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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새해 새벽, 일본을 긴장시킨 '폭주남' 사건…그는 왜?

[취재파일] 새해 새벽, 일본을 긴장시킨 '폭주남' 사건…그는 왜?
1월 1일 0시를 갓 넘긴 시각, 새해를 시작하는 설렘이 번화가에 흘러넘치는 시간에 흔히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일본 도쿄 한복판 하라주쿠의 다케시타 거리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오사카에서 렌터카 경승용차를 몰고 올라온 21세 남성이 도로를 역주행하면서 통행인들을 차례차례 치어 8명을 다치게 한 사건입니다. 피해자는 모두 남성으로 연령대가 10대부터 50대에 걸쳐 있고, 이 가운데 올해 19살인 대학생 1명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용의자는 당시 연말연시 교통대책으로 차량 통행이 금지돼 있던 폭 5m 정도의 다케시타 거리를 맹렬한 속도로 140m 가량 '역주행'했습니다. 중경상을 입은 부상자들은 대부분 뒤에서 고속으로 달려온 승용차에 치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차량 통행이 금지돼 있었고, 통행금지 상황이 아니더라도 보통 차가 다니는 방향이 아닌 역주행이었기 때문에 고속 주행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용의자는 8명의 통행인을 차례로 차로 들이받은 뒤 진행방향 왼쪽의 빌딩을 들이받고서야 차를 멈췄습니다. 그리고는 '흉기'로 사용한 경승용차를 버리고 목격자 1명을 폭행한 뒤 바로 현장에서 도주했다가 약 20분 뒤 요요기 공원 근처에서 주변 수색을 벌이던 당국에 붙잡혔습니다. 빌딩을 들이받은 차량은 앞부분이 심하게 파손된 채 도로 한복판에 버려졌고, 용의자가 도주한 사이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가 부상자들을 수습해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도쿄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용의자는 체포 당시 "테러를 일으켰다"며 "사형제도에 대한 보복으로 범행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죽이려는 목적으로 사람을 치었다", "가속 페달을 계속해서 밟았다"고 말해 폭주 역주행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한 범의(犯意)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8명의 중경상으로 그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연초부터 비참한 사건이 벌어질 뻔한 셈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1일 새벽 0시 10분.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4km 떨어진 시부야에서는 당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신년 축하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물론 시부야 지역은 경찰의 특별경계로 자동차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용의자가 그릇된 마음을 먹었다면 더 큰 참사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통사고 (사진=연합뉴스)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용의자가 "사람이 많은 곳을 노렸다", "우에노에서도 범행하려 했다"고 진술한 사실이 추가로 알려졌습니다. 도쿄에 오신 분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우에노는 신주쿠, 시부야에 이은 도쿄의 부도심 가운데 한 곳으로 연중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렌터카에서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등유 20리터도 발견됐습니다. 이에 대해 용의자는 "자동차 통째로 불을 붙이려고 준비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폭주 역주행도 모자라 방화 용의까지 인정한 셈입니다. 좀 더 사람이 많은 곳에서, 폭주하는 경승용차에 불까지. 용의자의 계획이 좀 더 치밀했더라면 피해자는 다케시타 거리에서 발생한 8명에서 그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일부에서는 용의자가 경찰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보복'이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범행 동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가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사건 관련자인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츠모토 지즈오) 등 13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 것을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그가 옴 관련 단체 등 특정 종교, 정치단체에 가입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그가 '심정적'으로 옴 진리교에 동조하며 단독으로 행동하는 '고독한 늑대(lone wolf)'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도쿄 경찰은 오늘(2일) 용의자를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앞으로 더 조사가 진행돼야 정확한 범행 동기가 드러나겠지만, 새해 벽두부터 '도리마(通り魔, 거리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묻지 마 식 범죄를 일으키는 자)'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본에서는 SNS 등을 중심으로 통행인이 많거나 늘 붐비는 장소에 갈 때는 각별히 주변에 주의해야 한다는 충고가 '새해 덕담'을 대신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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