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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학대 피해 노인들…쉼터에서 맞은 씁쓸한 어버이날

갈 곳 없는 학대 피해 노인들…쉼터에서 맞은 씁쓸한 어버이날
학대피해노인전용쉼터서 어버이날 기념해 입소자들에게 선물한 카네이션

"아들이 '집에서 밥을 먹지 말라'고 하데요. 냉장고에서 몰래 반찬을 훔쳐 먹는데 어찌나 서럽던지…"

어버이날인 지난 8일 경기 의정부의 학대피해노인전용쉼터 안 강 모(가명) 씨의 방에는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라는 팻말이 꽂힌 카네이션 화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화분이 예쁘다는 말에 강 씨는 "이곳 선생님이 주셨지요"라고 답했습니다.

정작 하나뿐인 아들은 연락이 없습니다.

강 씨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고, '집을 나가라'며 폭언을 일삼는 아들의 학대에 쫓겨 나왔습니다.

집을 나온 강 씨는 택시에 올라 '한강으로 가자'고 했고, 택시 기사는 그를 한강 대신 복지센터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소개받아 경기도 사회서비스원 경기북부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운영하는 이곳 쉼터로 온 게 지난 1월이었습니다.

평생을 남편과 아들의 학대 속에 살아온 강 씨에게 쉼터는 따뜻한 곳이었지만, 계속 머물 수는 없습니다.

기본 3개월(1개월 연장 가능)인 쉼터 체류 기간은 이미 끝났습니다.

주거급여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데,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하면 아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강 씨와 같은 노인학대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간한 '2021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노인학대 신고 사례는 2019년 5천243건에서 코로나19 이후 2021년 6천774건으로 늘었습니다.

학대 사례의 88.0%는 가정 내에서 발생했고, 학대 행위자의 29.1%는 배우자, 27.2%는 아들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이 학대를 신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학대 행위자와 피해자가 동거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들은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처벌받을 것을 걱정하거나, 남에게 알리기 부끄러운 가정사라고 생각해 주변에 알리기를 꺼리는 경우도 다수입니다.

분리가 어렵다 보니 재학대도 빈번하다.

신고 접수돼 종결됐던 사례 중 다시 학대가 발생해 신고된 사례만 따져보면 자녀(아들 45.6%·딸 7.3%)에 의한 재학대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과 다르게 노인학대는 본인이 거부하면 학대가 분명히 예상돼도 모시고 나올 수 없다"며 "재학대가 반복돼도 원가정 복귀를 고집하는 등 가정사와 오래된 학대로 인해 피해자가 죄책감을 갖거나 가해자를 걱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전문가들은 학대 발생 시 가해자와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분리돼야 하며, 분리 후 피해 노인의 독립을 위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학대 발굴과 분리를 진행하고 필요한 복지 절차를 연계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현재 전국에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은 38곳이 있고, 쉼터는 20곳이 있습니다.

경기북부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쉼터는 정원이 5명인데, 2021년 경기북부 지역의 학대 사례는 547건이었습니다.

늘어나는 건수에 비해 수용인원이 너무 부족합니다.

머무를 수 있는 기간도 최대 4개월뿐입니다.

이미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대 행위자가 아닌 피해자가 거주지 밖으로 단기 보호되는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용 쉼터에 머무는 짧은 기간 동안 피해자가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는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장에서는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원활히 연계해 줄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와 기관 간 촘촘한 공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쉼터 관계자는 "노인학대 전담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서비스 연계가 건별 주먹구구식이고, 상담원 개인 역량에 따라 질도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는 아직까지 아동학대전담공무원만 있고, 노인학대 전담은 없습니다.

이미진 교수는 "중장기적 주거지원을 포함한 소득보장·건강·돌봄·사회심리 등 다방면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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