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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오염된 국회, '역사부정죄'보다 '망언 의원 3인 퇴출'이 더 절실한 이유

딱 3년 전이다. 기사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5·18 민주화운동 왜곡 날조 보도를 두고 동료 기자와 숙의를 거듭했다. 당위는 컸지만 이와 무관하게 극우의 '북한 특수군 개입' 주장을 재생산해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거짓 선동의 악마적 재능을 가진 나치 괴벨스의 "99%의 거짓에 1%의 진실을 배합하면, 거짓보다 효과적"이라는 말에 놀아난다는 불쾌감도 깔려있었다. 순도 100% 허구를 허구라고 증명하는 건, 마치 '대통령은 외계인이 아니다'라는 걸 증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했다.

고민 끝에 2016년 5월, <5·18 항쟁① 왜곡의 실체>, <5·18 항쟁② "北 특수군 개입"…교활한 왜곡>, <5·18 항쟁③ 전두환과 '불의(不義)'의 고착화> 등을 연속 보도했다. 그해 5·18 기념재단이 19세 이상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5·18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5·18이 북한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9.6%에 달했다. 60대 이상에선 16.3%, 평균의 2배였다. '5·18이 불순 세력이 주도한 폭력 사태였다'고 응답한 이도 14.2%, 특히 50대 60대 이상에선 각각 17.5%, 26%로 집계됐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 충분하지만, 이를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는 괴벨스의 말을 익히 알면서도 "허구를 허구"라고 증명하는 취재를 시작한 이유였다.

1980년 군부가 주도한 불순분자 개입설이 당시 군부에서조차 배척된 사실도 보도하고, 2000년대 새롭게 등장한 왜곡의 원천과 극우의 분업 과정도 추적했다. 극우가 북한 특수군(일명 광수)으로 지목한 실제 광주 시민까지 찾아냈다. 그들의 사진을 국내 최고 안면 분석가에게 의뢰해 김정일의 첫 부인 홍일천이니 황장엽이니, 이런 북측 인사와 무관하다는 사실까지 증명했다.

노파심에 또 다른 날조, 이른바 고첩(고정간첩)이라는 허무맹랑한 왜곡에 대비해 광수로 지목된 광주 시민의 동의를 얻어 이들의 주민등록등본, 제적등본(옛 호적등본)까지 확인해 공개했다. 취재는 지난했지만, 기사 결론은 간단했고 명징했다. 북한 특수군 개입설엔 1%의 진실도 없다는 것.

● 오염된 국회, 특단의 조치 '5·18 왜곡 처벌법'…69자의 무게감
국회
바뀐 게 없었던 걸까. 3년 전 기사를 쓸 때 예상치 못한 일이 2019년 벌어졌다. 역사의식은 균질하지 않다는 것도, 극우의 확증편향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회까지 왜곡세력의 집단 극단화에 오염될 줄 몰랐다. 한국당 의원 3명이 앞장선 결과였다. 전체 의원 298명 가운데 3명, 1%에 불과했다고 안도할 순 없었다. 5·18 덕분에 민주성을 회복한 국회가 5·18 망언으로 오염된 기막힌 상황이었다. "망언 의원들과 1초도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여당 중진 의원의 발언이 감정적 언사로만 느껴지지 않고 공감이 됐던 이유다.

다수 의원들 사이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지난달 22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5·18 역사왜곡 처벌법(5·18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에선 '5·18 민주화운동'을 정의 내렸다.
[취재파일] 오염된 국회, '역사부정죄'보다 '망언 의원 3인 퇴출'이 더 절실한 이유
시민의 희생과 눈물, 공적이 69자로 정리된 정의 조항에 압축돼 있다. 건조하게 쓰인 69자,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남달랐다. 지난해 통과된 '5·18 진상규명법'에서도 5·18을 정의 내렸지만, 특별법 개정안의 정의 조항과 차이가 있다. 1979년 전두환 씨의 군사반란 시점을 명시했고, 지역도 광주로 한정하지 않았다. 전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더 특별한 건 '69자'의 무게감이다. 69자를 부정하면 징역 7년 이하에 처한다는 형벌도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이른바 역사부정죄다. 독일의 홀로코스트부인법을 모델 삼은 법으로, 특단의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야 4당 '5.18 왜곡 처벌법' 공동 발의 추진
● 특정 사관을 형벌로 통제…또 다른 역사부정죄는?

법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신중히 생각할 지점이 있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5·18 특별법 개정안)이 표현 사상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완충제로 '위법성 조각사유' 조항을 넣었지만, 더 본질적인 부분을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5·18 민주화운동에 한정된 게 아닌 '역사'를 형벌로 통제하면서 발생 가능한 부작용이다.

역사부정죄는 형법상 (사자)명예훼손, 모욕죄 등과 달리 피해자의 고소나 처벌 의사 없이도 수사나 기소가 가능하다. 한 마디로 친고죄도, 반의사불벌죄도 아니다. 전적으로 국가에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독점적 판단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가는 언제라도 이를 남용할 가능성도 있고, 남용해 온 전례도 있다.

군사정권 시절, 특정 사상(思想)을 국가가 강제하면서 생겼던 어두운 단면을 돌이켜 보면, 특정 사관(史觀)을 형벌로 통제하면서 생길 부작용도 짐작 가능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진실'로 여기는 다른 역사에 대해서도 국가가 형벌로 강제할 수 있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 당장 여야 4당(바른미래당 일부) 166명 의원이 5·18 역사왜곡 처벌법을 발의한 뒤, 한국당이 내놓은 유사 법안이 있다. 형량까지 동일한 이른바 '6·25 역사왜곡 처벌법'이다.

