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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어서 와∼ 동거는 처음이지?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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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84 : 어서 와~ 동거는 처음이지?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가족의 분자식은 쯤 되려나. 여자 둘 고양이 넷. 지금의 분자구조는 매우 안정적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제목 그대로, 두 여자, 김하나/황선우 작가가 2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이야깁니다. (한국에선 아직 여자들끼리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으니까) 부부는 아니라는 걸 이미 눈치채셨을 거고요. 그렇다고 자매거나, 먼 친척이거나, 연인도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히 집세를 분담하는 룸메이트 수준의 관계라고 하자니, 많이 아쉽습니다.

"'혼자 사는 게 잘 맞는다'는 말은 10년쯤 그 생활을 지속해본 후에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김하나)

"모든 게 예정대로 순조롭고, 착착 빠르게 돌아갔으며, 새로운 경험으로 꽉 찬 2박 3일을 보냈다. 경탄의 순간에도, 좌절의 순간에도 언제나처럼 혼자였다. 그러고 나니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라서 못 하는 일이 있는 게 싫어서 뭐든 혼자서도 해왔고 또 꽤 잘 해왔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에는 여럿이 해야 더 재밌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황선우)

한 명은 카피라이터, 또 한 명은 패션잡지 에디터 출신의 작가이자 크리에이터인 두 사람은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나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로를 처음 만나 친구가 됐습니다. 그리고 40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서로 마음이 맞고 아마도 함께 살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는 판단을 요모조모로 내려서 공동생활을 감행합니다. 꽤 오랫동안 싱글로 "살아봤더니", 혼자 사는 삶의 효율과 편리도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함께 사는 삶의 온기와 활기를 점점 더 갈구하게 되더라는 데 두 사람의 뜻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두 친구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친구끼리 결행하기엔 상당히 이례적인 수준으로 서로를 묶습니다. 함께 대출을 받아서 집까지 샀으니까요. 서로를 파트너로 삼아 일종의 '정착'을 선택한 겁니다.

"혼란스러웠고 아득했지만 생각을 오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당장 잔금을 치르고 대출금을 갚아나가야 했으므로. 또 대출운명공동체를 맺어놓고 동거인에게 경제적, 직업적으로 비실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결심했다. '들어오는 일은 무조건 다 하자.'

........ 무엇보다도, 동거인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함께 산 지 1년 만에 우리는 힘을 합쳐 대출금의 절반을 갚았다. 나를 붙잡아준 건 팔 할이 대출금이어라."
(김하나)

저는 이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분자 가족'이라는 용어가 이들의 관계를 제대로 함축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표현이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분들이 풀어놓는 '함께 살기로 선택한 삶'의 좌충우돌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이 만들어지는 정수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동거는 유라시아판과 북아메카판이 충돌하는 것 같은 일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의 비슷함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지만 이후로 서로의 다름을 깨달으며 더 크게 놀라게 되었다.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끝없이 들고 나는 파도처럼 이어질 '생활습관'이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김하나)

"만약에 집이 거기 사는 사람의 내면을 반영한다는 말이 정말로 맞는 가설이라면 김하나와 내가 같이 살면서 우리는 둘 다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동거인은 복잡하고 정돈이 안 된 쪽으로, 나는 훨씬 깔끔하고 깨끗한 방향으로. 우리 집에는 이삿짐이 채 정리되기 전에 내가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며 싸 들고 온 짐이 또 풀지도 못한 채 쌓여 있으며 그것을 참고 인내하며 졸지에 복잡해져버린 내면을 견디는 동거인이 있다. 내가 김하나와 싸우다가 들었던 가장 심한 말은 "평생 그렇게 호더(hoarder)로 살아!"였다. '이 바보 멍청이야!' 같은 말보다 훨씬 타격이 컸던 이유는 호더 할머니가 되어 쓰레기를 끌어안고 사는 모습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노력하며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잘 버리게 되었다기보다 잘 사지 않는 사람 쪽으로. 우선 집에 뭔가 하나를 버리기 전에는 사들이지 않기로 동거인과 약속을 했고, 또 대출금을 갚는 재미에 빠져 쇼핑이 더 이상 큰 즐거움이 아니기도 했다.

......... 난 호더 할머니로 물건에 둘러싸여 혼자 늙어죽기보다 동거인과 사이좋게 늙어가고 싶다."
(황선우)

재기 넘치는 통찰이 날카롭게 반짝이는 문장들 사이사이로, 함께 사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 갈등과 화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산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노력하는 두 마음이 뿌듯하게 넘실거립니다. 이들은 법적으로 묶인 부부나 혈연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를 살피는 데 있어서 함부로 나태해지거나 무감각해질 수가 없습니다. 서로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내가 너의 가족이 되고, 네가 나의 가족이 된다는 건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는 자각이 나날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벗어난 삶, 과거의 잣대로 일일이 판단할 수 없는 공동체들이 다양하게 늘어나는 시대죠. 이 분들의 표현마따나 그렇게 "느슨한 공동체"를 꾸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지만, 전통적인 가족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애초에 우리는 왜 가족을 이루는가. 가족은 어떻게 서로와 공존하면 좋은 걸까.

