(16일) 올림픽 전 33경기 339종목 가운데 복싱을 제외한 각 경기의 상세 일정을 발표했습니다. 올림픽의 경우 2020년 7월 24일에 개최되는 개회식과 8월 9일의 폐회식이 저녁 8시에 시작된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더위 대책'입니다. 아시다시피 도쿄의 여름은 습하고 온도가 높기로 유명하죠. 최근 지구 온난화로 도쿄의 한여름 기온이 점점 상승하는 추세인 데다, 매년 열사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하는 고령자의 숫자도 늘고 있어서 전부터 올림픽 기간의 '더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조직위의 발표 내용을 보면, 경기 시간이 길고, 도로상에서 열리며,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큰 남자 50km 경보의 경우 경기가 새벽 5시 30분에 열려 전 종목을 통틀어 가장 이른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또 도쿄 오다이바 해양공원에서 열리는 수영 오픈워터 경기는 수온이 일찍 오를 것을 고려해 1시간 빨라진 오전 7시에 열기로 했습니다. 또 축구의 경우도 오전 11시에 열리는 여자 결승을 제외하고, 실외 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 대부분을 오후 5시 이후에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올림픽 기간에 도쿄를 비롯한 간토(관동) 지역의 높은 온도와 습도를 고려하면 이같은 조직위의 결정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참가하는 선수나 관중, 그리고 자원봉사자 등 올림픽 경기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건강 문제는 성공적인 대회 개최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일 테니까요. 그런데 일본 언론들은 이러한 조직위의 결정을 상세히 전하면서도 일면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자국 선수들의 선전이 예상되는 일부 종목의 결승이 아침 일찍 열리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이 큽니다.
일본 마쓰다 미즈키 선수예를 들어 여자 마라톤 경기가 그렇습니다. 조직위의 발표에 따르면 여자 마라톤은 8월 2일 오전 6시에 열립니다. 이 경기에 일본에서는 마쓰다 미즈키(松田瑞生) 선수가 출전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선수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대가 큽니다. 마쓰다 미즈키 선수는 지난해 1월에 열린 오사카 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22분 44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대회가 첫 마라톤 출전이었습니다. 그동안 10,000m를 주력 종목으로 해 오다가 마라톤으로 전향했는데, 첫 출전에서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죠. 이어 지난해 9월에 열린 베를린 마라톤에서는 본인의 기록을 21초 앞당긴 2시간 22분 23초로 일본 최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베를린 성적은 5위에 그쳤지만 충분히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입니다. 물론 여자마라톤의 세계기록은 2003년 영국 선수가 달성한 2시간 15분 25초로 7분 정도의 격차가 있지만, 선수의 올림픽 기간 컨디션과 응원 등 '홈 어드밴티지'를 감안하면 충분히 메달권 진입도 가능하다는 예상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가 새벽 6시에 열리게 된 겁니다. 경기 시간에 맞춰 미리미리 바이오리듬을 조절하고 휴식과 영양 섭취를 고려해야 하는 선수의 측면에서 새벽 경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경쟁자인 외국 선수들이 올림픽 기간 일본 입국 시기를 조절해 '시차'를 컨디션 조절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킬 경우 '오전 6시'라는 출발 시간이 큰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꽤나 강세를 보여 온 수영, 육상 등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수영은 전 종목, 육상(필드, 트랙)은 9종목이 오전에 열리는 결승 경기로 메달의 주인을 결정합니다. 일본 언론들은 조직위의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의 배경에 미국, 그 중에서도 천문학적인 중계권료를 지불하는 방송사(NBC)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사실상 '지목'하고 있습니다. 마이니치(每日) 신문은 아예 조직위 관계자를 익명으로 인용해 "(결정) 마지막에는 NBC의 의향이 강하게 움직였다고 본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동부의 저녁시간대 골든타임에 맞춰 주요 종목, 특히 미국이 강한 육상과 수영의 결승전 시간을 배정했다는 겁니다.
일본 남자 농구대표팀 선수들실내경기라 냉방 장치를 가동할 수 있는 농구의 경우도 결승전이 오전에 열립니다. (심지어 남자 농구 결승전은 오전에 먼저 열리고 여기서 금, 은메달이 결정된 다음에 토너먼트 3, 4위의 동메달 결정전이 오후에 열립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런 사정을 전하면서 선수들의 기록은 물론 관중과 자원봉사자들의 이동과 숙박 등에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점잖게' 꼬집었습니다만, 보수적 성향의 산케이(産經) 신문은 다음과 같은 사설로 '대놓고' 비판했습니다.

"훈련 현장에서는 기록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며 '올림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불만도 나온다. 사람들이 한숨 내려놓은 (저녁)시간에 경기장에서나 TV로 편안히 관전하는 게 자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자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서 자국 선수들이 예상을 뒤엎는 좋은 결과를 내기를 바라는 건 당연합니다. 일본 언론들, 특히 신문의 이번 올림픽 경기 일정 보도에는 그런 기대가 틀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에 대한 '속상한' 마음과 함께, 결과가 이렇게 되도록 조직위를 압박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미국 방송사에 대한 불편한 속내가 역력히 드러나 있습니다. 또 그 가운데에는 매일 아침 새로운 (메달) 소식으로 1면을 채우고 싶어 하는 신문 입장에서의 '실망'도 한 몫을 단단히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