6·25 전쟁 남침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면 처벌한다는 또 하나의 역사부정죄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천안함 폭침 부정 처벌법, 초대 대통령 이승만 비방 금지법까지 제정하자고 나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5·18 역사왜곡 처벌법'이 단순히 '5·18 민주화운동'에만 한정되지 않는 이유다.

역사 부정죄의 효능을 두고 회의적 시각도 있다. 처벌 대상인 '5·18 부인·비방·왜곡' 행위의 모호성 때문이다. '처벌 가능한 왜곡 발언'과 '처벌할 수 없는 학문적 의견'의 구별과 판단은 쉽지 않다. 국가의 자의적 판단 개입 여지도 지나치게 넓다. 이는 5·18 뿐만 아니라 역사부정죄가 지닌 내재적 한계다.

민주당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가 "역사부정죄가 제정돼도 역사 부정행위를 일망타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법이 존재했더라도 왜곡 날조 세력이 교묘히 피해나갈 수 있는 구멍은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 2월 8일 국회에서 이뤄진 망언 의원 3인(김진태, 이종명, 김순례)과 지만원 씨의 발언은 개정안이 통과돼도, 법 제정 이전 행위라 처벌 대상도 아니다.

● 역사부정죄보다 더 필요한 '망언 의원 3인 제명'

그렇다고 왜곡 날조로 지금도 고통받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사회 자정에만 기댄 채 방치해야 할까. 이번 사태 직후 다방면에서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두 축인 '경제발전과 민주화' 가운데 전자가 과대평가받는 사이, 후자만 과소평가됐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온당한 평가와 교육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필요한 대책이지만, 이미 벌어진 망언에 대한 유일한 대책은 아니다.

이미 기소된 지만원 씨에 대한 재판부터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지난 2016년 4월 21일 기소된 지 씨 사건은 만 3년째 1심 진행 중이다.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가 추가 기소가 되면서 재판이 늘어졌다"며 법원·검찰은 고의적 지연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의도성은 없겠지만 지연된 정의는 부정의다. 지연된 만큼 피해자의 고통은 가중된다는 사실도 명확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판단이 난해한 집단 명예훼손이 아닌, 특정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측면에서 과거 사안과도 다르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사진=연합뉴스)
이 보다 더 중요한 건 망언 의원 3명에 대한 국회의 조치다. 이들에 대한 단호한 결정, 즉 퇴출이 5·18 특별법 개정안 통과보다, 역사왜곡을 단죄하고 장래의 역사왜곡까지 방지하는 효과적 대책이다. 법과 헌법 가치를 무시·부정하면 의원직까지 박탈될 수 있다는 점만 보여줘도, 왜곡 날조의 설 자리가 사라질 게 분명하다.

국회법상 제명을 위해선 재적 의원(298명) 3분의 2(199명)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며 회의적 시각을 보이는 의원도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에 민중당, 범진보 성향 무소속 의원을 합치면 최대 184명. 적어도 한국당에서 15명은 동의를 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당을 보면 이런 협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망언 사태 초기 급락한 당 지지율 탓에 한국당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새어 나왔지만, 전당대회를 거치며 최소한의 반성조차 희석됐다는 것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당선 직후, 망언 의원에 대한 단호한 태도보다, 미온적 발언을 이어 가는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 보수가 천명했던 그들의 철학 '법과 원칙 수호'…망언 의원 3명에겐

그러나 황 대표는 본인 스스로 그동안 했던 발언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지난 정부, 법무부 장관과 총리 시절,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법과 원칙"이다. 2015년 4월 교사들이 연가투쟁에 나섰을 때도, 그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처"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심지어 교사들의 합법적 연가를 승인한 교장에 대해서도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생계와 직결되는 사안에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도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처"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던 게 바로 황 대표였고, 보수였다. '민주주의 수호'라는 대원칙을 내세워 한 톨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황 대표가 장관 시절 어떤 내용의 신년사를 낼지 다른 기자들과 예측한 적 있다. 예측은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침해하면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법과 원칙의 강조였다. 그는 심지어 장관 이임사에서도 "헌법가치를 부정하거나 침해하면 엄정 대처했다"는 걸 자신의 업적으로 자찬했다.
황교안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이른바 망언 3인방, 한국당 의원 3명의 행위는 법과 원칙에 부합되는 것일까. 황교안 대표가 그토록 반복했던 법을 보면, 일말의 고민 없이 쉽게 판단할 수 있다.

1990년 제정된 '5·18 보상법 1조'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국가가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며 5·18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02년 제정된 '5.18 유공자법 1조'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해서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널리 알려 민주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또박또박 적혀있다. 1995년 제정된 '5·18 특별법 1조'엔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해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민주화를 정착시키며 민족정기를 함양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을 통해 2년 뒤인 1997년 '전두환 씨의 살인 범죄'도, '5·18은 독재에 저항한 시민의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황교안 대표가 그동안 강조한 법에서도, 심지어 판례에서도 명시적으로 5·18은 민주화운동이고, 이에 대한 예우와 보호가 민주주의 수호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법과 원칙, 민주주의 수호', 황교안 대표나 한국당이 스스로 밝힌 보수의 철학이자 가치였다. 전례에 따라 한국당이 먼저 나서 망언 의원 3인에 대해 제명 조치를 하는 게 당연한 이유다. 지금에 와서 당연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동안 그들이 천명했던 보수의 철학은 편리대로 모양을 달리하는 문방구 고무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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