이 분들이 구축한 일종의 '유사 가족'이 가장 말갛게 씻긴 상태의 가족을 보여줍니다. 가족을 꾸리는 의미와 그 초심을 비추는 거울이 돼줍니다.

"이사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같이 살면 쾌적하게 넓은 집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 지옥 같아졌다. 앞으로의 삶이 엉망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나는 1.7리터들이 테팔 전기주전자가 꼴도 보기 싫어서 싱크대 안에 넣고 문을 쾅 닫았다. 이후로 종일 연락이 없던 동거인이 밤늦게 들어오더니 옷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나는 화가 난 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울면서 버릴 물건들을 정리해서 눈이 퉁퉁 부은 동거인이 손에 쓰레기봉투를 잔뜩 들고 나왔다. 보는 순간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지만 사과의 말이 나오진 않았다. 동거인이 출근하자 나는 미워졌던 마음이 풀려 또 열심히 시지프 활동을 재개했다.

.......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그날 밤 돌아온 동거인과 나는 서로의 섭섭함을 솔직히 털어놓고 다시 화해했다. 테팔 전기주전자는 버리지 않았다. 사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 0.7리터가 바로 '마지막 한 방울'이었을 뿐."
(김하나)

"함께 사는 사람,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의 싸움은 잊어버리기 위한 싸움이다. 삽을 들고 감정의 물길을 판 다음 잘 흘려보내기 위한 싸움이다. 제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다.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 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황선우)

"나는 간병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동거인이 나의 주보호자로서 베풀어준 가장 큰 부분을 잊지 못할 것이다. 플라스틱 공 하나 띄우려 애쓰고 있는 내가 사실은 하프 마라톤을 몇 번이나 완주한 사람이라는 걸, 진통제에 멍해져 있지 않을 때는 재미있는 농담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방귀 뀌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인 지금의 내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 사실은 겨우 3박 4일이지만 가장 무력하고 약해졌을 때 내가 사라지지 않게, 또 최선을 다해 나로 돌아갈 수 있게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황선우)

이 책은 두 여자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서울 망원동에서 동네친구들이 어울려 사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누가 내 이웃사촌이 될지를 스스로 선택해서 하나 둘씩 모여든 사람들이 같이 술마시고 나눠먹고 도와가며 살아가는 오늘에 대한 뿌듯한 자랑이 가득합니다. 특히 '엘베택배' 에피소드엔, 도시 아파트 생활의 편리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현대인의 감각이 이웃간의 따스한 정을 갈망하고 찾아가는 '옛날 마음'과 멋드러지게 조화를 이룬 이 분들의 생활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얼마 전 철군이 출근길에, 시부모님이 농사지은 감자와 양파를 많이 보내셨다며 '엘베택배'로 올려줬다. '엘베택배'란 철군네와 우리 집 사이에 물거늘 주고받는 방식으로, 사람 없이 물건만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내는 시스템이다. 언젠가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오다 선물받은 조각 케이크를 철군네에 전해주고 싶었는데 편안한 차림으로 쉬고 있을 사람들을 방해할까 봐 '지금 엘리베이터로 올려보낼게, 꺼내 가!'라며 케이크만 올려 보냈던 게 시초였다.

............ 시골에서 올라온 감자와 양파는 카레가 되어 동네에서 나눠 먹고, 한 주의 일을 끝낸 동네 사람들은 자연스레 만나 서로의 등을 두드려준다. 서로의 고양이와 강아지를 돌보고 작은 것들을 챙겨준다. 인생의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김민철의 시부모님이 보내주신 고소한 땅콩을 까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김하나)

"언제부턴가 나는 더 이상 단골 바(bar)라고 할 만한 곳이 없어졌다. 혼자 살던 시절 동네 친구와도 약속을 잡기가 귀찮을 때면 나를 환대해주던 장소들이 여럿 있었는데 말이다.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도 있었고, 오래 일해 자주 봐온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안면이 있는 다른 단골들과 마주치기도 하는 그런 따뜻한 공간들은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 친구 역할을 해줬다. 그런 시절을 지나서 이제 최고의 단골 바는 우리 집 거실이 되었다. 가장 좋은 술친구와 내가 사장이고, 우리 취향의 음악을 선곡하는 DJ고, 입맛에 딱 맞게 안주를 요리해서 서빙하는 그런 곳. 한번은 둘이서 기세 좋게 마시다가 술이 모자라서 밖으로 나갈까 고민한 일이 있다. 동거인은 단호하게 외쳤다. "무슨 소리야, 한번 브라자를 푼 사람은 다시 찰 수 없어!" SNS에 이 이야기를 썼더니, 평소 와인 수십 병을 보유하고 있는 철군낮별네에서 흔쾌히 술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브라자를 아직 차고 있던 내가 냉큼 나가서 동네 친구의 이런 호의를 받아 오면서 그날의 술자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이러니 집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다." (황선우)

이 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많이 웃었습니다. "아니 이 사람들, 난가? 우리인가?" 하게 되는 대목들이 많았거든요. 누군가와 삶을 함께 하기 위해 자질구레한 데서부터 투닥투닥,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요즘 도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한 군데 이상은 꼭 나올 책이라는 것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네,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재미있다는 걸 확실히 보장해 드릴 수 있단 얘깁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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